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9

2003.11.13

조중연·김진국 ‘레드카드’ 안 받나

한국축구 ‘동네북 사건’ 책임 피하고 네 탓만 … “무성의·무능력 지휘” 여론 질타

  • 최원창/ 굿데이신문 종합스포츠부 기자 gerrard@hot.co.kr

    입력2003-11-06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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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연·김진국 ‘레드카드’ 안 받나

    김진국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스포츠는 냉정하고 살벌한 전쟁이다. 싸움터에 나선 장수는 승패에 따라 운명을 달리한다. 그러나 조력과 지원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장수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외부조건을 충분히 갖춰주었을 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장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이는 전쟁터에 나선 장수를 한 번의 승패로 판단하거나, 장기적인 계획 없이 흔들어대면 종국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시안컵 2차예선 베트남전과 오만전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로 경질 위기에 처해 있던 국가대표축구팀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53)이 천신만고 끝에 내년 7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와 기술위원회는 구태를 답습했다. 협회의 조중연 전무는 기술위원회의 결정도 없이 코엘류 감독의 경질을 시사하는 돌출발언을 일삼아 파문을 일으켰고, 일부 인사들은 참패의 책임을 무조건 코엘류 감독에게 떠넘기기에 바빴던 것.

    유명무실 기술위 개혁 ‘급선무’

    “국민들의 염원인 월드컵 1승을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1998년 6월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차범근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며)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그게 그것이다.”(2000년 10월27일 아시안컵 부진을 이유로 허정무 감독이 퇴진했는데도 함께 퇴진하겠다고 약속한 본인은 왜 퇴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기가 남아 있어도 축구에서는 중간성적이 나쁘면 경질을 피할 수 없다”(2002년 10월17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 중 박항서 감독의 경질을 시사하며)

    협회 조중연 전무가 그동안 지도자들을 경질하며 밝힌 인터뷰 내용이다. 한국축구계는 대표팀 성적이 부진할 때마다 감독을 경질했다. 물론 부대의 수장이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도자와 선수 선발에 깊숙이 관여하고 기술에 대해 조언하는 기술위원들이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수원삼성 김호 감독은 “대표팀이 패할 때마다 매번 지적해왔던 투지 상실, 전술 부재, 감독 지도력 부재 등을 이번에는 이유로 대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김감독은 또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한국축구가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한 ‘합리적 비판’의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단장으로 오만에 갔다가 귀국한 조전무는 “기술위원들을 포함한 협회 임원들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질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기술위원들은 비상근직으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직무를 유기하거나 대표팀을 잘못 뒷받침한 것은 없다고 본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 발언은 조전무 스스로 기술위원회 무용론을 언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감독과 선수 선발, 각급 대표팀 기술분석 등의 권한을 지닌 기술위원들을 ‘자원봉사자’ 정도로 인식한 것도 문제지만 정말 충분히 봉사했는지 따져볼 일이다. 한국의 패배가 치욕스럽다면 조전무를 비롯해 코엘류 감독과 선수들을 선발하고 대표팀을 지원한 기술위원들도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기술위원회는 한국축구가 추락할 때마다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도 김진국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기술위원들의 무성의와 무능력이 여지없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기술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대해 논하자면 히딩크 감독 시절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떠올리게 된다. 이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기술위원들은 히딩크 감독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애를 썼다. 물론 선수 기용에 관해서는 감독에게 전권을 주었고 감독의 의사에 무조건 따랐다.

    그렇다고 침묵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히딩크 감독이 올바른 방향으로 팀을 이끌 수 있도록 날카롭게 비판했다. 때로는 히딩크 감독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지만 대표팀 전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만은 한결같았다.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회는 협회와 대표팀, 여론의 방향타 역할을 하며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현 기술위원회는 월드컵 이전 상황으로 회귀한 모습이다. 대표팀 전력강화를 위한 역할 분담도 돼 있지 않고 대표팀 연습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고민 없이 대표선수 차출에 관해 논의하고 회의에 참석해서 위원장의 뜻대로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게 고작이다.

    협회는 왜 상근직 기술위원장을 두지 않는가?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축구협회는 회장 직속기구로 기술위원회를 두고 있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과 프로리그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협회는 기술위원회를 강화할 경우 축구인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해 기술위원회를 비공식 기구로 유지하고 있지만 상근직 기술위원장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축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얻은 교훈은 뭐니뭐니해도 인내심이다. 히딩크 감독이 재임했던 1년6개월 동안 그가 명장 소리를 들으며 환호를 받은 기간은 불과 두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숱한 좌절과 패배를 맛봤던 히딩크 감독을 ‘부진의 책임은 감독의 몫’이라는 잣대로 재단했다면 과연 월드컵의 영광이 있었을 것이며, 히딩크 감독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2002년 최고의 감독 2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선수들 투지는 없고 자만 가득

    협회는 2002년의 영광을 잇기 위해 포르투갈의 명장 코엘류 감독을 영입했다. 하지만 코엘류 감독은 히딩크 감독 때와는 다른 어려운 조건 속에서 출발했다. 히딩크 감독은 정부와 협회, 각 프로구단의 전폭적 지지 속에 부임하자마자 장기 합숙을 통해 새 틀을 짜고 힘차게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엘류 감독은 그동안 소속 선수들에 대한 대표팀의 잦은 차출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각 구단들의 반대와 협회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된 선수 소집 한번 못하고 8개월을 보내왔다.

    이번 패배에 대해 코엘류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왜 월드컵 때 보여줬던 강한 압박과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황선홍 홍명보 등이 빠진 대표팀을 재건하기 위해 코엘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시간이다.

    코엘류 감독은 히딩크 감독보다도 더 심각한 선수난을 겪고 있다. 선수들에게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강인한 투지와 근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선수들의 눈빛과 플레이에서는 예전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선수들은 자만심으로 목에 힘이 들어갔고, 월드컵 멤버와 비월드컵 멤버와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도 생겼다. 월드컵 멤버 중에서도 스타의식에 젖어 안일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도 눈에 띈다.

    코엘류 감독은 이들을 향해 ‘회초리’를 꺼내들었다. 이제는 덕장보다는 용장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 패배는 지도자 생활 중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명예회복을 벼르는 코엘류 감독은 11월18일 불가리아와의 A매치와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컵 대회에서 ‘한국형 전술’을 무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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