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2004.02.12

금고지기들 ‘교도소 잔혹사’

대선자금 관리 원죄(?) 여야 없이 ‘범털’ … 핵심측근서 죄인으로 급전직하 ‘비애’ 더 커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2-04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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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고지기들 ‘교도소 잔혹사’
    ”왜 대선자금의 금고지기를 맡아 이 곤욕을 치르는가라고 자문하면서 회한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1월28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이상수 의원이 발표한 장문의 개인성명에는 금고지기가 갖는 비애가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이의원은 “깨끗한 선거를 치르고 구속되는 반전의 충격”도 감내하기 힘들지만 자신을 비리 정치인인 양 묘사하는 TV 뉴스를 가족과 함께 보는 것이 더 참기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당 한 관계자는 “남들이 맡지 않으려 했던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맡은 것이 실수”라며 이의원에게 동정을 보냈다. 그러나 검찰의 사정 칼날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민들은 그런 검찰에 기대감을 표한다.

    이상수 의원 “회한으로 밤 지새워”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금고지기는 이의원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였던 서정우 변호사, 최돈웅 의원 등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와 부산 캠프의 금고지기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도 춥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지난 대선 때 금고를 채워넣거나 금고 문을 열고 자금집행에 나선 사람들이다. 금고지기들은 한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각 당 대선주자들의 핵심측근으로 활동했지만 이제 그 영광은 간 곳이 없다. 그들은 이제 금고지기의 비참한 말로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금고지기들 ‘교도소 잔혹사’

    2002년 12월17일 서울 강동 유세에 나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왼쪽)와 12월18일 마지막 대선 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 금고지기로 활동했던 권노갑 전 고문은 요즘 심한 동상에 걸려 발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측근들은 “설 연휴 한파를 고령의 권 전 고문이 견디기란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녹내장으로 인한 고통도 권 전 고문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조인다. 지병인 당뇨는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금고지기의 비애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권 전 고문은 1월29일 강북 삼성병원에 입원, 심신의 한파를 피하고 있다. 권 전 고문의 한 측근은 “몸도 몸이지만 억울함과 회한 등으로 화(火)를 다스리는 데 실패해 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1월 잇따라 구속된 2002년 대선 때 여야의 핵심 금고지기 이상수 의원과 김영일 의원의 정치생명은 풍전등화다. 동정의 여지는 있지만, 개혁공천이란 시대적 화두를 넘어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의원은 구속되기 전 노대통령에게 “기업들의 모금 내역을 보여주었다”며 예각을 세웠지만 “지은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개혁 대세론에 맞설 힘이 없어 보인다.

    ‘차떼기’ 모금에 개입한 서정우 변호사의 경우 ‘알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추징금 선고에 대비해 검찰이 서변호사 명의 재산에 대해 보전처분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서변호사의 한 지인은 “서변호사가 이회창 후보에 올인했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금고지기였던 서상목 전 의원은 1월19일 면회 온 이회창 전 총재의 손을 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 전 의원은 검찰과 세풍전쟁을 벌이느라 지난 7년을 허송했다. 서 전 의원의 한 측근은 “결국 세풍이 서 전 의원의 후반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며 지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서 전 의원을 만난 이 전 총재도 이 점을 매우 안쓰러워했다고 한다.

    금고지기들 ‘교도소 잔혹사’

    2002년 대선 당시 각각 여·야의 금고지기 역을 맡았던 이상수 의원(열린우리당) 김영일 의원(한나라당), YS와 DJ의 금고지기 역을 맡았던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왼쪽부터).

    정치인은 통상 ‘교도소 담 위를 걷는 사람’이란 얘기를 듣는다. 금고지기는 담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 분류될 정도다. ‘돈’을 만지는 금고지기는 그만큼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 정치자금은 합법적인 것보다 은밀하게 조성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정치자금 사고는 터지면 대형이다. 누구도 그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 때문에 금고지기 역을 맡으려는 사람은 드물고 맡길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도 드물다. 이상수 의원도 애초 금고지기 역을 자청한 것이 아니었다. 이의원은 설 연휴 직전 기자에게 “돈은 잘 모르지만 나까지 십자가를 거부할 수 없었다”며 악역(?)을 맡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의원은 “솔직히 다시 그런 역할을 맡으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금고지기 역은 주로 권력의 ‘핵심측근’이 맡는다. 유사시 꼬리를 자르는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희생 정신이 필수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홍인길 전 대통령 총무수석비서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노갑 전 고문 등이 대표적인 사례.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전 총재는 동생 이회성씨에게 금고지기 역을 맡겼다.

    금고지기는 입이 무겁고 표정관리에 능해야 한다. 권 전 고문의 한 측근은 “금고지기는 돈이 없어도 있는 척해야 하고 있어도 없는 척해야 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주는 사람보다 달라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포커페이스로 이들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정적들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돈을 나눠주면 당연한 것이고 나눠주지 않으면 나만 돈을 주지 않는다며 뒤에서 씹고 다닌다”는 것. 지난 대선 때 돈을 풀라는 요구를 묵살한 이상수 의원에게 K, C의원 등은 “법조인 출신이 재정을 맡아 선거가 엉망이다. 갈아치워라”며 공격을 했다. “앞으로 보면 이상하고 뒤로 보면 수상한 이의원이 돈을 빼돌린다”는 악의적 마타도어도 퍼졌다. 화가 난 이의원이 “나 안 해”라며 서류를 던졌지만 고군분투하는 노후보의 얼굴이 TV 화면에 비치자 다시 서류를 집어들었다고 한다.

    ‘권노갑 파일’ 공개 심심찮게 거론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금고지기 역을 맡았던 김영일 의원도 지난 대선 때 평생 들을 ‘욕’을 다 먹었다. 특히 ‘차떼기’가 폭로된 후 김의원에게 “그렇게 돈이 없다며 궁상을 떨더니 어떻게 된 것이냐. 설명해보라”는 당내·외의 원성이 집중됐다. 대선 당시 홍보분야에 관여했던 당 사무처 L국장은 “선거 때 민주당이 지방지에까지 광고를 게재했지만 김의원은 돈이 없다며 광고를 포기하자고 하더라”고 분개했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당지도부는 김의원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당이 적극적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별면회조도 구성해 김의원의 심기를 살핀다. 당이 특별대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선자금의 모든 출구가 그의 머릿속에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출구조사에서 의원 개개인의 축재를 위한 횡령이나 배달사고 등이 밝혀질 경우 한나라당은 선거를 치르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김의원에게 ‘금고지기 세계의 범털’이란 평가를 내렸다. 범털의 상대편에는 서청원 전 대표가 자리잡고 있다. 그가 구속될 때 최병렬 대표의 한 측근은 “야당이 무슨 힘이 있나”라며 외면해 초라한 서 전 대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서정우 변호사는 평소 ‘작은 부처님’으로 통했다. 그만큼 인품이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연말 서변호사가 차떼기의 주역으로 확인되면서 부국팀 한 관계자는 그에게 ‘겉 다르고 속 다른 부처’라는 새로운 별칭을 붙였다. 부국팀 실무를 담당했던 K씨는 “아침에 출근해 식권 하나 받고 하루 활동을 했던 실무팀들이 차떼기 보도를 접한 후 서변호사에 대해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금고지기의 운명이 처음부터 이렇게 험악한 것은 아니었다. “‘3김’시대만 해도 금고지기는 할 만했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YS시절 당시 정부 요직에서 활동했던 한 민주계 인사는 “아들이 결혼해도 홍인길을 찾고, 총선에 나가도 홍인길을 찾았다. YS가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돈 없는 정치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 간격을 홍인길이 메웠다”고 말했다. 그는 홍 전 수석이 당시 YS로부터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받았다고 분석했다.

    권 전 고문은 A급 금고지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고를 채우는 능력도 탁월했고, 풀 때도 시원시원했다는 것. 당시 비공식적으로 나가던 선거자금은 K, C의원 외에 권 전 고문의 최종 사인이 없으면 집행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민주당 총선 후보들은 권 전 고문을 만나기 위해 기를 썼다. 마음 좋은 권 전 고문은 찾아오는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한 측근은 “권 전 고문은 하다못해 남들이 선물로 주고 간 넥타이라도 찾아오는 사람 손에 다시 쥐어 보냈다”고 회고한다. 권 전 고문 주변에는 요즘 금고지기 시절 자료를 토대로 만들었다는 ‘권노갑 파일’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동교동계를 몰락의 길로 몰아넣은 몇몇 인사들의 정치자금에 대해 공개할 것이란 풍문이 권노갑 파일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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