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2003.06.26

‘과학기술정책’ 참여정부서도 찬밥

혹시나 했던 공약, 역시나 대거 불발 … 과제만 그럴듯하게 만들고 추진위 없는 경우도

  •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공동대표 http://www.scieng.net

    입력2003-06-19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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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정책’ 참여정부서도 찬밥

    지난 6월4일 과학기술시민단체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대전 KAIST 태울관에서 주최한 정책 제안 토론회 모습.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이에 따른 과학기술계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이공계 위기’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계속 악화되고 있다. 올해 역시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약계열로 집중되는 바람에 ‘전공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뿐만 아니라 한창 공부와 연구에 몰두해야 할 이공계 석·박사까지 대학 의약계열에 재입학하거나 고시 준비에 나서는 등 ‘탈이공계 엑소더스’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이공계 대학원은 ‘기피 현상’을 넘어 ‘공동화(空洞化)’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은 이공계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다. 국가의 장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 가을,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발표한 이공계 해외유학생 지원책과 이공계 신입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방안. 그밖에도 과학기술인 공제회 제도를 신설하고 이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했다.

    과기부 혼자 노력만으론 한계

    그러나 이런 대책은 문제의 근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학문화의 탄탄한 기초를 다져가는 것이 아니라, 사탕발림 수준의 일시적인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8월에 기획예산처가 마련한 해외유학생 경비 지원 방안 역시 우수한 이공계 대학생들이 이미 장학금을 받으면서 해외 유수 대학으로 다투어 진학하는 판국에,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공동화와 두뇌 유출로 이공계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큰 정책으로 비판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참여정부에 대해 과학기술인들 역시 전임 ‘국민의 정부’의 출범 때와 비슷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입으로만 과학기술입국을 외쳤던 이전 정권에 반복적으로 속아온 터라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공약으로 본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남달랐던 것이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난 현시점에서 정부의 그동안의 과학기술과 관련된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과학기술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위기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참여정부의 출발과 함께 과학기술계의 초미의 관심사는 청와대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의 신설 여부였다. 이는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노대통령이 선거 기간 동안 장관급 과학기술수석비서관 혹은 과학기술특보를 두겠다고 거듭 약속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럼에도 청와대 직제 개편 등을 이유로 약속은 슬그머니 없었던 것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노대통령은 공약을 지키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정부는 마지못해 차관급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는 결국 반쪽짜리 약속 이행에 그친 셈이다.

    그래도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 공식적인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채택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었던 만큼 과학계가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북아 중심국가’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 ‘국가 균형발전’ 등 다른 주요 국정과제는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적인 국정과제추진위원회와 청와대 태스크포스팀이 결성되고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는데도 유독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국정과제는 별도의 추진위원회나 조직이 꾸려지지 못한 채 표류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결국 새 정부의 제2과학기술입국 선언 역시 예전과 똑같은 ‘립 서비스’에 그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만 커졌다.

    기존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과학기술자문회의 강화라는 대안이 제시됐으나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장관급 위원들이 몇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논의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업무 협의나 조정 수준이 아닌 실행력 있는 계획(Action plan)을 제대로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원로급 학자들이 특정 과학기술 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중요 국정과제를 논의한다는 것 역시 난센스.

    ‘과학기술정책’ 참여정부서도 찬밥

    청와대 홈페이지 (www.president.go.kr)에 개설된 이공계 위기 토론방.

    범정부적인 국정과제 추진위원회는 아니지만, 지난 5월 하순에는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가 중심이 되어 산하에 ‘과학기술 중심사회 기획위원회’를 구성해 나름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 현상 극복이나 과학기술 중심국가 건설은 과기부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성격의 과제가 아니다.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서와도 연관이 있지만, 이공계 학생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인적자원부, 이공계 출신의 병역특례 문제 등과 관련된 국방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 그밖에도 우수 학생을 쓸어가다시피 하는 의약계 법조계 등과의 의견 조율이 필수적이다. 심지어는 사법고시 등 각종 고시의 개선책을 마련중인 타 부처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과기부가 정부 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상 또한 과학기술 관련 문제의 근원 및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6월4일에 과학기술시민단체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http://www.scieng. net)은 대전 KAIST 태울관에서 ‘현장으로부터의 정책 제안’이라는 주제로 과학기술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100명이 넘는 연구원, 학생 및 과학계 인사들이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밑그림을 담당해온 인사 및 과기부 당국자가 그 자리에서 주제발표를 통하여,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 방안 및 참여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는 참여정부가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기존의 미봉책이나 임시방편이 아닌, 문제의 근원을 명확히 인식하고 범정부적으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내놓아야 한다.

    많은 과학기술인들은 구호만 난무하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현상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중에는 이제 분노를 넘어 체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숨 섞인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계속 외면한다면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역시 이전 정권들의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음은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게시판에 올라온 현장의 목소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출연 연구소를 구조조정한다고 난리를 떠는데, 이름만 비슷한 기관들끼리 합친다고 구조조정이 될까? 또 능력 있는 연구원들만 대거 내쫓기게 생겼군….”

    “우리가 과학기술인들만 잘 살자고 이러는 것인가.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이공인들의 밥그릇 챙기기’ 정도로 폄하될 바에야 차라리 ‘이공계 기피 운동’을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이공계일 텐데, 국회의원 중에 이공계 출신 인사는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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