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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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일등공신 ‘인터넷’

네티즌과의 쌍방향 선거운동 ‘타 후보 압도’ … 조직·돈 바람 잠재우고 새 문화 자리매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2-12-26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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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화, 정보화 등으로 무장한 시민사회의 선택은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3김 시대의 퇴장을 동반한다.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20, 30대가 신파워그룹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력히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노무현 시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승리의 일등공신 ‘인터넷’

    16대 대선을 치르면서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1987, 92년 대선·군중집회→97년 대선·TV 방송토론→2002년 대선·인터넷→2007년 대선·모바일?’.

    16대 대선을 치르면서 또 한 번 선거 문화가 확 바뀌었다. 이번 대선에서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선거운동은 후보의 당락을 결정짓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e폴리틱스’로 상징되는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한 후보와 정당은 기쁨을 맛봤고, 그렇지 못한 후보와 정당은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

    87년과 92년 대선은 수십~수백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이 진행됐다. 대규모 유세는 막대한 자금과 조직동원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수천억원 이상의 선거자금이 소요됐고 선거 후유증으로 선거자금과 정경유착 논란이 반드시 뒤따랐다. 97년 대선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TV 방송토론이 도입돼 토론 결과가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에도 대규모 군중집회는 중요한 선거운동 도구로 이용됐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후보들은 불과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대중연설에 나섰을 뿐, 대규모 집회가 모두 사라졌다. 선거철 ‘단골메뉴’인 조직선거 돈바람의 위력이 크게 줄어들고 그 자리를 미디어·인터넷 선거가 차지한 것이다. 선거방식의 변화로 인해 흑색·금권·관권선거라는 일그러진 선거문화가 상당 부분 그 모습을 감춰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을 안겨줬다. 특히 인터넷 선거는 선거에 무관심했던 젊은층을 정치의 장에 끌어들이는 데도 기여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냈다.

    정치의 장으로 젊은층 끌어들이는 데 큰 공헌



    이번 선거는 ‘재래식 무기’ 대 ‘첨단 무기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다. 11월 한나라당은 지연(향우회)·학연(동창회)·혈연(종친회)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다. 각 단체 인사들을 저인망식 전략으로 지지세력화했기 때문이다. 직능특위 발대식, 임명장 수여식 등 한나라당이 소총수 확보에 나선 사이 민주당에선 간간이 선거 관련 모임이 있었을 뿐, 한나라당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선거대책위원회를 가동해 조직력의 우위를 점했으나, 확보한 소총수와 실탄은 인터넷의 위력 앞에 눈 녹듯 무너져 내렸다.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20, 30대 젊은층은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인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전형적인 아날로그 선거운동으로 이들의 감성을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사이버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국민 경선 이후 장기간의 내분으로 선거운동 공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던 상태에서 네티즌들은 선거운동의 핵심 브레인 노릇까지 했다.

    천호선 민주당 인터넷본부 기획실장은 “이번 선거에서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한 데는 세계적 수준의 높은 인프라와 함께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 활발한 게시판 토론문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국 규모의 선거인 터라 인터넷의 위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노풍의 재점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계보도 돈도 없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 뒤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승리의 일등공신 ‘인터넷’

    노무현 당선자가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 홈페이지와 노당선자 홈페이지를 통합해 TV 방송국(tvroh.com)과 라디오 방송국(radioroh.com)을 운영했다. TV 방송국은 다른 인터넷 방송국을 제치고 접속률 1위에 오를 정도로 네티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광고카피를 패러디해 만들어진 ‘니들이 노무현을 알아’ 코너는 TV 방송국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 ‘노무현의 눈물’ 편과 노무현 후보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개혁적국민정당 창당 관련 행사 연설 동영상에 대한 접속 건수도 60만건에 이르렀다. 라디오 방송국의 경우엔 가수 신해철씨가 진행자로 참여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라디오 방송국 개국 때는 노당선자가 직접 출현해 실시간으로 네티즌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등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네트워크가 이처럼 활발하게 운용되면서 네티즌들의 정책 및 아이디어 제안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김민석 전 의원이 국민통합21에 입당하자, 한 직장인이 “저녁 술값 3만원을 노후보에게 제공하겠다”는 글을 올렸고 이 직장인이 올린 글은 ‘희망돼지 보내기 운동’의 단초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 전개된 “노후보 지지를 주변에 고백하자”는 ‘커밍아웃 운동’도 한 네티즌이 직장에서 겪은 경험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면서 시작됐고, 노당선자의 정치광고 ‘기타 치는 대통령’의 경우도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힌트를 얻은 네티즌의 아이디어였다. 젊은층을 노린 ‘컬러링 운동’(휴대폰 통화연결음을 노당선자의 선거 로고송으로 바꾸자는 운동)도 마찬가지였는데, 컬러링 운동이 급속도로 번져 노당선자 지지자들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상대방은 노당선자의 로고송을 들어야만 했다.

    콘텐츠 제작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공식 직함은 없지만 송치복씨(41)는 콘텐츠 대결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인공이다. 그는 노당선자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지난 여름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노무현 돕기 자원봉사에 나서 ‘노무현의 눈물’ ‘기타 치는 대통령’ 광고를 히트시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OK SK’ ‘하이트 맥주’ 광고 등이 바로 송씨의 작품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e-회창 TV를 구축했다. 아침에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 등을 담은 ‘안녕하십니까 이회창입니다’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었지만, ‘니들이 노무현을 알아’의 경쟁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한 네티즌의 충고로 이회창 후보가 아이디를 Leehc에서 friendlee로 바꾸기도 했지만 네티즌들의 아이디어 제안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벌인 ‘전자우편 100만개 모집 운동’ ‘홈페이지를 통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서명운동’은 민주당의 컬러링 운동 등에 비해 ‘쿨’하지 못해 젊은층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네티즌들은 각 후보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면서 자연스럽게 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을 펼쳤다. 인터넷은 신속성과 쌍방향성을 무기로 소수에 의한 정보 독점을 막고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 대 多 방식보다 多 대 多 구조로 이뤄진 정보유통 구조에 익숙한 네티즌들은 정당의 논평이나 언론 보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분석 검증했다. 한나라당이 고교생 학부모라며 찬조연설자로 내세운 박은숙씨가 박창달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사실은 인터넷 공간에서 ‘적발’된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나라당이 “노무현의 눈물은 안약 때문”이라는 논평을 냈다가 당시 화면을 인터넷을 통해 본 네티즌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노무현 당선자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수호천사 역할을 한 것은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다. 노사모가 결성된 것은 2000년 4·13 총선 직후인 2000년 5월17일 대전의 한 PC방에서였다. 한국에 e폴리틱스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결국 노후보는 e폴리틱스와 함께 성장한 셈이다.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와 동영상을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송·수신할 수 있는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m폴리틱스와 함께 떠오른 후보가 다음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가정은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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