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2003.07.31

핵폐기장 찬반 ‘부안 주민 핵분열’

반대파 육지 주민 연일 격렬 시위 … 위도 주민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섭섭함 토로

  • 부안〓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07-24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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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폐기장 찬반 ‘부안 주민 핵분열’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가 결정된 후 부안군민들은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17년간이나 현안이던 국책사업이 이제야 떠돌기를 끝낼 것인가.

    전북 부안군이 7월14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 지원서를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에 단독으로 제출하면서 부안군의 위도가 사실상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결정됐다. 아직 부지선정위원회의 정밀 검토 절차가 남아 있지만 위도의 지질과 해양환경이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최종부지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건설 사업은 안면도, 굴업도 등 두 차례 부지 선정 실패 이후 장기간 표류해온 대표적 사회갈등 현안이다. 부안군이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이 골칫덩어리를 스스로 떠안겠다는 용단을 내려 17년간의 숙원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 보였다.

    그러나 ‘국난의 해결사’를 자청한 부안군은 이후 내부갈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군수의 결정이 ‘독단적’이라며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유치위원회와 반대위원회로 양분된 지역여론은 ‘환경이 우선이냐, 실리가 우선이냐’를 놓고 공방이 치열하다.

    주민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은 부안군측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7월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전 수거물 처리시설의 유치를 반대한다”고 말했던 김종규 부안군수는 다음날 돌연 태도를 바꾸어 공식적으로 유치 의사를 밝혔다. 더욱이 부안군 의회가 7대 5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반대했지만 김군수는 이를 외면했다.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를 비롯한 부안군의 일부 주민들은 이런 김군수의 태도를 비난하며 부안군청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핵폐기장 유치 반대’, ‘김종규 부안군수와 강현욱 전북 도지사 퇴진’ 등을 주장하며 곰소초등학교와 변산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등교 거부운동이 벌어졌고 부안읍 서외리의 이장 송모씨(56)는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도지사·군수 퇴진까지 요구

    이에 대해 김군수는 “‘지역발전’이란 실리를 위해 핵폐기장 유치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이 사안은 완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 어려워 절차상 무리를 감수했다는 것. 실제로 부안군이 최종부지로 결정될 경우 산자부는 부안군에 양성자 가속기 시설 설치와 테크노파크·산업단지·바다 관광단지 등의 조성을 위해 2조원 규모의 재정지원을 할 계획이다. 또 김군수는 ‘지원금 3000억원을 6000억원으로 상향 조정’, ‘변산반도국립공원 구역 조정’, ‘새만금에 친환경 산업단지 조성’, ‘바다목장사업 지원’, ‘2006년까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 이전 완료’ 등 5가지 요구사항을 추가로 제시했고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처리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부가 과연 이 ‘핑크빛 청사진’을 그대로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7월16일 군청 앞 시위에 참가한 최일자씨(65)는 “아무리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해준다 해도 후손 만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는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게 더 좋다”며 군수의 독단적 결정을 비난했다.

    핵폐기장 찬반 ‘부안 주민 핵분열’

    부안군청 앞에서는 매일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군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부안군 지역 주민간의 갈등도 심화할 조짐이다. 핵폐기물 처리장 사업에 찬성하는 위도 주민과 반대하는 육지의 부안군 주민 간의 이해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군 격포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용성씨는 “위도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누가 격포를 찾겠느냐”면서 “위도 주민들에겐 돌아가는 보상금이라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위도 주민인 한 70대 노인은 “육지 쪽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모양”이라며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육지의 부안군과 위도의 분위기 차이도 심해, 7월16일 오후 위도를 찾았을 때 연일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육지의 부안군과는 달리 위도에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90%가 처리장 유치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곳 주민들 역시 과연 정부가 약속을 지킬지,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인한 피해는 없을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획량 줄어 생존권 위태”

    위도 주민이 핵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생존권’ 때문이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20km 떨어진 영광 원전의 영향으로 위도 주변의 어획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그동안 어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위도 주민들이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위도면 파벌금리의 백종일 이장은 “섬 주변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아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던 위도 주민이 최근 해경 단속에 걸려 거액의 벌금을 무는 일이 잦아졌다”며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사는 위도 주민에게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모씨(35)는 “환경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유치추진위 위원장 정영복씨(51)는 “새만금사업과 영광원전 사업으로 위도가 피해를 봤으나 제대로 된 보상은 받지 못했다”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주도적으로 핵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는 게 낫다”고 전했다.

    핵폐기장 찬반 ‘부안 주민 핵분열’
    하지만 위도 내부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의 싹은 존재하고 있다. 위도에서 유일하게 유치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서대석씨(52)는 “위도의 많은 노인들은 핵의 위험성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유치 결정에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주민들은 3억~5억원의 직접보상을 기대하며 찬성한다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직접보상은 현행법이 개정돼야 가능하다”며 “민박을 치거나 낚싯배를 대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심 반대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린다”고 덧붙였다.

    핵폐기장 유치를 직접 청원했던 위도 주민들은 또한 부안군측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다. 유치추진위 부위원장 서하석씨(50)는 “유치추진위가 세 번에 걸쳐 위도의 지질검사를 요구할 때는 부안군측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이젠 상의도 없이 김군수가 일방적으로 유치를 결정했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부안군이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고, 정부가 요구조건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제든 유치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핵폐기장 찬반 ‘부안 주민 핵분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육지 주민과 달리, 위도 주민들은 핵폐기장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렇듯 주민간의 혼란이 심화하자 김군수는 양분화한 지역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지역혁신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원전 수거물 처리장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감시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안군의 한 주민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양분돼 갈등하고 있는 여론을 하나로 묶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부안군과 전북도를 이끄는 사람들이 주민의 안전보다 ‘치적 세우기’에 골몰한다면 주민들의 반발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주민 안전을 최고 조건으로 한 투명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새만금사업 중단’이라는 법원의 결정이 ‘핵폐기장 유치’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올랐다. 부안군은 16일 법원의 결정이 나자마자 “새만금사업을 중단한다면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신청을 철회하겠다”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에 따라 8월에 있을 예정인 최종 공판에서 새만금사업 중단이 결정될 경우 ‘핵폐기장 부지 선정’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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