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2002.09.19

침묵하는 진실, 꼬리 무는 음모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09-24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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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1년 전 뉴욕에서 벌어진 항공기 납치 자폭테러는 출판계에 두 개의 화두를 던졌다. 하나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슬람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미국이란 나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9·11 테러를 미국의 음모라는 시각에서 분석한 티에리 메이상의 ‘무시무시한 사기극’과 같은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메이상은 이 책에서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성(펜타곤) 사건이 별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펜타곤에는 비행기가 추락한 적이 없으며 ‘미국 우파의 자작극’이라는 것이다. 또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적이 아니라 미국의 공작원이었다고 폭로했다.

    메이상에 앞서 프랑스 저널리스트 기욤 다스키에와 장 샤를르 브리자르는 ‘빈 라덴, 금지된 진실’이라는 책에서 9·11 테러의 중심에는 부시 행정부와 탈레반 간의 비밀협상이 있었고 그 핵심은 ‘석유’였다고 주장했다. 9·11 테러의 실체는 석유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주도권 싸움이었다는 것. 즉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이슬람 테러리즘 간의 ‘위험한 관계’, 미국과 탈레반 간의 위험천만한 거래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주장이다.

    기욤 다스키에는 ‘빈 라덴, 금지된 진실’ 이후 다시 ‘가공할 만한 거짓말’(장 기스날 공저)로 메이상의 논리를 반박했다. 이에 지난 6월 메이상이 ‘펜터게이트’라는 책에서 재반론을 펴는 등 유럽에서는 9·11 테러의 진실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해외 출판계 소식으로나 듣던 이런 책들이 9·11 테러 1주년을 맞아 국내에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치평론가 이타가키 에이켄이 쓴 ‘부시의 음모’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부시가 동시다발테러를 알고 있었으며 하이재킹당한 비행기의 추락을 용인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슬람의 애국전사 빈 라덴은 미국의 꼭두각시였으며, 지지율 하락과 IT산업의 붕괴로 인한 경기하락 등 이중고를 겪고 있던 부시 대통령에게는 대외적인 국민적 분노와 증오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9·11 테러를 정치적 음모론의 시각에서만 볼 수는 없다. 어쨌든 수천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 현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영웅들을 발견했다. 바로 뉴욕의 소방관들이다. 뉴욕 소방본부 제11소방대장 리처드 피치오토도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다 매몰됐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9·11의 영웅들’을 썼다. 이 책은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기록이다.

    9·11 테러에 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 외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낯선 문명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들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년간 복역한 정수일 박사는 지난 1년 동안 ‘실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이슬람 문명’ ‘이븐 바투타 여행기’(역서)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로 떠올랐다. 최근작 ‘이슬람 문명’은 이슬람 문명의 여러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사실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책이다.

    한국이슬람학회 회장이며 베스트셀러 ‘이슬람’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이희수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도 9·11 테러 이후 주목받은 학자다. ‘한·이슬람 교류사’ 등을 쓴 이교수가 이번에는 세예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쓴 ‘문명의 대화’를 번역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일찍이 문명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유엔이 이를 받아들여 2001년을 ‘문명의 대화의 해’로 선포했었다. 이교수는 “9·11 테러가 오히려 문화 다원주의와 타문화 존중이 전제되는 문명 간 대화의 필요성을 지구촌에 더욱 강하게 심어주었다”고 평한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9·11 테러 이후 우리의 시선은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진짜 세계를 보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사기극/ 티에리 메이상 지음/ 류상욱 옮김/ 시와사회 펴냄/ 286쪽/ 1만3000원

    빈 라덴, 금지된 진실/ 장 샤를르 브리자르, 기욤 다스키에 지음/ 장문철, 박언주 옮김/ 208쪽/ 7800원

    부시의 음모/ 이타가키 에이켄 지음/ 김순호 옮김/ 당대 펴냄/ 191쪽/ 7000원

    9·11의 영웅들/ 리처드 피치오토 지음/ 최필원 옮김/ 인북스 펴냄/

    이슬람 문명/ 정수일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 404쪽/ 1만8000원

    문명의 대화/ 세예드 모하마드 하타미 지음/ 이희수 옮김/ 지식여행 펴냄/ 264쪽/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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