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2003.12.11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맨발의 전설’

로마·도쿄서 세계기록으로 연거푸 승리 … 교통사고로 불구된 뒤엔 장애인대회서 양궁 금메달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입력2003-12-04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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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역사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멸의 기록’이 있다. 스포츠계에서 정상에 오르면 상징적으로 금메달, 월드컵 또는 챔피언벨트가 주어지고 엄청난 상금이 따른다. 그러나 보상으로 따르는 대가야 어떻든 정상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하기 때문에 거기에 이르기까지 각 팀과 선수들이 쏟는 노력과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러한 과정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극복하기란 초인적인 인내와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평론가로 현재 KBS 제1라디오에서 프로 스포츠 해설을 맡고 있는 기영노씨와 함께 ‘불멸의 기록’의 세계로 떠나보자. (편집자)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맨발의 전설’

    ‘맨발의 영웅’ 아베베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로마시내를 달리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마라톤 경기가 벌어진다. 그 가운데 뉴욕마라톤, 보스턴마라톤, 로테르담마라톤, 런던마라톤을 세계 4대 마라톤 대회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 4대 마라톤 대회도 2년마다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보다는 비중이 떨어진다. 그리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도 올림픽 마라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올림픽 마라톤 제패는 모든 마라토너의 꿈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라토너들이 세계 4대 마라톤 대회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설적인 마라토너인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는 올림픽 마라톤을 2연패했다.

    완주 후에도 “나는 또 달릴 수 있다”

    아베베가 올림픽에 처음 도전한 것은 1960년 로마올림픽. 아베베의 아버지는 1935년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군대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총을 들고 싸웠다. 아베베는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맨발로 로마 거리를 뛴 것이다.

    당시 로마시청을 출발한 69명의 마라톤 주자들이 결승점에 들어설 때는 이미 해가 져 달이 뜬 뒤였다. 아베베는 거리 곳곳의 타오르는 횃불 속에서 마침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가장 먼저 통과해 맨발로 로마를 정복했다. 아베베의 우승기록은 당시만 해도 마의 벽이던 2시간20분을 깨며 기록을 5분 가까이 단축한 2시간15분16초의 세계최고기록이었다. 더구나 이는 맨발로 달려서 낸 기록이었다.

    아베베는 맨발로 골인한 후 “나는 운동화를 신고 훈련했다. 하지만 맨발로 뛰는 것이 휠씬 편하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코스는 나에게 조금도 먼 거리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다시 한번 뛰라면 또 달릴 수 있다”며 지친 기색도 없이 큰소리쳤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온 한 청년이 맨발로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져 아베베는 당시 무명국가(?)이던 에티오피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나라로 만들었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군대가 25년간이나 자국을 강제점령한 치욕을 아베베가 맨발로 달려 설욕했다며 기뻐했다. 로마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뒤 에티오피아로 돌아간 아베베는 일등병에서 단번에 하사로 승진한다.

    4년 후에 벌어진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선수는 역시 아베베. 4년 전 로마올림픽에서 스포츠 영웅이 된 이후 4년 동안 아베베는 지구촌 스포츠계의 뉴스 메이커였다. 그 사이 아베베는 조국 에티오피아에서 사병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계급인 상사로 진급한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맨발의 전설’

    아베베는 64년 도쿄올림픽에선 운동화를 신고 달려 우승을 차지한다.

    아베베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약 한 달 앞두고 충수염이 발병해 맹장수술을 받았다. 보통사람이라면 마라톤 우승은 고사하고 달리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베베는 맹장수술을 받은 지 2주 만에 훈련을 재개했고,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상적인 레이스를 전개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있었다.

    후배 위해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아베베는 맹장수술 후유증을 극복하고 도쿄올림픽 마라톤도 제패했다. 이번엔 맨발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아베베의 도쿄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록은 당시 세계최고기록인 2시간12분11초였다. 아베베는 1위로 골인한 후 정리체조를 하면서 “앞으로 20마일(35km)을 더 달릴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폐활량이 엄청났고, 정신력도 초인적이었다.

    올림픽 마라톤 사상 1위와 2위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 적은 없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그와네와 이봉주의 기록은 겨우 3초의 차이가 났을 뿐이다.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아베베는 상사에서 일약 중위로 진급했다. 3계급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아베베가 위대한 것은 올림픽 마라톤을 2연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베베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 출전해서 생애 세 번째 금메달을 노렸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후배 마모 웰데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 멕시코올림픽에 출전한 세계의 모든 마라토너들은 아베베를 의식하면서 달렸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아베베를 페이스메이커로 내세우고 복병 마모 웰데를 숨겨놓았다. 과연 아베베를 따르던 선수들은 오버페이스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고, 마모 웰데가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베베는 중도에 포기했지만 그의 희생으로 에티오피아는 ‘올림픽 마라톤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아베베는 1969년 어느 날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하반신이 마비돼 불구의 몸이 되었다. 이제 선수 활동은 물론 군대생활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베베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다녔지만 손과 팔의 힘을 기르는 체조를 해가며 양궁선수로서의 재기를 노렸다.

    결국 아베베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한 장애인대회에 양궁선수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초인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스포츠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과 장애인대회 금메달을 모두 차지한 위대한 선수가 된 것이다. 아베베는 이같이 좌절하지 않는 의지와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아베베는 휠체어를 탄 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를 당해 1973년 10월25일 41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에는 무려 6만5000여명이 모여 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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