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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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영국 총리는 고든 브라운?

이라크사태 미국 지지 블레어 인기 바닥 … “차라리 브라운으로” 여당 내부 목소리 고조

  • 안병억/ 런던 통신원 anpye@hanmail.net

    입력2003-03-20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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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영국 총리는 고든 브라운?

    2002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영연방 경제각료 회의에서 연설하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토니 블레어, 6년 총리 재직기간 중 최대 위기 맞다’.

    최근 영국 일간지들의 머릿기사 제목이다. 2월26일 하원에서 이라크를 공격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집권 노동당 의원의 발의안에 노동당 의원 413명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121명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여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권당 의원들의 반대표가 이처럼 많은 것은 의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야당인 보수당 의원들이 블레어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찬성표가 과반을 넘어 블레어 정부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총선에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당수로 나서야 한다는 여당 내부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이와 맞물려 블레어 총리가 물러나면 유럽연합(EU)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영국이 EU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최근 민영방송 채널4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75%가 유엔의 2차 결의 없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여론은 지난달 15일 런던에서 열린 이라크전쟁 반대 집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만명이 넘는 영국인들이 반전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의 입장은 확고하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인물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블레어가 이처럼 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사태에 대해 미국을 지지하고 나서는 이유는 다양하다.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함께 행동할 경우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이 국익에 연결된다는 견해가 지도층에 널리 퍼져 있다. 야당인 보수당이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대(對)이라크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의료보험과 교육 등 공공 서비스 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만회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다분히 있다.



    문제는 총리가 정치적 기반인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또 적대적인 여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원의 표결이 공개된 직후 언론은 노동당 내부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블레어가 당내 제2인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당수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불거지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임기중 당수 넘기면 자동 총리

    브라운 장관은 1994년 노동당 내 당권 경쟁에서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블레어에게 당수 자리를 양보했었다. 당시 블레어가 브라운에게 총리 재임중 자리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총리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블레어가 브라운에게 당수 자리를 넘긴다면 브라운은 자동적으로 영국 총리가 된다.

    브라운 장관의 노동당 당수 승계설은 이전에도 언론을 통해 수차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노동당의 평의원뿐만 아니라 원로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 언론의 분석이다.

    1997년 5월 당시 블레어 노동당 당수는 총선에서 존 메이저 보수당 총리를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고 총리에 취임했다. 블레어는 총선 공약에서 좌우를 통합한 ‘제3의 길’을 내세워 성공적인 집권 1기를 마친 후 2001년 6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했다. 다음 총선은 2005년, 혹은 늦어도 2006년 봄으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경제정책을 상당 부분 그대로 계승했다. 철도 등의 민영화도 그대로 추진됐다. 한술 더 떠 97년부터는 대학생들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중단하고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노동당이 보수당과 비슷한 정책을 상당수 실시하자 당내 노동조합과 일부 정통 좌파의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단 블레어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집권 2기 중반기인 현재 상황은 그에게 점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차기 영국 총리는 고든 브라운?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위)와 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블레어 총리. EU는 현재의 상임의장제를 보완할 대통령제를 곧 실시할 예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라크전쟁보다는 의료보험과 교육 서비스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료로 치료를 받는 의료보험의 경우 6개월 이상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현재 20만명을 넘은 상태다. 올 1월 발표된 대학교 재정지원 계획은 2006년 대학교 신입생부터 학비를 현재 수준보다 3배 올리고 극빈가정의 일부 학생에게만 생활비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브라운 장관은 극빈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대학 등록금 인상에 강력 반대했다고 전해졌다. 블레어가 브라운의 반대를 물리치고 등록금 인상을 관철하자 두 사람의 갈등설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물론 브라운은 공식적으로는 블레어의 대이라크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재무장관인 브라운은 전쟁을 대비한 추가 예산도 편성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국방비가 증가하고 의료보험과 교육 서비스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블레어가 이번 임기 안에 브라운에게 노동당 당수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경우 EU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영국이 EU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다.

    EU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정상회의와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각료이사회에서는 회원국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순회 의장국은 국제사회에서 EU를 대표하며 정상회의 등을 주최한다. 문제는 6개월마다 의장국이 바뀌기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것. 베네룩스 3국 등 소국이 의장직을 수행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EU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블레어, EU 초대 대통령 될까

    EU 대통령제는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처럼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가 상임 의장직을 수행하고 지명도가 높은 인물을 임기 3~5년의 상임의장, 즉 EU 대통령으로 임명한다는 안이다. 이미 유럽의 3대 강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모두 EU 대통령제에 합의한 상태다. 프랑스나 독일보다 먼저 영국이 이 안을 제안했으며 당시 블레어가 유망한 초대 대통령 후보로 고려되었다는 설도 있다. 블레어 정부의 대이라크 정책에 대한 노동당 내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이 추측은 좀더 구체화되고 있다.

    물론 브라운 장관이 노동당 당수 자리를 승계하고 블레어가 EU 초대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과감한 변신’이 실현되기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다. 이라크사태의 해결, 노동당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유로화 가입 여부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또 이라크사태에 대한 입장 차이로 프랑스, 독일과 영국 간의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다. 과연 유럽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이 친미 일변도인 블레어의 EU 초대 대통령 취임 추진을 좌시할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이라크사태를 두고 가장 위험한 모험을 선택한 블레어가 더욱 수세에 몰릴 경우 과감한 예측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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