주간동아 444

2004.07.22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색안경 낀 시선과 불합리한 교육지원 시스템 탓…취직해도 임금과 업무 차별에 이직 잦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7-16 13: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코리아리쿠르트㈜가 2003년 12월 개최한 탈북동포 채용박람회의 모습.

    ”대체 한국에 무슨 업체가 있는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취직을 할 거 아닙네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리해(理解)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네다. 제대로 알려주 대체 한국에 무슨 업체가 있는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취직을 할 거 아닙네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리해(理解)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네다.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답답할 뿐이지요.” 7월8일 서울 양천구의 한 냉면 집에서 만난 탈북자 함은숙씨(28•여•가명). 최근 구직전선에 나선 함씨에게 ‘직업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중소기업과 변호사 사무실에도 지원해봤지만 말투에 배인 북한 억양 때문에 딱지를 맞았다. 얼마 전 한 생명보험사의 설계사로도 6개월간 일했는데, 인척 하나 없는 곳에서 영업을 뛰기란 쉽지 않았다. 북한의 6•1전자기계전문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함씨는 남한 사회에서 자신의 지식을 써먹을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컴퓨터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과정 수료 후 과연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을 안 하니까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함씨를 떠나지 않는다.

    “제 이름은 밝히지 마세요. 제가 탈북자인 거 친구들이 잘 모르거든요.” 중국에서 여동생과 함께 온 박민호군(20•가명)은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잘 밝히지 않는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남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탈북자는 뭘 모를 것’이란 편견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탈북자라는 신분은 구직전선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중국어와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해 여행사와 무역업체에 지원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던 면접관들은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중국과 거래하는 한 무역업체에 취업했으나 직장 내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박군은 “내가 약간의 실수를 하거나 불이익을 내면 상사들은 무조건 ‘네가 북한 출신이라 그렇다’고 말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사회활동이 가장 왕성해야 할 20, 30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과 불합리한 교육지원 시스템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업을 한 탈북자들 역시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옮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후원회가 최근 탈북주민 973명을 대상으로 ‘사회(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을 조사한 결과 22.4%(218명)가 편견과 차별을 꼽았다는 사실도 이들의 고통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탈북 130가구 중 3가구만 취업”

    전체 탈북자의 취업률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으나 탈북자 밀집 거주 지역의 동사무소를 통해 탈북자의 취업 현황을 엿볼 수 있다. 서울 양천구 신정3동 동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 130가구 중 현재 한 사람이라도 취업한 것으로 파악된 가구 수는 3가구뿐”이라며 “나머지는 정착보조금이나 생계비를 지원받아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는 5170명으로 이중 20대가 1073명, 30대가 1287명으로 20, 30대가 전체의 50%에 육박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 탈북자들이 ‘미취업 상태’인 현실은 탈북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젊은 탈북자들의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탈북자들의 취업과 정착을 돕는 ‘북한이탈주민후원회’ 김용씨는 “북한에서 습득한 학문과 지식이 남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우가 드물다”며 “탈북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북에서 딴 치과의사 자격증도 무용지물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하나원’의 교육관 전경.

    북한 군의대 치의예과를 졸업하고 러시아에서 파견 의사로 근무했던 30대 탈북자 김도훈씨(가명)는 현재 전기학원에 다니고 있다. 북한의 ‘치과의사 자격증’이 남한에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남한의 치의대에 편입해 국가고시를 치르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모든 전문용어를 영어로 다시 공부해야 하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의치(義齒)를 만드는 치의공 일에 도전하려 했지만 열악한 작업환경에 포기하고 말았다. ‘엘리트 의식을 던져버리겠다’고 늘 결심하면서도, 북한에서 한의학을 전공한 탈북자들이 순탄하게 한의사로 일하는 걸 보면 자존심이 상했다. ‘전기기사 자격증’이 자신의 순탄한 남한 생활을 보장해줄지도 의문이라는 게 김씨의 얘기다.

    불합리한 탈북자 교육지원 시스템도 문제로 꼽힌다. 박민호군이 무역회사에 취업한 이유도 대학 학자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가 다니고 있는 H전문대의 경우 탈북자에 대한 국가와 학교 보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박군은 국가의 보조금 지원이 전문대에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세대나 고려대 등 잘나가는 학교에 다니면 좋지만, 솔직히 거기서는 직장 구하는 데 직접적 도움이 되는 실용적 학문을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교양과목도 너무 달라서 탈북자들은 대부분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려워하고요. 국가와 학교가 50%씩 학비를 보조하는 곳은 대부분 유명한 4년제 대학이에요. 사실 많은 탈북자에게 필요한 건 전문대 교육 프로그램인데 말이죠.” 탈북자들에게 취업을 위한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선경정보처리학원의 김승집 원장은 “탈북자를 위한 맞춤형 취업 교육과 자활 프로그램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탈북자의 사회적응과 초기정착 지원을 돕는 ‘하나원’에서 2개월간 교육을 받는 것만으로 남한에서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탈북자와 남한의 실업자들을 함께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올 8월부터 탈북자만을 위한 전문직업훈련학원을 운영할 방침이다.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탈북자 함은숙씨(가명)는 “취업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김원장은 “공과금 내는 방법을 몰라 전기가 끊기고 각종 사고 처리, 교통정보 이용에 혼란을 겪는 탈북자들에게 남한 사람과 같은 취업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며 “남한의 실업자 교육 예산에 포함된 탈북자 취업 교육 예산을 별도로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안정된 직장을 잡을 수 있게 이력서 쓰는 법부터 직장생활 예절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는 탈북 청소년의 경우 구직 과정에서 좌절하곤 일탈에 빠져들기도 한다. 2001년 남한에 첫발을 디딘 심경숙양(19•여•가명)은 삐걱거리는 학교생활을 견디다 못해 자퇴했다. 17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어린 중학생들과 수업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남한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심양은 북한식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던 부모와 갈등을 빚고 가출했다. 그러나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탈북자인 심양에게 남한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각종 정보지를 뒤지며, 사무실 보조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지만 “미성년 탈북자는 쓰지 않는다”는 냉소적 반응만 돌아왔을 뿐이다.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한 심양은 결국 유흥업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충북의 한 지역으로 팔려가기에 이르렀다. 심양의 부모와 친구가 그를 찾아나섰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탈북자의 고용을 꺼리는 일부 기업의 풍토는 탈북자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영등포 고용안정센터의 탈북자 취업보호 담당관은 “‘탈북자 고용지원금도 귀찮고, 탈북자를 고용하고 싶지도 않다’는 중소기업 관계자의 말을 들었다”며 “남한의 고용자와 탈북자의 시각차가 커 둘을 연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일단 직장을 잡은 탈북자는 “취업 이후의 차별이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남한에 온 지 10년이 넘는 김모씨(52)는 “정부 운영 기관의 관리원으로 일하며 명절 때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이유로 늘 당직을 섰지만, 다른 한국인 동료들과 달리 수당 한 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며 “비슷한 일을 하지만 동료 한국인보다 적은 급여는 항상 불만”이라고 호소한다.

    “현실 인정하고 적응하려는 노력 필요”

    탈북자의 낮은 취업률을 고용주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 Y씨는 지난해 12월 20, 30대 탈북자 3명을 고용했지만 이들은 석 달 만에 직장을 떠났다. 그는 “중국의 조선족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항변했다. “탈북자 3명에게 한국인과 똑같은 급여를 지급했는데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조선족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교되는 걸 자존심 상한다고 여기더군요. 이들이 3년 정도만 기술을 익히면, 최고가 될 수 있는데 안타깝습니다. 대부분 남한에 온 지 2, 3년 된 탈북자들은 정착지원금을 받고 있어 아직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탈북자 취업, 하늘의 별따기야요”

    서울 영등포 고용안정센터의 장진영 탈북자 취업담당관이 '취업 상담'을 해 주고 있다.

    코리아리쿠르트㈜의 이정주 대표는 “지난해 12월 탈북동포 채용박람회를 개최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며 “탈북자들의 의식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온 만큼 직업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편”이라며 “직장에 적응하기보다 2, 3일 만에 일을 그만두는 탈북자들의 특성 때문에 업체 역시 탈북자들의 고용을 꺼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탈북자들의 의식 변화 못지않게 남한 사람들 역시 북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히 ‘외국인 노동자’와 비교되는 데 대해 반감을 표출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몇 년을 고생하며 바짝 돈을 벌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한국 사회에 영원히 뿌리내려야 할 이들에게 외국인 노동자 수준의 급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직업 선택권도 지나치게 제한돼 있는 형편이다. 북한에서 전문대를 졸업한 탈북자가 남한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업무는 3D 직종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이 바로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남한에 3년 넘게 머문 탈북자의 수가 올해로 1000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3년에 걸친 정착지원금의 지급이 끊긴 상태에서 이들은 안정적 삶을 위한 직업 찾기에 골몰해야 한다. 탈북자의 유입은 1998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특히 2000년 이후 남한에 유입된 탈북자가 4075명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이들이 홀로서지 못할 경우 국가는 이들을 부양해야 할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이기영 교수는 “현재 하나원으로 대표되는 탈북자 지원시스템으로는 탈북자들의 홀로서기를 효율적으로 도울 수 없다”며 “20, 30대 탈북자들이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민•관 협력형 지원 시스템을 통해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