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6

2004.03.18

브랜드 띄우기 ‘마케팅 전쟁’

아파트 업체들, 고급화·인지도 확보 총력 … 특급스타 동원한 광고 펑펑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3-11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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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띄우기 ‘마케팅 전쟁’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는 광고 빈도 등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한다.

    한때 ‘현대아파트’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인근의 다른 아파트보다 값이 비쌌다.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공유했던 ‘현대아파트’라는 상표가 소비자를 몸달게 한 것.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 구미도 바뀌는 법. ‘삼성’ ‘현대’ ‘롯데’ ‘LG’ ‘SK’ 등 대기업의 이름은 아파트 브랜드로선 더 이상 소비자를 유혹하지 못한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로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의 종가(宗家)격인 현대건설이 ‘홈타운’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를 몸달게 하는 아파트의 요소엔 값 입지 교통 투자가치 학군 브랜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부가적 요소였던 ‘브랜드 가치’는 요사이 그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브랜드의 ‘아우라’가 상표 로고 수준을 넘어 아파트 값의 가늠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현대아파트가 그랬던 것처럼, ‘낮선 생활로 초대하고’ ‘여자의 생활을 바꾸며’ ‘감각이 까다로운 그녀’에 잘 어울린다는 ‘브랜드 아파트’는 “주변의 일반 아파트보다 10% 가량 값이 비싸다.”(세중코리아 김학권 대표)

    브랜드 아파트 프리미엄 쑥쑥 … 분양가 비싸도 인기 폭발

    브랜드 아파트의 연착륙과 함께 아파트 시장에도 시나브로 ‘명품’이 등장했다. 질투심을 고약하게 건드리는 래미안(삼성물산)의 광고처럼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정작 수요자들에게 필요한 품질 향상은 멀리한 채 ‘브랜드’만 가지고 장사하는”(건설업체 대표 L씨) ‘명품 아파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브랜드 아파트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수숫대 꼭대기의 잠자리 신세였던 건설업계를 살린 구세주이기도 하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으며 광고전을 벌인 브랜드 아파트는 평당 500만원 하던 분양가를 순식간에 평당 1000만원, 1500만원으로 둔갑시켰다.”(분양대행사 대표 K씨)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은 분양가 상승→인근 지역 아파트 값 상승→분양가 재상승의 악순환 구조를 만들며 아파트 값 폭등에 불을 붙였다. 2004년 실시된 서울의 1·2차 동시분양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평균 1384만원으로 지난해 평균보다 300만원이나 많다. 중견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업체들이 고급 아파트에 매달린 것은 부동산 열풍이 불어 올려 부르더라도 분양이 잘 됐고,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지은 명품 아파트로 업체의 이미지를 단숨에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아파트는 하나같이 ‘웰빙아파트’ ‘인터넷아파트’ ‘안전한 아파트’ ‘환경아파트’ ‘건강아파트’를 내세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고급스러워진 ‘빌트인’은 당연히 소비자의 부담. 업계가 내부 인테리어와 마감재를 고급화해 건축비를 올리는 것은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안전놀이터 건강지압보도 골프연습장 헬스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생태공원 정자공원을 꾸미는 데 필요한 돈 역시 분양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며, 장동건(1년 5억원) 김남주(1년 5억5000만원) 이영애(6개월 3억원) 등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를 투입한 광고 마케팅 비용 역시 원가에 포함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브랜드 아파트를 분양받은 소비자들은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분양 가격보다 최고 3억~4억원대 프리미엄이 붙은 단지가 허다하고 입소문이 퍼져 너나없이 이사 오려 하고 있으며”(경기 용인시의 부동산업자) “분양가를 조금 더 주고 샀더라도 동일 지역, 동일 입지에서 단연 최고가를 형성하고 있기”(솔렉스플래닝 장용성 대표)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이왕이면 브랜드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구입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아파트 값 상승과 그로 인한 중산층 이상 계층의 절대적 부의 증가는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일관된 흐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마른 라 발레 대학의 즐레조 발레리 교수는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 계급에 주거공간은 물론 ‘사회적 인정’의 상징성을 제공해왔다”(‘서울의 아파트 단지와 도시경관’ 논문)고 분석했다. 아파트가 계급을 나타내는 기재로 이용돼왔다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만드는 ‘캐슬’과 ‘낙천대’는 이름이 다른 만큼 사는 이가 다르고, 입지가 그저 그런 재건축 단지에 썼던 ‘힐스빌(HillsVill)’이 다른 곳에선 ‘위브(We’ve)’로 옷을 갈아 입는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포스코건설이 과거에 지은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더#”으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어쨌든 건설업체들은 브랜드 시대의 도래로 인해 도약과 추락이 엇갈리는 무한경쟁 시대를 맞이했다.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는 광고 노출 빈도 등에 따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과 포스코건설의 ‘더#’, LG건설의 ‘자이’는 브랜드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자이’는 배우 이영애가 갖고 있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이미지를 이용해 최근 들어 소비자에게 더욱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호도 떨어지면 가차 없이 퇴출 ‘냉엄한 시장’

    브랜드 띄우기에 나선 건설업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보통 브랜드 띄우기는 서울 강남지역 등 요지에 고급스럽고 화려한 대단지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다. 예컨대 ‘하이페리온’(현대건설)은 ‘특별한 소수를 위한 최고급 아파트’, ‘Extra Intelligent(특별한 지성)’를 뜻하는 ‘자이’는 ‘능력있고 지성적인 사람들이 선택하는 첨단 고급 아파트’라는 컨셉트를 담고 있다. ‘부유한 지식인’이 사는 아파트도 있다. ‘rich’(부유한·영어)와 ‘Intelligentsia’(지식인·러시아어)의 합성어인 ‘리첸시아’(금호건설)가 그것이다.

    고급화에 실패했거나 인지도 선호도가 떨어지는 브랜드는 가차 없이 퇴출된다. 한진중공업은 ‘그랑빌’이란 아파트 상표를 최근 ‘로즈힐’로 바꿨다. 쌍용건설의 ‘스윗닷홈’은 인지도 확보에 실패한 데다 부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쌍용건설은 워크아웃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해 대대적 마케팅에 돌입한다. 금호건설은 얼마 전까지 ‘어울림’보다 ‘베스트빌’로 유명했고, ‘자이’ 역시 이전엔 ‘LG빌리지’란 풋풋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 아파트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로는 현대건설이 꼽힌다. 홈타운에 밀려 구석으로 숨은 ‘현대’라는 브랜드가 예전에 가졌던 명성을 감각적인 이름의 브랜드들에게 상당 부분 내줬기 때문이다. ‘홈타운’은 선호도에선 여전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으나 인지도에선 과거의 명성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현대건설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브랜드 위주의 마케팅을 포기하고 CI 구축비용을 설계개발비와 우수품질 확보비로 사용하겠다는 것. ‘현대아파트’가 품질과 내구성만으로 다시 소비자들을 몸달게 할 수 있을까. 브랜드 아파트 열풍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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