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2016.08.24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서촌김씨’, 그 맛을 제대로 선보이다

서울 서촌 이탤리언 요리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8-19 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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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음식은 신선한 재료와 간을 조절할 줄 아는 셰프의 손에서 완성된다. 서울 경복궁 인근에 자리 잡은 북촌과 서촌에 최근 수준 높은 식당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그중 이탤리언 식당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와인을 곁들여 먹는 음식의 정점에 서 있다. 이탤리언 음식 하면 파스타와 피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한국과 같은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식자재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다양하다.

    서촌에는 이탤리언 요리로 유명한 몇몇 식당이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중 선두주자는 이재훈 셰프의 ‘까델루뽀’다. 우아한 한옥을 배경으로 ‘단순하고 솔직한’ 요리로 유명해진 곳이다. 최근에는 ‘서촌김씨’라는 작은 거인이 서촌에 둥지를 틀었다. ‘서촌김씨’는 아담한 식당이지만 점심에는 코스를, 저녁에는 단품을 파는 독특한 방식으로 영업한다. 이곳 김도형 셰프의 경력도 특이하다. 대기업 직원에서 ‘일 쿠오코 알마’(이탤리언 요리 전문학원)를 거쳐 셰프가 됐고, CJ제일제당에서 개발팀장까지 지냈다.

    빵은 유럽의 식사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영혼의 음식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빵 치아바타는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통밀가루, 맥아, 물, 소금으로 만드는데 속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하다. 숙성을 오래해 빵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이 특징. ‘서촌김씨’에서 만든 치아바타는 텍스처와 소금간이 적당하다. 이탤리언 식당은 빵이 맛있으면 일단 합격이다. 발사믹식초를 졸여 만든 드레싱에 광어와 아브루가(청새치 알) 등을 넣은 전채는 신맛을 기본으로 식욕을 돋운다. 산도가 좋은 몽라셰 와인은 음식과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 콩과 통찰현미, 황매실을 올리브 오일로 간을 한 샐러드는 재료의 물성이 하나하나 살아 있다. 곡물 특유의 씹는 질감이 뇌에 전해져 본격적으로 위를 열어준다.

    이탤리언 파스타의 일종인 라비올리는 파스타 속에 무언가를 넣어 흔히 이탤리언 만두라고 한다. 새우와 아스파라거스, 애호박, 마스카르포네치즈로 속을 만들고 새우 머리로 끓인 비스크 소스로 간을 한 라비올리는 육수의 진한 맛, 전분의 단맛, 새우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깊이 있는 맛의 세계를 선보인다. 라비올리 한 점에 이탤리언 요리의 정수가 담겨 있다. 남은 소스에 빵을 찍어 먹는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기쁨이다.

    메인 요리는 붉은 돼지란 별칭이 붙은 듀록. 듀록은 원래 삼원교배종으로 널리 사용하는 돼지 종자지만, 한국에선 개별종으로 변신했다. 기름기가 많은 버크셔와 달리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수비드(저온조리법)를 몇 번 거친 뒤 베이컨으로 감싼 듀록 안심을 졸인 발사믹식초에 찍어 먹는다. 붉은색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안심과 베이컨이 한 몸처럼 밀착돼 있다. 껍질 쪽의 베이컨은 바삭거리고, 속의 안심은 부드러우면서 은근한 맛이 난다. 오리고기의 물성과 맛이 연상될 정도인데, 밀도 높고 세련된 조리 솜씨가 일품이다. 16시간의 전(前) 조리과정을 거친 시간의 음식이자 기다림의 요리다.





    화려한 메인 요리 뒤에는 극도의 단맛을 내는 단과자와 차가 나와 마무리한다. 요리 하나하나가 빈틈이 없고 개별 요리가 나오는 간격의 리듬도 탁월하다.

    2016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는 놀랍게도 이탈리아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가 차지했다. 보수적 전통이 강한 이탤리언 요리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는 증거다. 직접 가보지 않아 비교 평가가 어렵고 수준 차도 나겠지만, ‘서촌김씨’에 가면 전통에 뿌리를 두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이탤리언 요리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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