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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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이라크 탈출’美國 몸 달았다

미군 사상자 속출 재건 시간표 ‘뒤죽박죽’ … 반전 분위기 고조 부시 재선 ‘발등의 불’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3-11-20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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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펜타곤(국방부)은 매일 10여종의 e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그 가운데는 이라크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미군 전사자 명단도 들어 있다. 종전과 함께 당연히 발행이 중단되었어야 할 뉴스레터다. 그러나 이 전사자 통보 뉴스레터는 중단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주요 언론 지면에는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이라크전 전사자를 추도하는 사진면이 다시 부활했고,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이라크 현지의 각 방송사 종군기자들은 5월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주요 전투 종료선언 이후 한동안 잊고 지내던 방탄조끼를 다시 꺼내 입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폭탄테러와 헬기 추락 등으로 인한 미군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방송 진행자들의 말투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군 고위 관계자와 행정부 관리들의 입에서는 거리낌 없이 ‘전쟁’ 소리가 툭툭 튀어나온다.

    이라크 재건을 책임지고 현지에 파견됐던 폴 브리머 행정관이 느닷없이 워싱턴으로 날아온 것은 바그다드 공습이 재개된 직후다. 브리머는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 책임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미국의 이라크 ‘시간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워싱턴의 희망사항대로라면 지금쯤은 이라크의 과도통치위원회(이하 통치위)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통치위 위원들은 모두 워싱턴측이 낙점한 사람들이다. 합법성을 부여받은 이들이 앞장서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이라크 최초의 민주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 워싱턴의 이른바 ‘선(先)헌법 제정, 후(後)선거 실시’ 일정표다. 워싱턴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헌법도 만들고 선거도 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통치위 기능 상실로 치안 불안



    이렇게만 되면 미군은 이라크에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 2004년 2월쯤이면 대부분의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다국적군으로 하여금 이라크 치안만 유지하게 해도 별 탈이 없다. 이는 이라크 침공 이전에 워싱턴이 짜놓은 시나리오다. 종전 이후 미군의 희생은 생각지도 않았다. 대부분 첨단무기 등에 의존하고 소규모 병력만 동원한 것도 종전 이후 이라크를 끌고 갈 이런 계획에 따라 사전에 치밀하게 구상된 군사작전의 일부였다.

    미국은 12월15일을 헌법기초위원 선정 마감시한으로 잡은 유엔결의안에도 흔쾌히 동의했다. 사태를 낙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프랑스 등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나라들은 이라크에 주권을 빨리 넘기라고 워싱턴을 몰아붙였다. 워싱턴은 귀를 틀어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국은 이라크에 머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브리머 행정관이 갑자기 워싱턴으로 돌아온 뒤에도 부시 대통령은 헤리티지재단(미국적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대표적 학술·연구기관)에서의 연설에서 종전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측근 참모들은 이때 이미 대안을 찾고 있었다. 첫번째 대안은 이라크에 통치권한을 계획보다 빨리 넘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을 만든 다음 선거를 치른다는 기존 계획도 바꿔야 한다. 즉 선거를 통해 헌법 제정을 위한 새로운 기구를 발족시킨다는 것이다. 4∼6개월 이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제시됐다. 미 고위 관리들은 이것이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 구상대로 가기도 쉽지가 않다. 미 행정부 내에서 이견이 많고 이라크 통치위의 의견도 분분하다. 펜타곤의 일부 고위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통치위에 주권을 넘기기를 바란다. 통치위가 펜타곤의 구상대로 따라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 대부분은 통치위를 적법한 기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통치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헌법기초위원 선발을 놓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부닥쳐 통치위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있다. 미 고위 관리들은 “통치위가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미 중앙정보국에서 올린 한 비밀보고서도 통치위의 기능 상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통치위가 이라크 국민들로부터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헌법 제정이나 선거일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군 희생자만 하루에 30~35명씩 늘어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통치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기존의 통치위를 그대로 둔 채 이라크 국민이 뽑은 위원을 이 통치위에 참가토록 해 합법성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미국은 운전교습만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통치위로 하여금 과도 헌법기초기구를 만들도록 하겠는 것도 워싱턴이 가지고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다. 즉 내년 6월까지 헌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제정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대안 역시 통치위 내부의 반발에 부닥쳐 있다.

    통치위의 일부 위원들은 이라크의 치안 불안이 오히려 통치위의 권한을 높여줬다고 주장한다. 미국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통치위 내부에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서두르다 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워싱턴 입장에서는 답답한 소리다.

    현재로선 통치위는 유명무실하다. 그동안 통치위에만 의존했던 워싱턴은 비로소 ‘탈출 전략(exit strategy)’을 세우는 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헌법 제정 이전에 선거를 실시해 새로운 이라크 통치자를 내세우고, 이 새 지도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미군의 희생과 미국의 외교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구상이다.

    이라크 내 사정도 사정이지만 부시가 이끄는 공화당에게는 2004년 대선이 눈앞에 닥쳤다.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때마다 부시 대통령 지지율은 줄곧 40%대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는 재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이라크 ‘탈출’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물론 방법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화당 내 온건파들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체니 부통령한테 공격의 화살을 날린다.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럼스펠드 국방장관 해임결의안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 내 반전 분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 칼럼니스트인 중동 문제 전문가 토마스 프리드만은 이라크 국민의 자존심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미국의 대(對)이라크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11월6일자 칼럼에서 바그다드에 본사를 둔 ‘이라크 투데이’지 편집장 하산 하타의 말을 소개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라크를 굴려 갈 필요가 있다. 이라크 국민들도 운전하는 방법을 안다. 다만 길을 잘못 들어 방향이 틀렸을 뿐이다. 미국이 이런 운전사들을 상대로 제대로 운전하도록 운전교습을 할 필요는 있겠지만, 미국이 직접 운전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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