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2002.05.16

IT진출로 '제2의 베트남 전쟁' 시작

한국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상륙…국내 연예인 인기 절정 ·정보통신 분야 '韓流예고'

  • < 호치민=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09-30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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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진출로 '제2의 베트남 전쟁' 시작
    CDMA 휴대폰과 초고속 인터넷. ‘IT(정보통신) 한국’의 두 상징물이 베트남을 노크했다. 30년 전 주월 한국 군대가 철수한 사이공강 가 그 자리엔 한국 IT 기업들의 대형 광고물이 세워지고 있다. 인구 8000만 베트남의 열대 도시들은 테헤란밸리 문화의 세계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흥미진진한 시험대다.

    요즘 베트남 무선휴대폰 시장에서는 전운이 감돈다. GSM 방식의 노키아는 이 나라 100만명 규모의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런데 SK, LG 등 한국 기업의 연합군인 SLD텔레콤사가 CDMA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무선휴대폰으로 강력한 도전장을 던졌다. SLD는 베트남 전역에 기지국을 새로 세우는 등 인프라를 구축해 향후 수익을 베트남 정부와 일정 부분 나눠 갖게 된다. 이와 연동해 삼성 등이 CDMA 휴대폰 단말기를 시판할 계획이다.

    CDMA 휴대폰, 노키아에 도전장

    예정대로라면 2002년 10월 베트남 각 도시에서는 한국 휴대폰이 상품진열대에 오르게 된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CDMA가 외국에서 진정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SLD사 관계자는 “이것은 우리에겐 제2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말했다. 노키아라는 공룡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력투구가 불가피하다는 것. SLD는 이미 수백억원의 현금을 투자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떤선녀ㅅ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여행객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삼성의 컬러휴대폰 광고 시설물이다. 호치민 시내 곳곳에서는 삼성 휴대폰 대리점들이 새로 간판을 내걸고 있다. 삼성의 물량공세도 대단한 규모다. 시내를 걷다 보면 금세 눈으로 확인된다. 지난 3월 이한동 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한 것도 베트남 각료들과의 만남을 통해 SDL을 지원해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IT진출로 '제2의 베트남 전쟁' 시작
    SLD에 따르면 CDMA 휴대폰은 통화품질, 부가 서비스에서 노키아를 능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단말기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점은 이 가난한 나라의 구매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0195(베트남 CDMA 휴대폰에 부여될 맨 앞 번호)는 베트남 사회에서 최고급, 부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도 나온다. 아직 사업적 성공을 100%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베트남 정부와 맺은 투자조건이 썩 유리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시장 포화상태를 맞은 휴대폰 산업으로서는 세계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베트남이 뚫리면 그 다음은 캄보디아와 미얀마 차례다. 정보통신부 정진규 이동통신지원팀장은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폈다. 그는 “한국 업체의 진출로 베트남에서 휴대폰 붐이 일어날 것이다. 휴대폰 시장이 800만명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주로 인터넷 PC방, 외국 기업의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지만 그 속도는 90년대 중반 한국의 PC통신 수준이다. 베트남 공산당 당국은 개인과 기업이 인터넷에서 어떠한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감시한다. 이메일도 통제 대상이다. 포르노사이트에 들어간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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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적 단계의 베트남 인터넷사업에서 획을 긋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KT가 지난해 12월 150대의 단말기를 들여와 베트남 하이퐁성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ADSL) 시범사업을 개시한 것이다. 베트남 관리와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한 결과, 베트남 현지에서는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에 관한 한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한다. 베트남 정부도 정보통신 산업을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정했다. KT 서정수 글로벌사업단장은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베트남 전 지역에 한국식 초고속 인터넷망을 개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로통신도 최근 베트남에 진출했다. 노수욱씨는 최근 호치민시에서 베트남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PC방(PC 100대)을 열었다. 이곳을 찾은 고객 윈딘꾸씨는 “머지않아 베트남에도 초고속 인터넷 열기가 불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라인으로 송금하면 하루 뒤 돈이 도착한다. 금융결제시스템의 전산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정보통신은 베트남 중앙은행의 전산화 사업을 맡았다. 베트남 당국은 한국 증권거래소에 베트남 증권거래시스템의 구축을 요청했다.

    한국식 인터넷 하드웨어가 세계 표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베트남에서 자신감이 확인되고 있다. 인터넷 하드웨어의 진출은 한국식 소프트웨어의 진출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무선휴대폰 사업,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사업은 대기업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에 부가되는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공, 솔루션 서비스는 중소 벤처기업들 몫이다. 서울의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술 수준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정부측과 협력이 잘 되면 베트남은 테헤란밸리 중소기업들의 또 다른 활동무대가 될 것이다.”(권영국 수출입은행 호치민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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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정부가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삼아 호치민시 인근에 설립한 꽝쭝소프트웨어시티. 베트남 IT 산업의 요람인 이곳에서 한국 벤처기업 로스코는 김지사장의 지론을 실천해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온 직원들은 호치민시에 3층 주택 한 채를 임대해 지내고 있다. 최근엔 베트남 근로자 평균 보수의 세 배를 주겠다는 광고를 내 현지인 네 명을 공개 모집했다. 이들 중 한 명인 밍씨(25)는 “외국 기업 중에서도 한국 IT 기업은 보수가 좋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어 베트남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로스코가 베트남에 갖고 들어온 것은 무선인터넷 장비다. 인터넷 불모지인 베트남에서는 유선 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인터넷의 주류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로스코는 건물로 들어오는 유선인터넷망을 무선으로 바꿔 사무실이나 가정 내에서 선 없이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사내통신이 가능한 서비스를 구축해 주고 있다. SLD, 이랜드 등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이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등 현지에서 호평을 듣고 있다.

    ‘우리가 붐을 일으켜 베트남 인터넷을 초고속 무선 환경으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 로스코의 계획이다. 이 회사 구본재 대표이사는 “향후 KT 등 한국 대기업이 베트남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을 확산시켜 이곳의 인터넷 이용자가 늘면 우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코 김성주 이사는 요즘 한국 벤처기업을 위한 특별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그는 밀림을 헤매는 것과도 같던 실패 과정을 통해 터득한 베트남 진출 노하우를 정리해 인터넷에 공개할 계획이다.

    오랜 전쟁 결과 베트남은 20~30대 인구층이 두껍다. 그들의 교육열, 소비 욕구는 한국 못지않게 뜨겁다. 장동건, 김남주, 클론, 삼성비나(삼성전자의 현지법인)의 TV에 열광하는 이들 신세대 베트남인들은 한국의 지식정보 산업,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보통신은 한국과 베트남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주는 고리가 될 수 있을까. KT 서정수 단장은 “베트남은 ADSL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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