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04.07.01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해수 순환이 지구에 큰 영향 … 런던의 따뜻한 겨울도 대서양發 더운 바닷물 덕분

  • 김경렬/ 서울대 해양연구소장ㆍ지구환경과학부 교수 krkim@snu.ac.kr

    입력2004-06-25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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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SF영화 ‘투모로우’가 지구촌 곳곳의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해류의 흐름을 바꿔 결국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게 된다는, 지구 대재앙을 다룬 영화다. 에머리히 감독은 어디에서 이런 영감을 얻었을까.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기후를 결정짓는 요소들 가운데 ‘해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런던의 겨울은 북위 37°인 서울의 경울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런던의 위도는 북위 51°나 된다. 겨울 평균 온도가 -10℃인 사할린의 위도와 같다. 어떻게 런던의 겨울은 이렇게 따뜻할까. 유럽 사람들은 바다에 감사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대서양 적도에서 출발한 더운 바닷물이 멕시코만류, 북대서양난류 등의 이름으로 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에까지 북상하면서 인접 대륙에 열기를 운반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런던이 처음부터 이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300만년 전, 움직임을 계속하던 북미와 남미 대륙이 파나마지협을 만들며 서로 만나면서 지구 기후는 놀랍게 변화했다. 태평양으로 그대로 건너가버리던 적도 대서양의 따뜻한 해수가 새로 생긴 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미대륙의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하면서 냉장고 같았던 런던이 오늘날의 따사로운 곳으로 변화했다.

    “수천년 뒤 지구는 다시 빙하기”

    300만년 전의 일은 인류의 기준으로 보면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이다. 그러나 45억년의 긴 역사를 가진 지구의 기준으로 보면 0.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 시기에 지구는 또 하나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간다. 지구 기후가 12만~13만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를 오가는 자연의 맥동(脈動•주기적으로 움직이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바다에 살던 작은 생물의 껍데기나 고위도에 쌓여 있는 거대한 빙하의 동위원소 조성을 분석해 지구과학자들이 얻어낸 과거 지구기후의 비밀이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남극 보스토크의 3600m나 되는 빙하 시추자료는 지난 40여만년 동안 지구 기온이 6°C 넘게 오르내리는 변동을 네 번이나 반복해온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이런 변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유고슬라비아 밀랑코비치의 이론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와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 그리고 자전축의 축차운동으로 인해 지구가 받는 태양에너지가 주기적으로 변동하면서 지구가 추위와 더위를 반복한다는 이론이다. 일부 학자들은 특히 지난 300만년 동안 기후가 맥동을 해온 것 역시 한편으로는 파나마지협이 만들어지면서 바뀐 해수의 순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밀랑코비치 이론은 앞으로 수천 년 뒤면 지구는 지금까지 6000년간 누려온 따뜻한 간빙기를 마감하고 자연의 궤도를 따라 다시 빙하기를 향해 갈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지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자연의 궤도를 순순히 따라갈 것 같지 않다. 지난 200여년 동안 지구는 사람 때문에 45억년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60억명이 넘는 인류 전체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지구가 감당해내지 못하고 몸살을 앓으면서 지구가 빠르게 더워지는 것이 바로 대표적 사례다. 1988년 조직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2001년 3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는 지난 120년 동안 평균온도가 0.6°C나 올라갔다. 1만년에서 10만년에 걸쳐 6°C 정도 변화해온 지구의 과거와 비교해볼 때 최근의 온도 변화는 걱정스러운 수준.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온난화가 빙하 계속 녹이면 대재앙?

    더위에 시달리던 지구가 급작스레 빙하기로 바뀌는 기후변동이 과연 가능할까. 최근 과학자들이 밝혀낸 비밀의 하나는 이런 급격한 기후변동이 과거에 이미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빙하기가 절정이었던 2만년 전을 고비로 지구는 따뜻한 기후를 향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1만3000년 전 지구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약 1200년간 다시 빙하기를 겪었다. 이 시기를 영거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 Event)라고 부른다. 드라이아스(Dryas)는 고위도 고산지역의 추운 기후대에 번성하는 담자리꽃의 영어이름인데, 지구가 더워지면서 서서히 고산지대로 물러나던 담자리꽃이 이 시기에 갑자기 다시 번성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한 번 도는 데 1000년 넘게 걸리는 대양 컨베이어벨트. 최근 연구들은 이 순환이 지구 기후에 미치는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왜 지구는 이런 갑작스런 소빙하기를 경험했을까. 북상하며 유럽을 데워주던 짠 해수가 그린란드 지역에 도달할 때쯤 되면 이미 온도가 꽤 내려가 밀도가 높아지면서 북대서양에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해수 순환이 시작된다. 무거워져서 바닥으로 가라앉은 해수는 미주대륙을 따라 남하해서 남극을 돌아 인도양, 태평양으로 이동하며 서서히 다시 해수 표면으로 올라와 대서양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한다. 한번 도는 데 1000년 넘게 걸리는 이 느린 해수의 순환을 해양학자들은 대양 컨베이어벨트라고도 부른다. 지구가 따뜻해지고 빙하가 녹으면서 캐나다 서부에 거대한 담수호가 만들어졌다. 담수호는 계속 넘쳐나는 물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 북대서양으로 담수를 쏟아부었다. 1만3000년 전의 일이다. 이런 찬 담수가 북대서양의 짠물을 희석해 가볍게 만들면서 이곳에서 시작되던 컨베이어벨트를 멈추어 서게 했다.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영거드라이아스기의 원인을 찾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가 빙하를 계속 녹이기 시작하면 혹시 이런 갑작스런 사건이 재현되지는 않을까. 1만3000년 전 발생했던 사건에 과학자들이 영거(Younger)라는 비교급을 쓴 이유가 혹시 무의식적으로 영기스트(Youngest)라는 최상급의 이름을 붙일 다음 재난을 예고한 것은 아닐까. 스펙터클을 위해 재앙(災殃)과 관련한 소재를 찾던 할리우드가 이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전 세계의 부지런한 해양학자들이 전 지구 규모의 해양관측프로그램인 ARGO, Rapid Climate Change 등을 통해 해수 순환과 지구 기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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