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0

2002.09.05

생계 위해 ‘스트립쇼’… 초라한 그대 이름은 ‘남자’

  •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mjlee@donga.com

    입력2004-10-08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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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계 위해 ‘스트립쇼’… 초라한 그대 이름은 ‘남자’
    최근 한국과 미국 간에 철강 분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 무역 마찰의 본질을 단순화하면, 넘쳐나는 자국 물건을 어떻게 남의 나라에 팔 것이냐를 둘러싼 문제로 볼 수 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국을 예외로 한다면 세계 경제는 넘쳐나는 상품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령 제조업의 대표적 분야인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기업들은 이제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창고에 가득한 재고품을 털어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공급과잉의 원인은 무엇보다 꾸준히 늘어난 제조업의 생산능력 향상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나라들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수출지향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생산량을 빠르게 늘렸다. 과거엔 식민지 등 ‘신시장’을 개척해 늘어난 생산량을 흡수했으나 요즘은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마저 성장이 정체돼 있다.

    넘쳐나는 물건이 축복이 아니라 애물이 되고 있는 시대. 이 ‘풍요의 역설’은 불과 150년 전 산업혁명 초창기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스 원작)를 보면 당시의 궁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고아원에 들어간 소년 올리버에게 고생길의 발단이 된 것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청한 멀건 수프 한 그릇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7년을 감방에서 살아야 했던 장발장도 이런 ‘빈곤시대’의 표본이다.



    반면 1950∼70년대는 그런 빈곤에서 벗어난 성장기여서 활력이 넘쳤던 시기다. 기업들은 열심히 공장을 짓고 인력을 채용해서 물건을 찍어내고 소비자들은 이를 소비했다. 자본주의의 성장 그래프는 이때 수직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런 성장기의 활기를 쉽게 느낄 수 없다. 세계 경제가 확장이 아닌, 줄이고 자르는 ‘구조조정’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구조조정의 시대에 직장인들, 남성들의 초상화는 변모할 수밖에 없다.

    지난 98년 국내 개봉된 ‘풀 몬티’(The Full Monty)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 셰필드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한 데다 코믹한 분위기로 포장을 했지만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이 시대 남성의 눈물겨운 처지를 잘 보여준다.

    철강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근로자들의 삶을 다룬 이 영화에서, 실직 노동자 6명은 생계를 위해 여성클럽에서 스트립 쇼를 벌인다. 생계를 위해 옷을 벗어야 하는 남성들. 구조조정 시대의 직장인, 고개 숙인 남성상을 대변해 준다. 자본주의의 확장·팽창기에는 존 웨인 류의 영웅적 남성상이 스크린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초라한 남성, 나약한 남성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 ‘왓 위민 원트’의 주인공도 그렇다. 잘 나가는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담당 닉(멜 깁슨)은 자기가 승진할 걸로 알았던 자리에 광고업계 악녀로 이름난 다르시가 스카우트되어 온 데 경악한다. 그러나 여성용품을 직접 사용해 보다 감전 사고를 겪은 닉은 여자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결국 그는 직장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사랑도 얻는다. ‘근육질’ 대신 약삭빠른 눈치가 구조조정 시대를 사는 남자의 성공 비결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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