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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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서러운 환자 ‘봉’ 취급 분통터져

종합병원 병실 비품·의료용품 구입 강요… 이의 제기해야 반환, 대부분은 그냥 당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2-0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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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 서러운 환자   ‘봉’ 취급 분통터져

    병원측이 환자들에게 사오도록 요구하는 물품 중에는 치료용품도 포함돼 있다.

    ”당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소리야. 말귀도 못 알아듣고.”

    백혈병 환자 김모씨(55)는 지난 7개월 동안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움에 복받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김씨가 병원측으로부터 온갖 악담을 들으며 괴롭힘을 당한 까닭은 그가 그동안 이어져온 관행에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 지난해 6월 이후 항암치료를 위해 4차례 이 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말로만 듣던 ‘병원 권력’의 실상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보험급여·입원료에 포함된 사항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 수속을 밟던 김씨는 병원측과 처음으로 부딪쳤다. 병원측이 김씨가 모아온 헌혈증서에 대한 수혈비 공제를 거부한 것. 환자의 수혈 비용을 헌혈증서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 하지만 병원측이 “병원 내규상 불가능하다”며 수혈 혈액에 대한 현금 지급을 강요해 김씨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후 김씨가 병원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자 병원측은 그때서야 받은 돈을 되돌려주고 헌혈증서로 수혈 비용을 대체했다.

    병원측의 진료비 불법 징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원측은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질환의 특성 때문에 자주 무균실을 써야 하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병원에서 당연히 지급해야 할 치료용품과 병실 비품을 병원 내 매점에서 직접 사오도록 강요했다. 체온계, 일회용 마스크, 일회용 장갑, 특수 티슈, 치과용 칫솔, 감염예방 거즈(테가덤), 주사·수혈 소독 케이스(아이오다인 케이스), 심지어 종이컵, 볼펜, 락스 등에 이르기까지 병원은 환자의 치료와 감염 방지, 무균실의 소독·청정 유지에 필요한 모든 물품에 대한 비용을 환자 몫으로 돌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김씨는 관련 규정을 찾아보았고, 이 모든 것이 보험급여와 입원료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껏 환자들은 건강보험료와 입원료를 내면서 물품비용을 한 번 치렀는데도 또 따로 직접 물품을 구입하면서 이중으로 비용을 치른 셈. 반면 병원측은 보험료와 입원료를 받으면서 물품비를 챙기고도 자신들이 사서 지급해야 할 물품비용을 환자들에게 내게 함으로써 두 배로 이익을 얻은 꼴이다.

    김씨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진정서를 넣는 등 항의에 나서자 그때서야 병원측은 김씨가 지난해 6월과 8월, 9월 세 차례 입원하면서 산 물품비용 22만원 중 15만원을 12월 중순 되돌려줬다. 더욱 기가 막힌 대목은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이 병원이 김씨를 제외한 다른 환자들에게 버젓이 물품비용을 그대로 받고 있다는 사실. 병원측은 이후 김씨에게만 물품키트를 따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김씨는 “환자가 알고 따지면 돈을 내주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넘어가는 게 관행이 되고 있다”며 “1년에 물품비용으로만 100만원 이상을 쓰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과연 이런 일이 특정 종합병원에만 국한된 것일까? 믿기 힘들겠지만 김씨가 입원한 민간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대학 부속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병원에 따라 물품의 종류만 조금 다를 뿐 보험급여와 입원료에 포함된 병실 비품, 의료용품 구입을 강요하는 행위는 종합병원에선 이미 오랜 관행으로 굳어 있다. 이런 관행은 지난해 7월 보건의료노조와 건강세상네트워크가 국내 9개 국립대학 부속병원의 중환자실과 무균실 물품 구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어느 대학병원 가릴 것 없이 중환자실은 4~14가지, 무균실은 19~28가지의 물품을 사오도록 강제하고 있었던 것.

    현행 건강보험급여 산정지침에 따르면 ‘무균치료실 입원료에는 무균치료실의 청정도 유지를 위한 세균검사 및 기타 소모품의 비용이 보험급여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별도 산정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지침에는 ‘기타 소모품’의 범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해놓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공단은 경북대 병원에 입원했던 한 환자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의료 물품세트(슬리퍼, 휴지, 치약, 칫솔, 비누, 물컵, 체온계 등) 및 병실비품(체온계, 수건, 소변기, 대변기, 수저, 환의, 시트, 홑이불, 담요, 베개)은 병원관리료, 환자관리료, 식대에 포함되어 있어 환자에게 별도로 부담하게 할 수 없다. 단 환자가 파손하거나 귀가시 가져간 경우에는 실비로 환자가 부담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 고시(제2000-73)에도 명백히 나와 있는 내용.

    아파 서러운 환자   ‘봉’ 취급 분통터져

    병원의 사기 상술에 시달려온 환자들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올린 진정서와 물품구입 영수증.

    하지만 각 병원들은 고시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물품을 환자측이 직접 구입해야만 중환자실이나 무균실 입실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들이 물품을 사오면 의사나 간호사도 이를 함께 쓰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모 대학병원에서 남편이 골수이식 수술을 해 물품을 구입했던 이모씨(54·경북 울진군 후포읍)는 “일회용 마스크와 모자, 장갑을 사놓으면 간호사 의사가 대부분 가져가 썼다”며 “사오라면 사오고 달라고 하면 주고 했지 그게 보험료와 병실료에 포함된 줄 몰랐다”고 억울해했다. 물품 살 돈이 없어 정작 자신은 일회용품에 손도 대지 못했다는 이씨가 한 달여 동안 산 물품비만 어림잡아 50만원 정도. 남편이 이식 부작용으로 1월 초 사망한 후 김씨는 경황이 없어 영수증조차 챙기지 못해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물품비용을 전혀 환불받지 못했다.

    심지어 감염예방 거즈, 주사·수혈 소독 케이스, 종이 반창고 및 강력 반창고 같은 의료용품과 환자의 보호자가 무균실에 들어갈 때 감염을 막기 위해 입는 방진복까지 사오라고 하는 대학병원도 있다. 특히 주사를 맞거나 수혈 받을 일이 많고, 골수이식 수술을 한 백혈병 환자들에게 이런 의료용품 구입비는 전체 진료비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각 병원은 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물품비용을 반환해주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물품비용이 이중 지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다 영수증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물품비를 돌려받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해도 물품비를 돌려주지 않는 병원도 있다. 서울 강남의 A병원이 바로 그런 경우. 이 병원은 백혈병 환자 김모씨(34)의 물품비 환불 요구를 “병실에서 쓰이는 소모품은 입원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김씨는 현재 시민단체와 함께 이 병원을 상대로 물품비 반환 소송을 준비 중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이미 지난해 7월15일 시민단체 연석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병원의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단속에 나서기로 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단속은커녕 실태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비난했다. 사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15일 시민단체가 종합병원의 중환자실과 무균실 물품비에 대한 환자의 이중부담 문제를 들고 나오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실태를 파악해 처벌하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모호한 규정은 분명하게 고쳐나가겠다”고 천명했다.

    그렇다면 이를 단속하고 규정을 정비해야 할 정부는 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그런 약속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들의 보험급여부당신청 등 다른 조사를 하는 데 바빠서 물품비 강요에 대한 실태조사와 단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곧바로 부처간의 협력을 통해 조사에 나서겠습니다.”(보건복지부 보험관리과 담당자)

    보건복지부의 늑장, 탁상행정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환자들을 ‘눈뜬장님’ 취급하는 병원의 사기 상술은 계속되고 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으로부터 사기까지 당하고…, 환자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과연 복지부는 국민을 위한 기관인가, 아니면 병원의 대변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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