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이런 기업 제품 사지 맙시다”

어린이 노동력 착취·반환경적 기업 거부하는 ‘도덕적 쇼핑’ 지구촌 확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4-01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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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기업 제품 사지 맙시다”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값싼 인건비다. 매년 수만명의 청소년들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3월24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점. 밤 10시가 되자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매장 청소를 시작했고, 한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감자튀김 기계를 분해했다. 그는 기계를 청소하고 쓰다 남은 기름을 통에 넣어 창고로 옮겼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방과 카운터 사이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튀김기름을 다루느라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카운터의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혹시 기름이 쏟아질까 주문을 받으면서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밤 10시30분쯤 가게 문을 나섰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튀김기계 청소처럼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한 시간치 임금을 더해 1만4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불과 일주일 전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각각 3500명, 2800명의 청소년(15~17세)들에게 노동부 인가를 받지 않고 심야(밤 10시 이후)에 일을 시키고 주휴수당도 주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밤 11시30분 폐점시간까지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번 단속이 서울 종로 등 3개 구에 있는 맥도날드와 버거킹에 한해 이뤄졌기 때문인 듯했다.

    패스트푸드 등 다국적기업 상당수 포함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위법 사실이 알려지자 버거킹은 1억원에 이르는 주휴수당을 지급했고, 맥도날드는 4월2일까지 4억원의 주휴수당을 돌려주고 밤 10시 이후 아르바이트생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노동부 인가를 받아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패스트푸드점은 번화가의 경우 대개 자정까지 영업을 하며 맥도날드 청담점처럼 24시간 문을 여는 곳도 있다.



    “이런 기업 제품 사지 맙시다”

    공평한 무역과 친환경적 생산, 노동권 존중 등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는 ‘바디샵’.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잡지 광고를 하는 등 다른 기업들의 환경캠페인과 큰 차별성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왼쪽). FIFA에 납품하는 수제 축구공의 대부분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10세 안팎 어린이들이 만든다.

    이번에 연소근로자 고용실태를 조사한 서울지방노동청 방극철 근로감독관은 “가정 형편상 불가피하면 노동부에서 인가를 내준다. 그러나 법의 취지는 아이들에게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체인의 속성은 저임금을 받는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구조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고 말한다.

    사실 맥도날드나 버거킹은 즉시 시정조치를 취했고 야근수당 지급이나 휴식시간 보장 규정 등은 ‘깔끔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 패스트푸드점과 경쟁해야 하는 동네 피자가게나 치킨집은 시급도 훨씬 적고 노동부 인가 개념조차 없다.

    방감독관의 말처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화, 전 지구적 규모로 확대된 경제를 버티고 있는 것이 값싼 노동력이라는 것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다국적기업들은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공해물질을 내뿜으며,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품을 팔고, ‘자유무역(free trade)’을 통해 소규모 농·축산업자들을 몰락하게 한다.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제3세계의 사람들은 하루 16시간 노동에 3달러를 받으며 맥도날드에서 공짜로 끼워주는 장난감 만드는 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도덕적 쇼핑(ethical shopping)’이란 개념이 제기된다. 소비자들이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반(反)환경적인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고, 상대적으로 공평한 무역과 친환경적 생산을 하는 기업의 물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반인권, 반환경적 생산을 생산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문제 삼으면 공장 문을 닫고 더 싼 노동력이 있는 나라로 가버리는 것이 세계화한 기업의 본질이기에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선’에 있는 소비자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국제민주연대와 외국 비정부기구(NGO)들이 FIFA가 사용하는 수제 축구공의 75%가 10살 안팎의 파키스탄 어린이들 손으로 꿰매지고 있으며 이 아이들은 축구공을 만드느라 교육은커녕 부모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FIFA가 납품업체를 바꾸도록 압력을 가한 것도 한 예다.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이 이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최초의 전 세계적인 ‘도덕적 쇼핑’ 캠페인은 1991년에 시작된 ‘CCC’(Clean Clothes Campaign)로 알려져 있다. 당시 네덜란드의 한 의류 회사가 방글라데시에 세운 공장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노동자들이 사망하자 네덜란드 인권운동가들이 현장 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베네통 같은 유명한 유럽 브랜드의 옷을 만들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8달러를 받고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피로 물든 옷’을 사 입지 말자는 소비자운동을 벌였다.

    이 사건은 유럽 인권운동가들이 연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94년 태국에서 세계적 완구브랜드의 하청을 받은 장난감 공장에 불이 났으나 비상구가 없어 노동자들이 모두 사망하자 유럽과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소비자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피로 물든 장난감을 주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나, 1997년 베트남의 맥도날드 경품 장난감 생산 공장에서 25명의 노동자가 아세톤 중독으로 사망하자 보이콧 운동을 전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씨는 “이런 저력 때문에 오늘날 유럽의 소비자운동은 독재국가로 가는 항공선까지 폐쇄할 만큼 강력하다”고 말한다.

    세계적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의 창립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아니타 로딕은 2003년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국적기업들은 제3세계 곳곳에 숨겨놓은 하청공장들을 투명하게 밝히고, 국제노동기구 등은 상대적으로 인권을 존중하고 친환경적인 기업의 이름을 매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세계 비정부 노동단체들은 ‘글로벌익스체인지’(www.globalexchange.org)나 ‘글로벌마치’(www.globalmarch.org) ‘겟에티컬’(www.getethical.com) 등을 통해 매년 소비자 감시가 필요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발표하고, 노동권을 존중하고 친환경적인 기업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행한다.

    민주노총 국제부 이창근씨는 “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매년 보이콧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는 나이키와 갭 등 유명 의류회사들과 몬산토, 네슬레, 엣소(엑슨),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도 하청공장의 비인간적 노동자 대우 때문에 외국 소비자 등에 의해 자주 캠페인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중 나이키와 갭은 중남미와 아시아의 하청업체들을 통해 여성 노동자와 어린이들을 착취한다는 이유로 ‘CCC’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으며, 몬산토는 유전자 조작식품으로 전 세계를 석권해 특히 유럽에서 불신을 받고 있다. 네슬레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조 탄압의 사례를 갖고 있으며, 엣소는 기름 대량 유출로 알래스카를 오염시킨 데다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환경단체들의 집중적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엣소는 자사의 로고를 패러디했다며 프랑스 그린피스를 고소했다가 패배했다.

    세계적 커피 재벌 스타벅스는 ‘자유무역’으로 싼 커피콩을 수입해 아시아와 남미의 자영농을 몰락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매년 7억 마리의 닭을 소비하는 패스트푸드 체인 KFC는 지난해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비위생적인 사육장과 잔인한 도살방식을 쓰는 닭 납품업자들과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맥도날드 등은 이미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식인 그룹에서 ‘도덕적 쇼핑’에 대한 지지층이 늘어나자 사회적 발언에 적극적인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상류층 소비자들도 이에 합류했다. 영국의 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앙골라 내전을 일으킨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이 세계적 보석회사 드비어스에 다이아몬드를 팔아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어린이들이 광산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고발하자 여배우들과 상류층 고객들이 드비어스 제품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급해진 드비어스는 “앙골라 및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를 수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패션잡지 ‘보그’는 “최고급 밍크가 부의 상징인 때가 있었지만, 지금 최상류층은 네팔의 산양 농가에서 산 양털로 짠 캐시미어 코트를 입는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CCC 등 ‘도덕적 쇼핑’ 캠페인을 철없는 젊은이들의 도발로 치부했던 다국적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 맥도날드는 매장 앞에서 ‘맥도날드 무엇이 잘못인가’란 전단을 나눠주던 평범한 시민운동가를 고소했다. 6년간의 재판을 통해 영국 사법부는 시민운동가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영양, 노동력 착취, 소 사육을 위한 산림파괴 논란 등이 적나라하게 알려졌다(다큐멘터리 ‘맥도날드 망신당하다’).

    나이키는 1998년 회장이 직접 “운동화는 18세 이상, 의류는 16세 이상 노동자가 만들게 하겠다. 접착제를 독성이 적은 것으로 바꾸겠다”는 ‘윤리강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2년에도 캄보디아 하청공장에서 어린이들이 16시간씩 옷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FIFA도 97년 스포츠용구 납품업체는 14세 이하 아동의 노동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윤리강령’에 사인했지만, 하청공장들을 감시하지 못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재활용컵 연구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세운 친환경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1998년부터 커피재배 농가로부터 적절한 가격을 주고 수입한 커피콩에 ‘공평한 무역(fair trade)’이란 이름을 붙여 한 달에 하루 ‘오늘의 커피’로 제공한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에서도 지난해부터 ‘공평한 무역’ 원두를 팔기 시작했는데, 판매량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패스트푸드점 일회용 컵 논란 ‘아직도’

    “이런 기업 제품 사지 맙시다”

    매장 밖으로 가져가는 일회용 컵 환불률이 10~30%로 낮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매장 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는 컵 값은 고스란히 매장 몫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

    이처럼 다국적기업들이 본사 차원에서 ‘윤리강령’을 내놓고 있지만 낮은 가격에 하청, 재하청을 주는 생산 구조와 프랜차이즈라는 일종의 하청판매 방식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기에 현장에서는 여전히 반인권적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다국적기업들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으로 이미지를 조작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한다.

    친환경, 인권존중 기업으로 자주 거론되는 ‘바디샵’은 마케팅 비용, 즉 광고비와 화장품 용기 디자인 지출을 없앰으로써 이윤을 내고, 그 이윤을 잠비아의 양봉업자나 브라질 농가 등 지역 생산자들에게 돌려준다. 바디샵의 동물실험반대 정책이나 용기의 단순화와 재활용은 이제 유럽 화장품 회사들에선 대세가 되었다.

    한국에서 다국적기업을 홍보하는 이들은 “국내 소비자들은 노동권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없다. 마케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디샵’조차 본사로부터 한국이 아주 예외적인 국가라는 이유로 잡지에 한해 광고를 내도록 양해받았다고 한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환경이나 노동 문제는 눈감아준다는 개발 논리, 우리나라도 다국적기업의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실 등을 고려하면 그들의 말은 진실처럼 들린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도덕적 쇼핑’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시민단체들이 대기업에 재활용이 가능한 폐카트리지 생산을 요구한다든가(참여연대),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일회용품 재활용 결과를 직접 조사해 발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덕적 쇼핑’의 기초적 정보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패스트푸드점은 100평, 커피전문점은 50평 이상 매장 안에서 도자기잔 같은 다회용컵을 쓰도록 돼 있다. 전체 점포 중 이렇게 큰 매장은 20%도 안 될 만큼 규제가 헐렁한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도 “컵 설거지가 안 됐다”며 돈을 받고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 가게들이 많다. 깜박 잊고 컵을 매장 내 쓰레기통에 버리면 점포에서 컵 값을 챙겨간다. 한 커피전문점 홍보담당자는 “솔직히 머그컵 부피가 너무 커서 충분한 개수를 놓기 부담스럽다. 일회용 컵 때문에 너무 골치가 아프다”고 털어놓는다.

    환경부 폐기물정책과 윤웅로 사무관은 “환경부와 협약한 35개점이 서로 컵을 받아주면 좋겠지만, 가짜 컵이 나돌까봐 못한다. 컵 회수금이 현재 20억원인데 환경부에서 운용하려면 인건비가 나가 업체에 맡겨둔 상태”라고 말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다회용 컵을 요구한다면, 환경부와 업체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연합은 “평수에 상관없이 매장 내에선 무조건 다회용 물건을 쓰도록 해야 한다. 일회용 물건의 발생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유리컵을 요구하는 것, 온두라스나 엘살바도르에서 만든 옷을 무조건 싸다고 사지 않는 것, 아이들의 피로 얼룩진 유명브랜드의 운동화를 거부하는 것, 오늘밤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피자를 먹지 않는 것, 세계화라는 전쟁 속에서 소비자들이 승리하는 ‘도덕적 쇼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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