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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포장마차, 2003 한국 자화상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전국 여섯 개 ‘포차’에서 본 우리네 삶 … 세월이 나를 속이고 힘들게 해도 우린 “위하여”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 ‘…두둥실 풍선처럼 마음이 들떠 누구라 할 것 없이 한잔 꺾자며 공장 뒷담 포장마차 커튼을 연다. …첫딸 본 김형 추켜 꼼장어 굽고 새신랑 정형 얼러대어 정력에 좋다고 해삼 한 접시, 자격증 시험 붙어 호봉 올라간 문형이 기분 조오타고 족발 두 개 사고 걸게 놓인 안주발에 절로 술이 익는다.…’
  • 박노해의 시(詩) ‘포장마차’의 한 대목이다. 포장마차엔 우리네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입에 착 달라붙는 소주에 칼칼한 안주를 베어 물면 밤은 절로 익어간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포장마차 안주는 정치와 경제, 더하여 우리네 인생이다. 여섯 개의 포장마차를 통해 본 2003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시렸으나 또 따뜻했다.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지난해 11월16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포장마차에서 러브샷을 하고 있는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오른쪽)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맨위). ‘러브샷 포장마차’는 여전히 여의도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가운데).

참여정부는 포장마차에서 잉태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해 11월16일 새벽,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후보는 16대 대통령선거 전 과정을 걸쳐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여론조사’를 통해 두 당의 대선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것.

두 사람은 15일 밤 10시 반부터 국회 귀빈식당에서 2시간 넘게 담판을 벌였고 후보단일화 방식 등 8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후보단일화 합의가 공개된 국회 귀빈식당은 환호와 흥분의 도가니였다. 양당 당직자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일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두 주인공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포장마차로 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촐한 ‘뒤풀이’를 했다.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는 주변의 권유로 ‘러브샷’을 하며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날의 이벤트로 적어도 수백만 표가 노무현 후보에게로 갔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장소, 단일화 합의 뒤풀이가 펼쳐졌던 화제의 포장마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의도 구 신한국당사였던 극동빌딩 앞 4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12월4일 밤 8시 반, 주인 김모씨(45)와 그의 부인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씨의 포장마차가 있는 곳은 국회 앞 여의도 일대에서도 사람의 이동이 가장 많은 요지. 그래서 이곳에서는 낮에는 호떡장사가 영업하고 밤에는 김씨네 포장마차가 문을 연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당시의 일이 눈에 선하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포장마차는 길 건너편 주차장 공터에 있었는데, 요즘처럼 단속이 심하지 않아 널찍하게 자리를 펼치고 있어서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뒤 수십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지만 손님을 받을 수 있었지요.”



옆에 있던 김씨의 부인은 “두 분이 우리 집을 찾은 것은 그만큼 음식을 위생적으로 만들고 맛도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가 아니겠느냐”고 거들었다.

김씨는 “대선이 끝나고도 한 달 동안은 뉴스 방영 때마다 우리 포장마차가 TV화면에 나오곤 했지만, 정작 두 분이 왔을 때는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 안주 준비하느라 두 분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 포장마차에서 단일화 뒤풀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한동안 좁은 포장마차 안이 복작복작했었다”며 즐거워했다.

단일화 합의 뒤풀이 이후 노대통령은 또 한 번 이 포장마차를 찾았다. 대선기간 중 TV합동토론이 있었던 날 밤이었는데 그날은 권양숙 여사도 함께였다고 한다. 노대통령 부부는 서민적인 안주인 닭똥집과 닭발, 그리고 오징어회를 안주로 소주잔을 부딪쳤다고 한다.

후보단일화 합의 뒤풀이가 열린 역사적 장소지만 김씨네 포장마차 역시 사회 전반의 불황과 포장마차에 대한 구청의 단속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 네 테이블 이상 두지 말라는 구청의 지시 때문에 포장마차 규모도 지난해의 4분의 1로 줄었고, 매상도 그만큼 줄었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로 불황의 바람이 매섭다는 것.

그래서인지 김씨는 “노대통령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구에 “우리 같은 포장마차 하는 서민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주문진에서 야간중학교를 함께 다닌 안광민씨 일행이 포장마차에서 회포를 풀고 있다. 황학동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이성순씨(42)는 “청계천 복원에는 찬성하지만 대책 없는 노점상 단속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황학동 포장마차 골목(위부터).

김옥순씨(52)는 28년째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굽고 있다. 리어카에 나무판자를 덧댄 2평 남짓한 낡은 곱창집이 그의 삶터. 어른 4명이 앉기에도 비좁은 포장마차 장사는 김씨에게 삶 그 자체다. 그는 “청계천 복원 공사 탓에 요즈음은 도통 손님이 없다. 그래도 가끔씩 찾아오는 단골손님들 덕에 호구는 한다”고 했다.

김씨의 포장마차가 앉혀진 서울 중구 황학동엔 겨울이 먼저 온다. 언제 둥지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 지루한 불황 탓에 오늘처럼(12월5일) 겨울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삭풍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속살을 드러낸 청계천을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쫓겨난 노점상들을 떠올리면 속이 시리다.

청계천 대로변(청계7~8가)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이 사라지면서 황학동 포장마차는 덩달아 매출이 뚝 떨어졌다. 없는 것 없던 황학동 만물상을 찾던 이들이 더 이상 발걸음을 하지 않으니 ‘곱창 찌린내’가 그리워 일부러 찾아온 취객 외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김씨의 가게는 오늘 운이 좋은 편이다. 초저녁(8시)부터 단골손님 3명이 자리를 잡고 두 시간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8000원짜리 볶음을 시켜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술을 권하던 이들은 강원도 주문진에서 야간중학교를 함께 다닌 불알친구란다. 안주와 소주잔이 오가는 복닥복닥 한 포장마차 풍경이 따사롭기 그지없다.

“비도 오니 곱창이나 씹자”고 친구들을 꼬드긴 안광민씨(47)는 작은 공장을 운영한다. 제조업으로 밥 벌어먹기가 죽기보다도 더 힘들지만 그래도 전화하면 곧장 달려나오는 친구들 덕에 버티고 있단다. “외국인 노동자 덕분에 근근이 버텨왔는데 요사이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져 공장 문을 닫을 판”이라고 그가 하소연하자, 불알친구 하나가 “자기 혼자 힘든 척한다”며 면박을 준다.

황학동 곱창골목에서 김씨의 가게 같은 생계형 포장마차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을지로 6가나 종로처럼 조직폭력배들에게 자릿세를 뜯기지는 않지만 테이블을 예닐곱 개 갖춘 준기업형 포장마차들이 인도를 점령했다. 안씨 일행이 굳이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와 김씨의 ‘리어카 포장마차’를 찾은 것은 서울에 갓 올라와 향수에 살이 바짝 타 들어가던 그 시절, 그 기분을 되새기고 싶어서란다. 야채곱창이 6000원, 곱창구이가 8000원이니 이만한 실빗집도 없다.

안씨에게 거푸 술을 권하던 박병찬씨(47)는 “서울에서 이렇게 따뜻한 공간을 어디서 찾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원래 건설업자였다고 한다.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가 거덜나 요즘은 ‘남의 밥’을 먹고 산다. 사장님 소리를 듣던 때가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요즘 같은 때는 꼬박꼬박 돈이 나오는 월급쟁이가 최고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친구들은 “월급쟁이가 부럽다”고 맞받았고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청계천에서 보리밥집을 운영하는 윤제림씨(47)는 “늘 사는 게 힘들지만 고향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일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 윤씨의 보리밥집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북적거리던 가게가 썰렁해진 것은 떼로 몰려오는 손님은 거의 없고 점심, 저녁시간 무렵에 혼자 오는 손님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네댓 명 밥값 내기가 겁나고 갚아야 하는 ‘공짜밥’이 부담스러워 혼자 부리나케 비벼 먹고 사라지는 손님들을 보면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동부이촌동 모 중학교 동창들이 군대 가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물 좋기로’ 유명한 텐트 바 ‘모야’에 모였다.

청계천에서 몇 개의 쓸쓸한 포장마차를 둘러보고 성수대교로 한강을 건너 도착한 곳이 압구정동의 포장마차 ‘모야’다. 요즘 이 동네에서도 ‘물’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강북에선 음산하게 느껴지던 비가 강남에 오니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강 하나 사이에 대한민국은 포장마차도 이렇게 달라진다. 지난해에 비해 30%나 매상이 줄었다지만 대기 손님이 입구를 지킬 만큼 북적대고, 손님들은 누가 누가 더 즐거운지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다. 최근의 디카족 급증세를 반영하듯 포장마차 여기저기에서 플래시가 터진다. 매일매일이 축제 같은 곳이다.

다른 동네와 차별화하여 ‘텐트 바’라고 불리는 압구정동과 청담동 포장마차들은 ‘모야’ ‘하자’ ‘딘’처럼 대개 이름을 갖고 있고 등받이 의자에 스탠드형 난로도 있다. 발레서비스에 예약도 가능하다.

인기 있는 안주는 고추장찌개와 치즈계란말이. 닭발이나 닭똥집, 곱창을 먹는 사람들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모야’의 매니저 박기수씨(33)는 “20대 초 학생들이 주요 손님이지만 새벽이 되면 30대 손님들도 많아진다. 방송 관계자, 연예인 지망생도 많은 편이어서 즉석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픽업’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압구정동 포장마차를 ‘압구정동 포장마차’답게 하는 건 손님들이란 뜻이다. 이날도 가수 ‘쿨’의 멤버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경 쓰는 이들도 거의 없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고 스타일리시한 손님들이 앞뒤 좌우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족이 별로 없고 4~5명이 함께하는 친구들 모임이 많다는 것도 압구정동 포장마차의 특징이다.

“중학교 후배가 내일 군대 가거든요. 환송모임이에요.”

가수 ‘비’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에 목걸이, 카키색 수트 혹은 니트를 모델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21살 대학생들이 한창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동부이촌동 모 중학교 동창들이라는 이들은 ‘모야’ 단골로 이날 1차로 포장마차를 찾았고 2차, 3차도 이 근처 바 등에서 오로지 술을 마실 계획이라고 했다. 촌스럽게 ‘나이트’ 같은 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관심사는 역시 ‘여자’인데 동석한 여자친구들은 단지 친구들일 뿐이어서 같이 ‘여자’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죽는 거죠, 술 먹고, 오늘.”

일행 중 하나가 술에 취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무 걱정 근심도 없을 듯한 이들에게 군 입대는 너무나 고민스러운 고민이었나 보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서로 취하는 모습을 보고 보여주는 공간, 포장마차는 태생적으로 이렇게 사람들의 고민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청계천에서도 압구정동에서도 그들이 마시는 술은 똑같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 소주 한 가지인 것처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광주광역시 광주공원 옆 포장마차 거리에는 요즘 생존경쟁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포장마차 거리(가운데)와 15년째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포장마차 ‘물망초’ 내부(아래)

“광주는 이제 끝났어요. 오죽하면 내가 이 시간에 여기 있겠습니까?”

12월5일 밤 9시30분, 광주광역시 광주공원 옆 한 포장마차에서 만난 김모씨(49)는 씁쓸한 목소리로 연신 소주잔을 비웠다. 택시기사라는 그가 한창 시간대에 포장마차에 와 있는 것은 돌아다녀봐야 태울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빈 차로 거리를 도는 게 짜증스럽던 참에 비까지 오니 소주 한 잔이 당겼단다.

“예전 같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밤 시간에도 승객이 없어요. 만나는 기사들마다 이제 뭘 해 먹고 사나, 그런 이야기를 하죠.”

비닐 천장에 고인 빗물을 어묵 국자로 푹푹 찔러 빼고 있던 주인 최은희씨(36)도 “포장마차 역시 안 되기는 마찬가지”라며 말을 보탰다.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이 자리에서만 15년째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최씨는 “작년 이 무렵에는 퇴근길 직장인들이 송년회를 한다며 우르르 들어오곤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 뚝 끊겼다”며 “손님이라고는 안주 하나 놓고 소주만 몇 병씩 마시다 가는 아저씨들과 돈 없는 학생들밖에 없으니 큰일”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사실 비 오는 날은 포장마차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다. 비닐 포장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술꾼들에게 닭똥집이나 꼼장어를 능가하는 최고의 안주. 그러나 광주에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비다운 비가 내린 이날도 포장마차는 한산하기만 했다. 드문드문 자리를 채운 이들은 김씨를 제외하면 모두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 포장마차가 있는 광주공원 주차장은 30년 전부터 밤이면 포장마차가 서왔던 전통의 포장마차 거리. 대부분 ‘창업주’의 2세인 이곳 포장마차 주인들은 서로 오랜 이웃들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나빠진 경기 탓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했단다. 덤핑 경쟁이 빚어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왔다. 얼마 전 이 일대 포장마차 22곳의 주인들이 모여 메뉴와 값을 통일하자는 ‘신사협정’을 체결해야 했을 정도. 닭똥집 1만원, 닭발 1만원, 가락국수 2000원 등이 공정가격이다.

그러나 이 협정도 ‘생존경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오히려 포장마차들은 같은 메뉴를 놓고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요리사를 고용하고 양을 대폭 늘릴 뿐 아니라, 안주를 하나만 시켜도 과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정해진 한도 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들이 천막 밖에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광주 경제는 정말 끝 모를 바닥으로 치닫고 있어요. 천변의 공장들은 다 망했죠. 장관 중에 광주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걸 보세요. 노무현을 누가 뽑아줬는데…. 광주 사람들 정말 할 말 많습니다.”

김씨는 요즘 승객들과 이야기해보면 다음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든 누구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을 뽑을 거라고 말한다며 ‘두고 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김씨가 자리를 뜨고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겼지만, 포장마차는 여전히 한산했다.

■ 광주=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견습생들의 술값을 2만원이나 깎아준 김하식씨가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현대미포조선 견습생들은 “배 만드는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다”면서 “꼭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고 말했다(위부터).



12월4일 밤 10시께 울산 동구 방어동의 한 포장마차. 카바이드 불빛을 받아 먹음직스럽게 반짝이는 과메기와 산낙지가 오지 않는 손님들을 애타게 기다린다. 어두컴컴한 60촉 백열등 아래 놓여진 텅 빈 탁자들이 연출하는 풍경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멀리 화학공단의 거대한 굴뚝에서 솟구치는 산화한 기름 찌꺼기와 그 앞쪽으로 환하게 불을 밝힌 현대가(家)의 공장들은 이곳이 한국경제의 심장임을 웅변한다. “도는 건 돈밖에 없다”는 울산에 터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불황이란 단어가 그다지 익숙지 않다.

그런데 불경기라곤 몰랐던 ‘소비도시’ 울산에도 불황이 엄습했다. 지난 여름부터란다. 방어진 포장마차 거리 입구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은 “현대백화점 울산점에 물건을 납품해왔는데, 매출이 지난해의 50% 수준도 되지 않는다”면서 “울산이 이 정도니 부산, 대구에선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사정이 이러니 포장마차 주인들의 시름도 깊어간다. 한창 바빠야 할 밤 10시30분께, 그나마 한 테이블이라도 손님을 받은 곳은 20여개 업소 중 겨우 4곳. 나머지는 아직 마수걸이 취객도 들이지 못했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던 김하식씨(48·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갖고 나온 뜨개질 바늘과 실타래를 내려놓고 잠시 잠을 청한다.

울산엔 연거푸 ‘사상 최대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공장이 즐비하다. 수출이 늘면 울산 시민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그런데 올해엔 이상하게도 이런 뻔한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수출은 잘되나 경기는 엉망인 울산은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고스란히 응축해놓은 듯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공업의 요람이요, 노동자의 천국’이었던 울산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울산의 주류가 되어가면서 ‘울산의 내수’는 서서히 가라앉아왔다. 정리해고 걱정하랴 불확실한 미래 준비하랴, 절약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최고의 미덕이 된 지 오래다.

밤 10시50분경, 김하식씨의 가게에 첫 손님이 왔다. 김씨가 졸린 눈을 비비며 환한 표정으로 맞이한 사람들은 현대미포조선의 견습생 5명과 견습생 부부 한 쌍. 이들은 월 20만원을 받고 3개월째 합숙하며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50명의 견습생 중 두 달 후 ‘직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원을 이렇게 부른다)이 되는 사람은 불과 5명 정도. 나머지는 다시 지긋지긋한 하청, 재하청 노동자 생활을 해야 한다

비워진 소주병이 예닐곱 병이 되었을 즈음, 현대자동차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더러워서 그만뒀다”는 최모씨(25·여)가 “울산은 사장님네들하고 ‘직영’들만 잘사는 곳 아니냐”면서 하청노동자 얘기를 꺼내자 자리가 이내 썰렁해진다. 한 대기업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했다는 견습생은 “똑같은 일을 직영보다 두 배 세 배 더 뼈 빠지게 하고도 월급은 절반조차 안 되는 생활을 이젠 그만 접고 싶다”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포장마차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직영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울산에 흘러 들어왔다. 나이도 고향도 제각각인 이들은 모두 서로의 경쟁자인 셈이다. 두 달만 더 버티면 어림 계산으로 이들 중 1명 정도는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원이 된다. 꿈에도 그리던 ‘직영’ 말이다. 아내와 함께 온, 결혼한 지 3년 됐다는 견습생에게 넌지시 소망을 물어봤다.

“입사하면 1년에 2200만원 가량을 받을 수 있어요. 예전보다 두 배는 더 받는 거죠. 더 중요한 건 해마다 연봉이 뛴다는 거예요. 연말보너스도 있고….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얘기죠. 울산에서 아기 낳고 와이프랑 알콩달콩 살아보렵니다. 남은 두 달 정말 열심히 기술 익힐 거예요.”

스물일곱 살 동갑내기 남편의 이야기를 듣던 아내의 시선이 남편을 향했다. 어느 틈엔가 아내의 손이 살포시 남편의 손등 위에 얹혀졌다. 을씨년스럽던 60촉 백열등은 어느새 따사롭게 부부를 비추고 있었다.

비워진 소주병이 10병을 훌쩍 넘겼다. 한 견습생이 “오늘 좀 과했다”며 먼저 자리를 뜬다. 모두가 일어선 건 소주 2병을 더 비우고 나서다. 주인 김씨가 개시손님이자 막손님이라며 2만원을 에누리해준다. 조선소가 있는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견습생들의 등 뒤로 방어진 포장마차 거리의 밤은 아주 조용히 깊어갔다.

■ 울산=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경제 ‘쓴 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하얀 밤

제주 유일의 포장마차인 연동 ‘신제주 포장마차’(아래)에서 우럭조림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위).

‘관광의 섬’ 제주에는 포장마차가 몇 개나 있을까? 이 질문의 정답은 놀랍게도 ‘전혀 없다’다. 도(道)의 엄격한 노점상 단속 때문에 실외 포장마차는 사실상 발을 붙이지 못한다. 종종 문을 여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철거된다는 게 도민들의 말. 그래서 제주 거리에서는 주황색 포장을 쳐놓고 꼼장어 안주에 소주를 파는 정통 포장마차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주민들은 포장마차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실내포장마차에서 회포를 푼다.

신제주 연동 밀라노호텔 주변의 실내포장마차 3곳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포장마차’라는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는 곳. 철골구조 위에 천막을 치고, 제법 포장마차 분위기가 나게 내부를 꾸몄다. 육지의 닭발, 꼼장어 대신 오도리, 한치회, 우럭조림 같은 섬 음식을 안주로 내놓는 것 정도가 다를까,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밤을 새우는 분위기는 여타 도시의 포장마차와 다르지 않다. 밤이 깊도록 손님이 거의 찾지 않아 손님 수보다 빈자리가 더 많은 것도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지방의 다른 포장마차들과 비슷해 보였다.

“서울에서는 어렵다 어렵다 해도 포장마차 하려면 자릿세를 내야 할 만큼 인기가 있다면서요. 여기는 워낙 먹을 게 없으니까 깡패도 안 와요. 내가 장부 보여줄까?”

이 자리에서 25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경상도 꽃마차’ 실내포장마차의 이춘자씨(53)는 매일 10개 정도의 전표가 꽂힌 장부를 넘기며 “이게 다야”라고 말했다.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하루 12시간 문을 열어두고 있지만 찾는 손님은 10팀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관광객 감소, 몇 년째 반복된 감귤 농사 실패, 제주도를 휘감은 경마 열풍 등 악재가 겹쳐 제주도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했다.

12월4일 이 포장마차에 첫 손님이 들어온 것은 오후 10시 반, 한 테이블에 같이 앉은 5명의 남녀 가운데 남자 셋은 모두 막노동을 한다고 했다. “제주도는 관광도시라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공장을 거의 못 짓게 하거든요.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 아니면 막노동밖에 없어요. 요즘처럼 돈이 말라 있을 때 가게를 열면 뭐 하겠어요. 다 ‘노가다판’에 뛰어드는 거죠.”

이들은 술이 오르자 무조건 외국에만 나가려 드는 ‘육지 사람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관광수입이 감소하면서 소규모 영세상가들은 문을 닫고, 관광객에 의존해 생활하던 택시기사 등 서비스 업종 사람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관광수입 증대를 목표로 들여온 경마장도 서민경제를 뒤흔드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친구 한 명과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던 성모씨(25)는 아버지가 그동안 경마장에서 잃은 돈만 수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금 당장 경마장에 한번 가봐요. 1000명 중에 50명이나 외지인일까, 베팅하는 건 다 제주도 사람들이라고. 관광수입 전혀 못 올리고 결국 우리 주민들 피만 다 뽑아가는 경마장인데 왜 안 없애고 그냥 두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들이 나간 후 또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동안, 그리고 결국 오전 4시 포장마차가 이른 정리를 시작할 때까지도, 외지 관광객은 단 한 팀밖에 이곳을 찾지 않았다. 꽁꽁 언 관광경기를 얼마나 더 오래 견뎌야 하는 걸까, 새벽이 밝아올수록 제주의 한숨은 깊어지는 듯했다.

■ 제주=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주간동아 414호 (p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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