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2

2004.07.08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 김재준/ 국민대 교수 jjkim@freechal.com

    입력2004-07-01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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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무더운 여름에는 차가운 샴페인이 어울린다. 샴페인은 주로 아페리티프로 마시지만, 식사에 곁들이는 음료로도 적합하다.

    샴페인을 사주는 남자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서구에서는 흔히 여자의 환심을 사고 싶을 때 샴페인을 주문한다. 영화 007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여자를 유혹할 때 쓰는 ‘무기’도 다름아닌 샴페인 ‘동 페리뇽(Dom Perignon)’이다.

    동 페리뇽은 와인에 단맛을 첨가해 처음으로 샴페인을 만들어낸 프랑스 수도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수도사의 발명품이 여자를 유혹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동 페리뇽의 묘비에는 ‘그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좋은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쓰여져 있다. 그런데 샴페인은 주로 부자들이 마시는 음료이니 이 또한 역설적이다.

    샴페인이란 단어는 항상 무언가를 축하할 때 쓰인다. 생일, 축제, 성공의 술인 셈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일찍 승리를 자축하는 것을 가리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보통 샴페인은 본격적인 식사 전에 아페리티프(aperitif·식욕을 돋우는 식사 전에 마시는 음료나 술)로 마시지만 때로는 디너를 특별하게 샴페인만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귀여운 여인’ 등 상류층의 생활을 다룬 영화에는 고급 샴페인이 단골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에 홍콩 페닌슐라 호텔에서 ‘크뤼그(Krug)’로, 또 한 번은 바로 며칠 전에 서울 하얏트 호텔의 파리스 그릴에서 ‘동 페리뇽’으로 호사스런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먼저 크뤼그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때 내가 먹은 디너는 ‘크뤼그 에 라 메르(Krug et la Mer)’라는 테마의 코스 요리였는데, 웨이터가 너무 좋은 기회라고 추천해서 선택했다. 무려 다섯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크뤼그를 마셨는데, ‘크뤼그 그랑 쿠베(Krug Grande Cuvee)’로 시작해서 빈티지(포도수확 연도) 2종류와 로제, 그리고 ‘크뤼그 클로 뒤 메스니(Krug Clos du Mesnil)’를 마셨다-담으로 둘러싸인 특별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클로 뒤 메스니를 마신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싶다. 그 맛은 정말 훌륭하다고밖에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약간 중국풍으로 조리된 다양한 프랑스식 해산물 요리가 나오고 마지막에 1982년산 ‘샤토 랭취 바주(Chateau Lynch Bage)’와 치즈가 나왔다. 정말 훌륭한 디너였고, 나는 내내 나의 주량이 적음을 한탄해야만 했다.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동 페리뇽'을 만드는 ‘와인 크리에이터’브느와 구에즈.

    며칠 전의 경험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런칭 디너 자리였다. 1996년산 ‘동 페리뇽’을 선보이는 런칭 디너였는데, 이 자리에서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포로 시각적 매력을 더해주는 샴페인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 같이 참석했던 인 비노 베리타스 회장의 와인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1988년, 95년 빈티지 ‘동 페리뇽’을 같이 비교 시음하면서 프랑스에서 온 전문가 브느와 구에즈의 자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던 점도 무척이나 좋았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유럽인들은 하나의 감각적 체험을, 그것이 청각적이든 미각적이든, 참 다양한 어휘와 표현으로 묘사해낸다. 우리에게 누군가 “와인 어때요?” 하고 물으면 흔히 “좋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별로예요” 식의 정말 간단한 말로 답하고 만다. 하지만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적 기쁨을 더욱더 크게 해준다.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동 페리뇽' 런칭 디너가 열린 하얏트 호텔 파리스 그릴 전경.

    유럽 사람들은 동 페리뇽 1996년 빈티지에 대해 “환한 빛이 터지는 것 같다”고 한다. 영어로 ‘burst of light’라는 표현을 쓴다. 시적인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쓰는 프랑스 사람도 있었다. “천국에서는 천사가 모차르트를 들으며 동 페리뇽 1996년을 마시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작은 감각적 차이를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매우 세련되고 문화적이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렇다면 우리도 샴페인을 마실 때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를 정리해보자. 코르크를 딴 직후 나오는 아련한 하얀 연기가 있다. 흔히 무심히 지나치는 이 순간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아주 재미있다.

    샴페인은 튤립 모양의 기다란 잔이 어울린다. 아름다운 글라스에 샴페인을 따르는 순간 부풀어오르는 거품과 사각사각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거품이 가라앉으면 이제는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를 즐길 수 있다. 이 작은 기포가 오랫동안 올라오면 좋은 샴페인이다.

    거품과 향의 축배 … 매력 만점  ‘샴페인’

    샴페인 발명자의 이름을 딴 고급 샴페인 '동 페리뇽'.

    이번에는 코로 천천히 수많은 향기를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입에 한 모금 샴페인을 머금고 코로 느꼈던 향이 입으로도 느껴지는지를 체크한다. 혀의 부위에 따른 맛의 차이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포인트는 입 전체를 자극하는 거품의 느낌. 때로는 살짝 입안이 아플 정도로 자극적이기도 하다. 샴페인 한 모금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느낌은 이처럼 다양하고 감각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력적인 샴페인은 과연 무엇과 잘 어울릴까? 호사스러운 경우에는 캐비어가 많이 따라 나온다. 아니면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처럼 딸기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샴페인을 함께 마시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샴페인을 혼자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샴페인은 함께 기뻐하는 술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축하한다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 슬프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Tips

    크뤼그 |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LVMH사가 만드는 고급 샴페인. 크뤼그 그랑 쿠베는 섬세한 기포가 특징적인 호박빛이 나는 샴페인이고, 크뤼그 클로 뒤 메스니는 한 해에 1만 병만 생산되는 최고급 샴페인이다.

    동 페리뇽 | 샴페인을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딴 명품 샴페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 공식 샴페인으로 사용됐으며 007영화에도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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