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2002.08.29

항암효과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풍부한 맥아·탄수화물·비타민 등 영양 공급원… 요로결석·통풍 부르는 부작용도 있어

  • < 이지은/ 세란병원 내과 전문의 >

    입력2004-10-04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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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암효과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 맥주는 물과 같은 존재다. 오죽하면 ‘맥주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마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독일인의 이런 광적인 맥주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름이 되면 이런 속담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호프 브로이 같은 대형 맥주광장은 아니라 해도 해만 지면 삼삼오오 호프집으로 찾아들거나 동네 슈퍼마켓의 파라솔 아래에서 땅콩 몇 줌과 맥주 캔 하나로 행복감에 젖은 이웃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여름만 되면 맥주의 수요량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기온이 1°C씩 올라갈수록 맥주 판매량은 20% 올라간다. 맥주가 바빌로니아 병사들에게 체력을 키우는 보양식이었다는 전설도 이러한 통계치를 끌어올리는 부채질이다.

    회사원 김태현씨(46)는 여름만 되면 이런 부채질에 스스럼없이 동참하는 맥주 예찬론자. 일주일에 너덧 번은 회사 앞 생맥줏집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본다면 김씨는 어지간한 주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김씨가 마시는 맥주량은 하루 평균 500cc. 친구들에게 ‘뭐 하러 술을 마시느냐’고 퉁바리를 맞으면서도 꼭 이 선을 유지한다. 김씨에게 맥주는 생에 활력을 주는 ‘보약’으로, 과하면 오히려 독약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

    100cc 맥주는 약 40kcal 열량

    항암효과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맥주에 대한 김씨의 신념(?)은 표창감이다. 우선 맥주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일례로 독일에서는 거의 매년 맥주와 건강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열리는데, 이 행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맥주의 건강 정보는 어마어마하다. 급기야 97년 세미나에서는 뮌헨대학의 안톤 피엔들 교수가 건강에 유익한 맥주의 성분물질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 맥주의 건강학을 종합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르면 맥주에 함유된 여러 가지 건강 성분들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일단 맥주는 호프가 함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위를 차지할 만한 음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프는 진정효과를 가지며 수면에 도움을 준다. 또 맥주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미네랄, 미량의 필수원소 및 인체에 중요한 유기산류와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 공급원으로도 그만이다. 더군다나 맥주가 가진 단백질에는 생체구성에 쓰이는 필수아미노산류가 많아 ‘고급영양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1000cc의 맥주에는 하루에 필요한 마그네슘의 50%, 인의 40%, 칼륨의 20%는 물론 비타민 B6의 35%와 비타민 B2의 20%, 니아신(Niacin)의 65%가 들어 있다.



    맥주가 이렇게 영양덩어리로 칭송받을 수 있는 까닭은 맥주의 주원료가 되는 맥아 때문. 맥아는 이러한 각종 영양소뿐 아니라 항암 작용을 하는 사실로도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맥주의 항암 작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맥아로부터 유래한 맥주 내 석탄산계통 물질은 암 발생을 촉진하는 프리 라디칼(활성산소)을 잡아줘 항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오카야마대 연구팀은 맥주 중에서도 흑맥주가 발암물질 억제효과가 가장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항암효과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풍부한 맥아의 영양 성분들은 맥주에 ‘살찌는 술’ 이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그러나 100cc의 맥주는 약 40kcal의 열량을 가지며 이는 같은 양의 사과 주스나 콜라보다도 낮다. 살찌는 것이 두려워 맥주를 피하는 이들은 맥주가 아닌 안주접시를 밀어놓고 볼 일이다. 이 밖에도 맥주가 백내장 및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거나 여성들의 폐경 시기를 약 2년 늦추어 준다는 등 맥주의 장점에 대한 연구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장일단(一長一短)의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요로결석이 그 결정체다. 지금까지 맥주는 작은 요로결석을 자연스레 배출시키는 특효약쯤으로 대우받았다. 땀을 많이 흘려 생기는 수분부족이 결석 생성의 원인이니, 마시기 어려운 물 대신 맥주를 마셔주면 자연스레 결석이 배출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의사들 역시 맥주의 이런 효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 국립 신장 및 배뇨질환 센터는 호프 속에 결석 생성 요소의 70~80%를 차지하는 옥살레이트가 다량 함유돼 있다고 발표해, 맥주가 결석 예방에 좋다는 속설을 완전히 뒤엎었다.

    항암효과 맥주도 때로는 독이 된다
    지방간의 위험도 만만치 않다. 모든 알코올은 소량일지라도 계속 마실 경우에는 간에 치명적이다. 맥주 역시 비만인 사람이나 여성이 매일 1000cc를 한 달간 마시면 지방간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산고’(産苦)보다 심한 통증을 부르는 통풍에도 맥주는 좋지 않다. 통풍은 혈액 속의 요산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결정(結晶)이 되어 생기는 질환. 이 결정은 뼈를 침식·파괴시키고 만성신염과 신부전증을 일으키는 원흉이 된다. 이 결정을 만드는 데 한몫하는 것이 바로 맥주 속에 든 퓨린 성분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이 있다고 맥주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잃는 것. 김씨처럼 자신만의 음주 철학을 정립해 맥주의 혜택을 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간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의 양은 몸무게 65~70kg인 남자 성인 기준으로 약 80g. 맥주 2000cc 정도에 해당한다. 이에 기준해서 음주달력을 만들어 마신 맥주량을 일일이 기재한다든지, 맥주 공급 권리를 아내에게 위임해 과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체질에 따라, 혹은 질환의 유무에 따라 이런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도록 한다.

    만약 이런 계획 없이 한치 혀의 이끌림에 자신의 건강을 내맡길 생각이라면 차라리 술을 끊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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