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9

2003.11.13

“부동산 안정대책? 어림없는 소리!”

강남 큰손 K씨의 ‘투기 스토리’ … 수백억 자금 동원, 규제 피해 ‘주상복합’ ‘지방’서 연일 한탕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1-05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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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안정대책?  어림없는 소리!”

    최근 분양된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사진 속 인물들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 종합대책(이하 10·29 부동산대책)이 발표되던 10월29일 오후, 서울 강남의 부동산 ‘큰손’ K씨(65)는 한 컨설팅 업체에서 휴대전화를 받고 있었다.

    “광진구는 어떻게 됐어? 500개로 안 돼. 800개 넣어. ○○○에게는 ○○○가 연락하고, 안 되면 아줌마들 직접 투입해! 좀더 넣어야 하는 건데. 돈이 있어야지.” 휴대전화를 몇 대나 가지고 다니는 그는 기자와 통화하면서도 다른 전화로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번에 그의 ‘제물’이 된 곳은 서울 광진구 트라팰리스. 지난 7월 이후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분양권 전매가 완전 금지된 이후 그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모든 것’을 걸었다. 주상복합 아파트는 10·29 부동산대책이 발표됐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분양권 전매(300가구 미만)가 가능한 데다 청약통장도 필요 없고 청약 대상에 제한도 없다. 전문 ‘투기사단’을 거느린 그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가 따로 없는 셈. 특히 이번 청약은 청약창구가 인터넷과 은행 각 지점으로 흩어져 있어 국세청 현장투기 단속반과 마주칠 염려도 없다.

    트라팰리스의 청약증거금은 1인당 3000만원. 그는 이번 청약에 무려 240억원을 동원했다. 각기 다른 사람인 800명의 청약신청자는 믿을 만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차용증도 받아놓았다. 이 모두가 당국의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한 방어막. 그래도 K씨는 억울하다. 투기 가용재원 500억원을 모두 넣었더라면 좀더 당첨확률이 높아졌을 것이기 때문. 하지만 ‘투자’한 곳이 많아 어쩔 수 없이 240억원만 투입했다. 190대 1의 경쟁률을 고려하면 확률적으로 당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4채에 지나지 않는다.

    떴다방·청약통장 모집꾼 등 인력은 중소기업 수준



    “부동산 안정대책?  어림없는 소리!”
    “피(프리미엄)가 5000만원쯤 된다 쳐도 2억원밖에 더 돼? 바람잡이(떴다방)와 아줌마들 수고비 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는 “내 손에 떨어질 돈이 1억원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연신 불만을 토로한다.

    K씨는 강남 부동산업계에서는 신화적인 ‘쩐주(전주, 錢主)’다. 1970년대 말까지 일개 복덕방 주인이던 그는 강남 개발 붐을 타고 일약 ‘백만장자’가 됐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사고 팔고 해서 모은 종잣돈을 굴려 경기 일산과 분당 택지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고, 최근에는 그 유명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0여 채를 3차례 이상 샀다 팔았다 하면서 수십억원의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물론 자신은 돈만 댔고 떴다방과 컨설팅회사 사람들이 다 알아서 했다. 소위 가장 악질적 투기수법이라는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폭탄 돌리기는 웃돈을 얹어 팔았다가 값이 떨어지면 다시 사 처음보다 더 웃돈을 얹어 되파는 과정을 세 번 이상 한 경우를 지칭한다. 그야말로 시세 자체를 떡 주무르듯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 어쨌든 그와 그의 ‘사단’은 그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K씨는 자신을 ‘부동산 기업가’라고 소개한다. 그가 거느린 강남의 정식 공인중개업자만 모두 5명, 이 중 명문대학 법대를 나온 법률 컨설턴터도 3명이나 된다. 이와는 별도로 소위 ‘땅개’로 불리는 청약이나 분양 현장의 이동식 떴다방 업자가 직속만 30여명, 필요에 따라 50여명이 그의 지시에 따라 모였다 흩어진다. 또 각 떴다방 아래에는 청약통장 모집꾼, 떴다방 명함을 돌리는 일명 ‘찌라시 아줌마’ 등이 각각 수십명씩 딸려 있으니 그가 자신을 부동산 기업가라 칭하는 것이 틀린 말만은 아니다. 그 덕분에 밥을 먹고 사는 사람만 수천여명에 이르는 셈이므로,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못할 게 전혀 없다. 이들이 바로 단 몇 시간 안에 텅텅 빈 아파트 분양, 청약 현장과 모델하우스를 가득 메울 수 있는 인적 동원력을 제공하는 장본인들이다. 때문에 그에게 소규모 아파트 분양 시장의 가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들은 투기바람이 불지 않아도 직접 바람을 일으키는 부동산 시장의 미다스의 손이다.

    “부동산 안정대책?  어림없는 소리!”

    수도권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견본주택 내부와 인근 떴다방(작은 사진). 남자 구두만 가득한 것으로 보아 실수요자보다는 ‘땄다방’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틀간의 전화통화 끝에 그를 대면한 것은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이 마감된 10월30일 늦은 밤이었다. 강남 부동산계의 ‘작전세력’ 가운데 한 세력을 이끄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전날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대책에 대한 분석을 이미 끝내놓고 있었다.

    “태풍 수준일 거라고 엄포를 놓아대더니 비 수준밖에 안 되네. 비 오면 우산 쓰면 되고, 길 막히면 돌아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이보다 더할 때도 있었는데….” 그의 반응은 한마디로 갈 길 잃은 뭉칫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것을 막기에는 정부의 10·29 부동산대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것이다. 그는 “바다가 비에 젖는 것 보았느냐”며 “바닷물이 흘러나갈 구멍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금리가 이러니 어떡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고는 “쥐를 잡을 때도 퇴로를 차단하지 않듯이 정부도 아무리 강경한 대책을 발표할 때도 우리가 살 길을 남겨둔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살 길’이 바로 주상복합 아파트다. 정부는 10·29 부동산대책에서 20가구 이상 주상복합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그 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못박았다. 때문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모든 부동산 투자자들의 집중공략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K씨의 주장.

    “정부가 왜 내년 상반기로 잡은 줄 알아, 그때까지 주상복합 먹고 살라는 얘기야. 상반기라 하지만 관련 규정 개정하려면 7, 8월이 넘어야 돼. 정부가 주상복합 분양권 전매라는 구멍마저 틀어막았다면 우리보다 주택건설업체들이 먼저 망할걸 아마. 주택건설 경기가 주저앉으면 IMF 한 번 더 오는 거지. IMF 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나쁠 거 없지. 금리 높아지니까 은행에 돈 맡겨놓으면 이렇게 힘들게 돈 벌지 않아도 되고.”

    아는 사람과 급매물 사고 팔아 가격 부풀리기도 주된 수법

    “부동산 안정대책?  어림없는 소리!”

    7월부터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의 전매가 일절 금지되자 서울 강남의 뭉칫돈이 광역시의 아파트 분양시장으로 몰렸다. ‘작전세력’의 청약통장 매집에 항의하는 울산지역 부동산 업자들의 플래카드가 이색적이다.

    K씨는 특히 김대중(DJ) 정권 당시의 부동산 규제완화 조치가 모두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데 정부가 유독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분양가만 건드리지 않은 이유도 부동산 시장 안정과 주택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는 고민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10·29 부동산대책이 발표됐어도 아파트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주변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떨어지지 않는데 누가 그 이하의 가격에 아파트를 내놓겠느냐는 게 그의 논리다. 그는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했지 떨어뜨리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은 게 바로 그 때문 아니냐”며 소리내 웃었다.

    사실 지난 7월,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분양권 전매가 금지된 이후, K씨의 돈은 주로 부산, 대전, 울산, 대구 등 광역시의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대규모 아파트 분양, 청약 현장을 돌아다녔다. 특히 9월 말부터 시작된 울산 중구 약사동 모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는 그가 지휘하는 떴다방들이 200억원의 여유자금으로 투자용 청약통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지역 떴다방들이 ‘서울에서 온 떴다방은 청약통장 매집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촌극이 빚어졌고, 울산세무서가 모델하우스에 떴다방 단속센터까지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어쨌든 K씨는 요즘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모종의 부동산대책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그동안 사두었던 수십 채의 재건축 아파트들을 ‘싼값’에 정리해 이를 전부 현금화했다. 주상복합 아파트를 공격할 ‘총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0월 들어 대전 노은지구 아이투빌을 선두로 10월15일 분양한 서울 구로구 쌍용플래티넘 분양(55대 1), 10월23일 성남시 분당구 더 스타파크(72대 1)에 각각 200억원씩을 동원했다. 1000여명 명의로 분양신청을 한 K씨는 이를 통해 1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군데 모두에서 십여 채씩 당첨됐고, 분양권에 붙은 프리미엄이 쌍용플래티넘이 최고 4000만원, 더 스타파크가 최고 7000만원을 호가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 모두가 그의 떴다방과 떴다방 소속 아줌마들이 모델하우스에서 열심히 바람을 잡아준 결과. 이들이 떠난 이후 두 군데 다 분양권 가격이 하루 500만원씩 떨어지고 있다.

    10·29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이후 K씨는 오히려 정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옛날에는 사냥을 하려고 내 돈으로 몰이꾼을 샀는데 요즘은 정부가 대신 몰이꾼 역할을 해주니 그보다 고마울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는 최근의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 열기를 ‘사냥’에 비유했다. 예전에는 일반인들이 선택할 부동산 투자처가 신축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 등으로 다양했는데 모든 투자처를 봉쇄하니 돈이 주상복합 아파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들이 모이니 분양률이 올라가고, 분양률이 올라가니 자동적으로 프리미엄이 올라간다는 논리다. 그는 “요즘 같으면 떴다방도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아예 그의 가용재원 500억원 중 200억원을 뚝 떼, 직접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데 투자하기로 했다. ‘정통 투기꾼’ 출신인 그가 소위 ‘개발업자(디벨로퍼)’들과 손을 잡기는 이번이 처음. 물론 담보도 없고, 투자가 실패하는 것을 막아줄 안전장치도 없지만 주상복합 아파트의 대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억원은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땅값의 10분의 1. 디벨로퍼들은 이 돈만 확보되면 이를 근거로 땅을 계약하고 나머지 땅값과 시공비는 시공사로 선정된 대형 건설회사의 보증을 받아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아 해결한다.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사건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굿모닝시티’와 그 대표 윤창열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어쨌든 K씨는 분양이 잘될 경우 200억원을 6개월간 맡겨두면 100억원을, 1년간 맡겨두면 200억원을 받기로 했다. 기자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위험이 커야 먹을 게 많다”고 답했다. K씨가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에 더 많은 돈을 동원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상복합’ 이어 ‘오피스텔’ 겨냥 … 투기거리는 끝없다?

    하지만 K씨가 분양권 전매만으로 돈을 번 것은 아니다. 그가 소유한 부동산업체에 나온 급매물을 아는 사람끼리 사고 파는 방식으로 계속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도 이용했다. 서울 강남지역은 워낙 가격 시세에 민감해 특정 지역의 아파트 몇 채가 시세 이상의 가격에 팔렸다는 소문이 나면 그 즉시 전체 물량의 호가가 상향 재조정되는 특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가격을 올려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시쳇말로 ‘자동 뻥’. 아는 사람끼리 사고 팔았지만 어쨌든 이 아파트들은 K씨 소유고, 가격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팔면 투자금의 몇 배에 이르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는 또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 그 대책을 오히려 역이용했다. 지난해 10월 강북 뉴타운 사업지 1차 계획이 발표되기 석 달 전인 7월, 이미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있는 300여 평의 나대지를 한 달 새 사고 팔아 시세차익을 챙겼고, 올 11월 2차 계획 발표를 앞두고도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마포구 아현동 일대의 재래상가를 사서 이익을 챙겼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K씨가 서울 강남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못 끼는 ‘보통’ 전주라는 점이다. 그는 “강남에서 500억원을 움직이는 전주는 흔하고, 한 시간 안에 1000억원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만 1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들 중 몇 명만 같은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에 돈을 투입하면 무조건 대박이 보장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 상반기가 지나 주상복합 아파트에 대한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오피스텔.’

    현재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금리가 이대로 유지되고 주식 시장이 활황 국면에 접어들지 않는다면 뭉칫돈은 여전히 투자처를 찾아 헤매 다닐 테고, 강남의 몇몇 전주들이 집중적으로 투자만 해주면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람들이 몰리듯 오피스텔에도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파트보다 살기 불편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실수요자가 어디 있느냐”며 “오피스텔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번 10·29 부동산대책에서 오피스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주택 공급 물량은 정부와 주택건설업체들이 결정한다 하더라도 수요만큼은 강남의 전주들이 창출한다는 게 K씨의 결론. 때문에 뭉칫돈이 빠져나갈 다른 투자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아무리 강경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봐야 소용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자신감 때문일까. K씨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국세청의 3차에 걸친 아파트 분양권 시장 정밀 세무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고, 최근 국세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강남 지역 재건축 아파트와 주상복합 아파트 투기거래 혐의자 448명의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강남 불패’라는 말은 꼭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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