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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가수 띄우기 1억~2억은 기본”

기획사-방송가 음반홍보 ‘검은돈’ 공생… 일부 케이블 방송 협찬비 받고 영수증 발행도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신인가수 띄우기 1억~2억은 기본”

“신인가수 띄우기 1억~2억은 기본”
K씨는 외모와 춤솜씨 등 ‘비주얼’이 뛰어난 데다 가창력까지 갖추고 있어 가수로 대성할 자질이 충분했다. 그런 K씨도 스타로 뜨기까지는 고단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녹음 작업이 끝나자마자 기획사 관계자와 음악 프로그램 PD를 찾아가 ‘인사’를 했고, 친분을 돈독히 하기 위한 술접대도 이어졌다. K씨가 ‘돈 가방’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로비 총력전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빠르게 몸집을 키워나갔고, 그 과정에서 스타가 된 연예인들의 상당수가 K씨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연예기획사와 연예인들이 로비에 쓰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연예인 매니저에 따르면 신인가수에 대한 기획사의 PR비는 1억~2억원 가량. 절반 정도가 TV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로비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라디오 방송과 스포츠지 담당자들에 대한 로비에 이용된다. 매주 30~40장, 연간 1500~1700여장의 음반이 쏟아지는 음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예기획사들이 음반 홍보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는 방송관계자들을 ‘검은 돈’을 동원해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전 MBC PD 황모씨(43)는 지난해 신인가수의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가요프로그램 ‘음악캠프’에 출연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67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방송에 출연시켜 주는 대가로 항공료와 호텔비 명목의 1700여만원을 받고 그 뒤 5000만원을 추가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황씨의 경우처럼 연예기획사의 로비 리스트에 오른 PD들은 현금 뿐만 아니라 항공권 숙박권, 룸살롱 접대, 골프채 등을 받아왔다. 잠적중인 MBC PD 은모씨는 연예기획사로부터 수천만원대 현금과 외제승용차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로 이탈리아 밀라노를 왕복할 수 있는 항공권 3장과 호텔 숙박권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방송사 PD와 스포츠연예지 기자는 10여명에 이른다.

“신인가수 띄우기 1억~2억은 기본”
신인가수를 띄우려는 연예기획사가 총력을 다해 로비에 나서는 대상은 각 방송사들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이다. 방송 가요순위가 바로 음반판매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연예기획사들은 자사 소속 가수들의 순위프로그램 출연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인기그룹 ‘코요태’의 매니저 권모씨로부터 2000만원 등 모두 5200여만원을 받고 황금시간에 뮤직비디오를 틀어준 혐의로 구속된 전 MBC PD 김모씨(43)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PD들 중 김씨처럼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맡았던 PD들이 많은 것은 방송 가요순위가 연예기획사의 존립과 관계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 케이블 방송은 아예 내놓고 홍보비 명목의 돈을 받아왔다. M.net, KMTV 등 케이블 음악전문채널은 뮤직비디오를 방송해 주는 대가로 협찬비를 접수해 영수증까지 발행하고 있다. 프로그램 협찬이란 뮤직비디오를 편집 없이 전체 분량을 방송하는 것을 뜻하며, 40초 가량의 뮤직비디오는 별도로 계산된다. 연예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프로그램 협찬비 1500만원을 내면 90회 정도 뮤직비디오가 방송되고 40초짜리는 50회에 50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귀띔했다. 대형 기획사에서 방영권의 대부분을 구입하기 때문에 소규모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는 방송에 자주 나오기가 힘들다.

이처럼 PR비를 전방위로 뿌리며 자사 출신 가수들로 방송프로그램을 독식해 온 연예기획사들은 자사의 대표가수를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겠다며 PD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한 셈이다. 인기가수와 ‘패키지’로 신인가수들을 가요순위 프로그램, 오락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음반을 홍보하면서 스타를 재생산하는 것. 모 기획사는 1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방송해 주지 않으면 특정 연예인을 출연시킬 수 없다고 PD들을 ‘협박’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인가수 띄우기 1억~2억은 기본”
한편 일부 연예기획사는 코스닥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방송사 PD와 기업인 정치인에게 자사 주식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송가에선 특정 회사의 주식구경을 못했다면 바보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 대주주가 임직원 명의로 주식을 관리, 주식을 무상 혹은 싼값에 제공하면서 로비에 나섰다는 것이다. 주식의 경우 단순히 금품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주가가 오르면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2000년 4월 코스닥에 등록된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은 같은 해 6월 초 7만원대(액면가 50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코스닥 등록 및 주가관리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드러날 경우엔 사건이 ‘XXX 게이트’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현재 연예기획사의 주주들을 상대로 주식보유 여부와 차명보유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특히 이수만씨가 대주주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초기 주주 명부에 등재돼 있는 42명의 주주 중 가·차명으로 주식을 보유한 정관계 인사가 있는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주주는 방송작가 P씨, 전직 PD K씨, 방송유관단체 관계자 J씨(부인 명의로 보유), 중견 코미디언 L씨, 인기MC K씨, 모 기업체 회장 I씨 등이다.

이와 같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비리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벗으라면 벗고 까라면 까는’ 연예인 지망생이 넘치고, 연예산업에서 연예기획사와 방송의 독점적 지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근절되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검찰이 칼을 전방위로 뽑아들고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과거에도 여러 번 연예가 비리에 대한 수사가 있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복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불법적인 기획사들이 전근대적인 전속계약제로 연예인의 발목을 묶고 방송 관계자들과 유착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문화소비자들이 철저히 감시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원용진 교수는 “음악 소비자 운동을 통해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기획사들의 공정하지 못한 압력행사를 감시할 것”이라며 “방송사의 가수 캐스팅과 언론의 특정 기획사에 대한 편향적인 홍보성 보도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345호 (p40~41)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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