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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가전제품 ‘感性의 날개’ 달다

사람 위치 따라 켜지는 오디오·대화 가능한 장난감 등 감성 충족 제품 개발 박차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똑똑한 가전제품 ‘感性의 날개’ 달다

똑똑한 가전제품 ‘感性의 날개’ 달다

‘n-Mirror’는 카메라와 PDP가 장착돼 있어 거울 효과를 내며 의상 DB에서 옷을 검색해 옷 입은 모습을 합성해 보여준다(위). ‘마이 워치’는 집안 곳곳에 설치된 리더기와 손목에 착용한 시계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파악한다. (아래)

[장면 1]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한기를 느껴 안방으로 이동했는데 안방의 TV가 저절로 켜지면서 거실에서 보던 채널이 자동으로 설정된다.

[장면 2] 주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던 주부가 다용도실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울리자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옮겨 건조대에 빨래를 넌다. 그 동안 베란다 스피커에서는 주방에서 듣던 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 디자인연구소 박지수 과장팀이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2년 동안 준비해온 시계형 위치 식별장치 ‘마이 워치(My Watch)’를 착용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마이 워치는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제품 스스로 파악해 사용자의 욕구와 기분에 맞춰 작동된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가전제품의 ‘똑똑한’ 기능에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애교’가 추가된 감성제품이다. 지금까지의 가전제품 개발이 제품의 성능과 품질 개선에 주력했다면, 감성제품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염두에 두고 쾌적함, 안락함 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내서도 554억 투입 기반사업 마무리

감성제품을 개발하는 감성공학은 사람의 감성을 평가한 뒤 이를 수치로 나타내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학문. 집을 설계할 때 아늑함을 고려하거나, 의류를 제작할 때 감촉에 신경 쓰고, 자동차의 승차감을 중시하는 것 등이 감성공학의 기초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감성공학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86년 일본 마쓰다 자동차회사 회장이 미국 미시간대학 특별강연에서 “자동차는 문화창조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자동차 문화론’을 전개하면서다. 그는 운전자의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승차감이나 인테리어를 강조하면서 그 기법으로 ‘감성공학(Kansei Engineering)’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대미수출용 승용차 ‘페레소나’이며 이 승용차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감성공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기부가 나서 95년부터 추진해온 ‘감성공학 기반 기술개발 사업’이 7년간의 일정을 마치고 최근 마무리됐다. 감성제품 개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된 이 사업은 총 554억원의 연구비와 700여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여러 대학과 휴먼센스, 옥시큐어, 한울로보틱스 등 벤처기업과 대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대우전자가 참여했다. 사업을 단계별로 마무리할 때마다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련 학계와 업계의 관심을 끌어왔다. 12월13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실시된 최종 결과 발표회에도 삼성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기업들이 이제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감성공학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상황을 확인한 셈이다.

가전제품에 감성공학을 접목시키면 대형 냉장고에 저녁 메뉴, 공과금 고지서, 피잣집 전화번호 등을 다닥다닥 붙여놓지 않아도 된다. 주부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들이 냉장고에 부착된 웹패드(Web Pad) 안으로 쏙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우전자는 각종 정보를 메모 형태로 모아놓는 아날로그식 정보 표시 형태를 개선하고 냉장고의 넓은 벽면을 활용할 방법을 찾던 중 ‘n-Mirror’ 냉장고를 떠올렸다. 이 냉장고에 부착된 웹패드는 가전제품을 조종할 수 있는 컨트롤러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 이메일 스케줄 관리, 화상전화, 전화번호부 등의 역할도 소화할 수 있다.

똑똑한 가전제품 ‘感性의 날개’ 달다

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음성으로 전달해주는 ‘커뮤니케이션 토이’.소형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어 쇼핑 목록, 전화번호 등을 스캔하여 저장할 수 있는 아이펜(i-Pen). 가전제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통합 리모콘 ‘스마트 테이블’(왼쪽 부터).

그러나 대우전자가 제시하는 감성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래 가정에서 가전제품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를 예측한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가정생활과 관련된 사용자의 욕구(needs)를 파악해 적절한 신제품을 제안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과기부의 감성공학 프로젝트는 완성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김철중 박사는 “감성공학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전 단계로 인간의 감성을 측정하는 기반시설을 구축한 것은 지난 7년간의 프로젝트가 일궈낸 거대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기업에 감성공학 연구와 제품개발의 필요성을 확산시키는 데도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갖가지 감성을 수치와 공식으로 전환시킨 DB와 색채환경에 대한 인체반응 지표, 향이 후각에 미치는 영향과 반응, 생활공간 환경에 대한 감성 등을 축적한 감성 DB는 앞으로 제품개발에 다양하게 응용될 전망이다.

인간 감성 수치화한 뒤 DB로 축적

‘향의 영향 측정 및 후각 DB 개발’ 과제에 참여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민병찬 박사팀이 태평양 이플립과 공동으로 스트레스 경감용 에센스 ‘이플립 아로마’를 개발한 것은 기반사업 과제를 활용해 제품화에 성공한 사례다. 민박사는 개별 향에 대한 후각의 반응을 축적한 후각 DB를 기반으로 아로마의 영향에 따른 뇌파의 변동리듬을 이용했다. 민박사는 “레몬 오렌지 라벤다 등 복합향에 대한 연구는 처음으로 이뤄졌다”며 “앞으로 알츠하이머 환자 등 질병 치료에 효용이 있는 아로마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감을 주는 향을 자동차에 활용하기도 했다. 옥시큐어가 개발한 자동차 운전자 피로경감 시스템은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향과 함께 산소 농도를 높여주는 방식이다. 이것은 현재 국내 대기업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어 곧 상품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당초 ‘가전제품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 기발한 제품 과제들이 일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연구결과가 사장될 위기에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과기부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각종 감성 DB를 구축하는 기반사업 과제와 함께 제품개발 과제도 있었다. 이메일로 장미꽃이 가득한 카드를 받으면 장미향이 분출되는 컴퓨터, 손이 불편한 장애인이 마우스 없이도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인터넷 작업을 할 수 있는 감성컴퓨터 인터페이스,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화를 시도하는 감성완구, 집중력 증진 시스템 등이 감성공학 사업의 산물로 기대됐던 것들.

그러나 최종 결과 발표회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일부 제품 과제들이 상품화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감성공학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철중 박사는 “일부 연구자들의 과욕에서 비롯된 주제들은 현실성과 거리가 멀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 지원을 받는 데만 관심을 가진 일부 연구자들이 중소기업을 끼워넣기 식으로 참여시키면서 상용화가 어려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 그쳤다는 것. 한편 향기 나는 컴퓨터를 비롯한 과제들은 정부 지원이 끝난 뒤 기업과 연계하는 데 실패해 상품화되지 못하고 있다.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 드는 높은 비용과 예상수요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던 것.

이에 대해 민병찬 박사는 “당장 상품으로 개발되지 못한 과제들도 상품개발에 필요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언제든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지난 7년간의 성과가 사장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포스트 감성공학 사업’을 진행해 각종 DB와 연구결과를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3.01.09 367호 (p68~69)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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