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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이 추억을 쏟았네

억압의 시절 최대 화제 11편 속편 제작 … 80년대 소재 영화 호응 속 새롭게 주목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애마부인’이 추억을 쏟았네

‘애마부인’이 추억을 쏟았네
”여기 한번 만져봐”라는 대사 한마디로 애마부인 김부선(42)은 1980년대를 되살려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풍만한 가슴의 떡볶이집 아줌마가 숫기 없는 고등학생 권상우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10대 권상우의 팬들은 극장이 떠나가게 비명을 질렀지만, 지금 30대와 40대 관객들은 뇌하수체 깊은 곳에서 떠오른 그녀, 애마부인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당시 한국 남성들의 ‘여신’이었던 김부선에게 교복 입은 남자주인공이 ‘첫경험’을 빼앗기는 아줌마 역을 맡긴 것은 ‘짓궂은 자학’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유하 감독은 웃음부터 짓는다. 이미 그는 1986년 ‘파리애마’란 시에서 80년대가 ‘자기반성은 없고 피스톤 운동만’ 있었던 시대이며, 시집 ‘무림일기’(1989)에선 ‘밤늦게 떡볶이 먹다 떡볶이집 아줌마한테 유혹당한 나’라고 적었다.

“주인공의 첫경험인데 촌스러운 장면으로 전락해선 안 됐어요. 절망감을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를 찾다 김부선씨를 떠올렸지요. 대학 때 김부선씨의 데뷔작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를 김성수 감독과 함께 봤는데 ‘팜므 파탈’(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성들을 종속시킬 뿐만 아니라 치명적 불행을 야기시키는 여성에 대한 총칭)의 인상을 받았어요. 당시 김부선씨는 톱모델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어요.”

떡볶이집 유혹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던 김부선의 애드리브로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여성지들이 ‘애마부인3’(1985)에 출연한 이후 그녀의 20년을 되살리고, 인터넷엔 그녀의 팬클럽들이 생겨나 다음 영화 ‘인어공주’를 기다린다.

3대 애마 김부선 팬클럽 생겨



‘애마부인’이 추억을 쏟았네

‘말죽거리 잔혹사’의 명장면 중 하나인 떡볶이집 유혹 신으로 연기자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김부선.

한 영화팬은 그녀를 다시 본 순간 눈시울이 ‘시큰’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동안 영화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건 아니었다. 김부선은 “연기는 늘 하고 싶었죠. 안 불러줘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김성수 감독은 그녀를 ‘비트’에 불러냈고, ‘게임의 법칙’, ‘리허설’ 등에도 출연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마담 역할이었다. 그러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30~40대 관객들의 기억을 헤집어 심란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되살려놓았다. 80년대의 빛과 그늘을 환기하기에 애마부인만큼 강력한 상징은 없었던 것이다. ‘낮에는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심산) 기형적인 시대, 어두운 극장에 모여든 남자들을 젖은 입술로 위로해주던 애마부인들은 지금 다들 잘살고 있을까?

1982년 처음 제작된 ‘애마부인’은 당시 6개월 동안 서울극장 한 곳에서 42만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속편을 남겼다. ‘애마부인’이 11편까지 만들어졌고, 3편까지 연출한 정인엽 감독이 영화사와 결별한 뒤 연출한 ‘파리애마’, ‘짚시애마’가 있으며 이름만 차용한 ‘겨울애마, 봄’, ‘드라큘라 애마부인’, ‘애마와 백수건달’이 95년까지 맥을 이었다. 그러다 보니 애마부인들도 10여명이 넘는다.

1대 ‘애마부인’으로 톱스타가 된 안소영은 당시 ‘신협’의 연극배우로 임권택 감독 등에 의해 발탁돼 영화를 시작했다. 160cm의 크지 않은 키에 풍만한 가슴으로 ‘애마부인’이 된 안소영은 그 후 ‘그 섬에 가고 싶다’(1993)까지 출연했으나, 지금은 미국 뉴저지에서 혼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대 오수비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애마부인’의 주인공 이름을 예명으로 하여 1983~86년까지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등 에로물에만 10여편 출연한 뒤 결혼해 도미했다. 남편은 중학교 때 사귀던 남자친구로 소식이 끊겼다 영화 덕에 다시 인연이 이어져 불 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혼한 상태로 오수비는 시카고에서 미용실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미인대회 출전자들을 여럿 내는 등 사업수완을 보이고 있다.

‘애마부인’이 추억을 쏟았네

'파리애마' 출연 이후 TV로 옮겨와 지금까지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유혜리.

3대 김부선(예명·염해리)은 ‘애마부인3’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복역한 후 결혼하지 않은 채 딸을 낳고, 그 딸을 빼앗겼다 되찾으면서 심장병까지 앓는 등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7년 전부터 서울 한남동에서 ‘니키타’란 카페를 운영하는데 여고생 딸이 연기에 재능을 보여 걱정 반 뿌듯함 반이다.

정인엽 감독이 손을 뗀 ‘애마부인4’에서 ‘애마부인11’까지는 완성도나 관객수에서 전편의 명성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11편은 남대문극장에서 겨우 개봉됐다. ‘애마부인’ 1편에서 안소영은 가부장적 남편에게 “내가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관객들을 떨게 했지만 속편들은 논리 없는 벗기기 경쟁으로 일관했다. 1994년 제작된 10편에서 동성애 소재가 나온 것이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할까.

5대 애마부인 소비아가 ‘홧김에?’, ‘옐로우하우스’ 등 일련의 에로물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4편 주리혜, 6편 다희아, 7편 강승미, 8편 루미나, 9편 진주희, 10편 오노아, 11편 이다연 등은 ‘애마부인’ 주연 후 기껏 한 편 정도의 영화를 더 찍고 충무로를 떠났다. 이중 강승미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 충격을 주었다. 또한 19세에 애마부인이 된 진주희는 J양 비디오로 불린 일본산 포르노물에 출연, 구설에 올랐다. 한 스포츠신문 연예부장은 “4편 이후 애마부인들은 스캔들 소재로나 오르내릴 정도였다. 오노아는 오리지널 에로전문 배우라 부를 만했다”고 말한다.

관객들 극장 밖에선 외면

정인엽 감독의 ‘적자’ 애마부인으로 정감독이 예명을 지어준 유혜리는 칸과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파리애마’(1988)로 스타덤에 올라 실비아 크리스텔과 ‘성애의 침묵’서 공연했다.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포악한 아줌마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현재 MBC ‘성녀와 악녀’에 출연 중인데 SBS 전문 MC 1기인 최수린이 친동생이다. 한때 동료 연기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사생활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로케한 ‘짚시애마’(1990)는 이화란이란 서구적 외모의 모델 출신 배우와 외국 남자 배우의 섹스신을 보여주어 관객들을 주눅 들게 했다. 이화란은 결혼 후 은퇴, 국내에 머물고 있는데 그의 지인은 “다소 보수적인 집안과 결혼해 애마부인이었던 사실을 말하기 꺼려한다. 잘살고 있다”고 전했다.

애마부인들은 대개 연기자로 그다지 성공한 편은 아니었다. 정인엽 감독 말처럼 당시 ‘애마부인’은 주간지 가십이 살리고 죽였다. 관객들은 어두운 극장에서 애마부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밖에선 그녀들을 부인했다. ‘애마부인’들은 소위 3S로 요약되는 전두환 정권의 음습한 프로파간다로 치부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부선이 복역 중 운동권 여학생을 알게 돼 후에 수배학생을 숨겨주고 16mm ‘굴레를 벗고서’에 출연한 것처럼 아이로니컬한 사건도 없을 듯하다.

최근 80년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나오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기억보다 앞선 감각의 흔적을 발견한다. 비평가들은 ‘애마부인’이 당시 검열과 싸우며 경직된 유교주의적 사고와 표현방식을 통째로 흔들어놓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80년대를 억압과 위선이란 말로 간단히 땅에 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긴 했지만 그 시절에도 진실했던 기억들이 있었다. 애마부인들이 깨닫게 해준 육체의 즐거움처럼. 김부선은 최근의 몇몇 인터뷰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냈다. “김부선은 대마초, 감옥, 사생아 그게 다인가 봅니다. 이제 더 말할 것이 없어요.”

‘애마부인’이 나온 지 20년이 훨씬 지났다. 이제 ‘애마부인’에게 사과해야 할 때다.





주간동아 424호 (p64~66)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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