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지지부진 한국형 발사체 일본 따라잡을 기회 놓쳐

수소엔진에 집중한 미국·유럽·일본, 석유엔진 개량한 러시아·중국…눈치만 보다 실기한 한국

  • 입력2016-08-12 17:31:2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산소는 영하 183도쯤에서 액체가 되지만 수소는 절대온도(영하 273도)에 근접한 영하 253도까지 가야 액체가 된다. 영하 253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온이다. 이 온도에서는 거의 모든 물질이 바스러진다. 단단할 것만 같은 특수강과 크리스털도 종잇장처럼 부서진다. 따라서 영하 253도 이하를 조성해 액체수소를 만들더라도 이를 담을 용기(容器) 제작이 문제다.

    몇몇 선진국은 이 용기를 만들었으나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다. 따라서 다른 원소보다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아야 같은 무게가 된다. 산소 10억m3로 1t을 만든다면 수소는 1000억m3를 모아도 1t이 안 되는 것이다(이는 설명하기 위한 예일 뿐 사실이 아니다). 수소가 가볍다는 점은 다른 문제도 일으킨다. 액체에서 기체가 되는 순간, 가벼운 무게 때문에 부피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이러한 기체수소에 산소를 섞어 불을 붙이면 상상할 수 없는 힘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수소엔진의 원리다. 그런데 난제(難題)가 또 나타났다.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면서 부피가 엄청나게 커진 수소를 담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기체수소가 되는 순간 태워버리면 폭증한 양을 처리할 수 있지만, 순간처리기술의 개발이 쉽지 않았다. 극소수 선진국만 이 기술을 개발했는데, 실력 차가 나타났다.

    기술이 있는 나라는 수소엔진을 작게 만들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크고 강하게 제작한 것. 기술이 부족한 나라는 부피가 커진 기체수소를 태워야 하니 엔진을 크게, 그리고 기체가 되면서 순간적으로 늘어나는 수소의 압력을 견뎌야 하니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크고 강한 엔진을 만들려면 당연히 재료가 더 들어가 제작비도 올라간다.

    액체수소를 기체수소로 바꾸려면 액체수소를 뽑아내는 펌핑을 해줘야 한다. 수소와 섞어 태우기 위해 액체산소를 뽑아내는 펌핑은 그나마 간단하지만, 액체수소 펌핑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액체수소용 펌핑 장비도 커지고 복잡해졌는데, 이 펌프를 만드는 데도 실력 차가 났다. 그래서 수소엔진은 나라에 따라 성능과 제작비가 천차만별이다.





    기술 달리고 경제성 없는 일본 수소엔진

    수소엔진은 힘이 세니 발사체가 가장 무거울 때 올려주는 1단 로켓에 장착한다. 그런데 극저온을 유지할 특수연료통과 큰 엔진, 복잡한 펌프를 달면서 덩치가 커졌다. 이 때문에 제일 먼저 수소엔진을 개발한 미국도 아폴로 발사체 1단 로켓에 붙이지 못했다. 아폴로는 달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1단 로켓의 추력이 690t이 돼야 했다. 이러한 힘을 내는 수소엔진을 만들면 그 덩치가 너무 커지므로 1단 로켓은 석유엔진으로, 2·3단 로켓은 수소엔진으로 제작했다.

    2·3단 로켓은 진공(眞空)인 우주에서 가동되므로 작아도 된다. 우주에서는 공기 마찰이 없어 작은 힘으로도 엄청난 속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해 이제 수소엔진을 1단 로켓에서도 사용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기술을 받아 발사체를 제작하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은 수소엔진으로 1단 로켓을 제작하고 있다.

    미국이 앞서가니 유럽과 일본이 따라갔다. 유럽은 아리안 5호, 일본은 H-2 발사체부터 수소엔진을 1단으로 사용했다. 그러자 여기서도 실력 차가 드러났다. 아리안 5호는 견딜 수 있었다. 유럽 국가들의 위성 발사를 도맡았기 때문이다. 발사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아리안 5호의 발사 가격은 떨어졌다. 다매(多賣) 덕에 박리(薄利)를 하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일본은 반대였다. 자국 위성만 쏘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H-2는 쏘면 쏠수록 적자가 쌓였다. 이를 벗어나고자 2012년 발사 가격을 반으로 낮췄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매 시장을 만들어보려 한 것. 그때 한국 측 의뢰로 H-2가 한국 아리랑 3호 위성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곧장 일본 내 반대 여론이 많아지자 일본은 외국 위성을 저가로 발사해주는 사업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H-2는 경제적으로 실패한 애물단지가 됐다.

    일본의 불행은 그것만이 아니다. 기술이 부족한 탓에 일본 수소엔진은 완벽한       1단이 되지 못했다. 수소엔진을 작게 만들어 1단으로서 갖춰야 할 힘을 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옆구리에 ‘부스터’라 부르는 고체연료 로켓을 주렁주렁 붙여야 했다. 부스터를 붙인 발사체는 멋있어 보이지만, 현실은 실력 부족을 고백하는 셈이다. 미국 회사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값싼 러시아 석유엔진을 도입해 1단을 만들고 2단부터 수소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KSLV-2 장착 석유엔진 개발도 감감무소식

    발사체는 위성을 궤도에 올려준 다음 사라지는 소모품이다. 수천억 원 들여 개발한 품목을 우주로 날려버리는 ‘불꽃놀이’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국은 수소엔진을 탑재한 우주왕복선을 만들었다. 왕복선은 위성을 우주궤도에 올려준 다음 지구로 내려와 정비를 거치고 연료를 채워 다시 위성을 싣고 우주로 올라간다. 그러나 왕복선도 경제성은 없었다. 왕복선은 어마어마한 대기권 마찰열을 뚫고 지구로 돌아와야 하니 더 많은 기술과 장비를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방 선진국들이 미국이 간 길을 대세로 보고 무작정 따라 달려가고 있을 때 이 기술이 부족한 러시아와 중국은 석유엔진 개량에 집중했다. 이것이 큰 성공을 거뒀다. 석유엔진만 쓰는 발사체는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두 나라는 ‘지갑이 얇은 나라’를 상대로 위성을 발사해주며 떼돈을 벌었다. 한국도 주로 러시아 발사체를 이용해 위성을 쏘아 올렸다. 2008년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탔던 소유스호의 발사체도, 2013년 나로호를 쏘아 올린 러시아의 앙가라 로켓도 모두 석유엔진이었다.

    이를 지켜본 미국 벤처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흥미로운 사업을 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1단은 큰 석유엔진, 2단은 작은 석유엔진 식으로 엔진을 2개 이상 제작해왔다면, 머스크는 2단용 석유엔진 1개만 개발했다. 그리고 이것을 4, 5, 9, 21개 식으로 묶어 1단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석유엔진을 하나만 개발해 대량생산하면 되니, 발사체 가격이 현저히 낮아진다. 머스크는 발사 비용을 반값으로 떨어뜨렸다. 그 덕에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밀렸던 위성발사사업에서 강자로 귀환했고, 머스크가 세운 회사 스페이스X는 돈을 끌어모았다. 스페이스X는 40t 추력의 멀린엔진을 개발해 대량생산을 하다, 기술개발을 거듭해 지금은 80t짜리를 내놓고 있다. 더 나은 발사체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귀감이 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70t짜리 석유엔진을 만들고 이들로 KSLV-2 발사체를 제작해 시험발사해본 뒤 거기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해 최신형 멀린엔진에 버금가는 석유엔진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항우연은 실패가 두려워서인지 KSLV-2 발사체에 들어가는 석유엔진 개발을 계속 늦추고 있다. 제대로 된 석유엔진 개발로 퀀텀 점프를 해, 수소엔진 쪽으로 달려가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일본 우주산업을 잡겠다는 꿈이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 구식 방법으로 은하 3호를 만든 북한은 광명성 4호를 자력으로 쏘아 올렸다(이 기사는 ‘주간동아’ 1048호 ‘2조 원 삼킨 액체로켓 개발 안 하나, 못하나’의 후속보도입니다). 


    한국형발사체 개발 지연에 관한 반론보도문

    본지는 인터넷주간동아홈페이지 2016. 8. 12.자 기사에서 “지지부진 한국형발사체 일본 따라잡을 기회 놓쳐”라는 제목 하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실패가 두려워서인지 KSLV-2 발사체에 들어가는 석유엔진 개발을 계속 늦추고 있다”라고 보도하였으나, 이에 대하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엔진개발 시험의 투입 인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함에도, 단계별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엔진 제작, 조립, 연소시험 검증을 추진하면서, 한국형발사체 엔진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