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2

2002.02.14

“우리 동네는 여당, 저쪽 동네는 야당”

후끈 달아오른 기초단체 3곳 현장 르포 … ‘너 죽고 나 살자 式’ 지역·계층간 분열 양상 심각

  • < 창원=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 성남·전주=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1-12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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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는 여당, 저쪽 동네는 야당”
    민선 3기 시장, 군수, 구청장이 되려는 전국 232개 지역 1000여명 야심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지지자를 더 늘리기 위해 이들은 이미 사활을 건 투쟁을 시작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대통령 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 비해 정치적 비중은 낮을지 모르나 사실 지방자치의 ‘뿌리’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지닌다.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사람을 공정한 방식으로 잘 뽑아야 할 필요성은 어느 선거 못지않다.

    올해 선거에선 대략 다섯 가지 ‘기초단체장 선거 감상법’이 제시되고 있다.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단체장 싹쓸이 재연 여부 △소지역주의 갈등 △정당공천제로 파생되는 문제 △불법·탈법 선거운동의 형태 △국민경선제 등 선거개혁의 성공 여부가 그것이다.

    이미 흑색선전, 금품거래, 불법홍보 등 불법·탈법 양상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01년 한 해 동안 606건의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이 이뤄졌다. 올 들어 적발한 사례도 150여건에 이른다. ‘공정 경선으로 한나라당 구청장 후보를 뽑겠다’는 대구 중구에선 국회의원이 돈을 받고 특정 후보를 민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해당 국회의원은 억울하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전남에선 시장후보가 경선투표권을 가진 당원들의 선심을 얻기 위해 당비를 대신 내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주간동아’는 기초단체장 선거 감상법에 딱 맞아떨어지는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의 대표적 현장 세 곳을 선정해 집중 조명했다. 경기 성남시, 전북 전주시, 경남 창원시 세 곳의 사례는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 동네는 여당, 저쪽 동네는 야당”
    성남시민모임 한 관계자는 성남시장 선거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거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지역감정, 여권 실세 연루 특혜의혹 사건, 선심행정 논란, 불법선거운동 논란, 야당분열 문제 등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규모 면에서 기초단체 중 전국 최상위권에 속하는 성남시는 시민들의 정치성향이 ‘거주지’에 따라 뚜렷이 갈린다. 성남의 구시가지(인구 50만) 격인 수정구와 중원구는 역대 선거(97 대선,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을 거의 ‘더블 스코어’ 차로 앞섰다. 반대로 분당구(인구 43만)에선 두 당의 지지율이 같은 비율로 역전됐다. 실제로 구시가지는 서울 강북 서민층`-호남 출신, 분당은 서울 강남 중상류층`-영남 출신 주민이 많이 거주한다는 게 이 도시 정치인들의 대체적 견해다.

    이러한 이분법적 분열구도는 현재까지 치유 조짐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도시 여론 주도층 사이에선 적대감 확산, 분열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말 정국을 들끓게 했던 분당 백궁·정자 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 사건이다.

    성남시민모임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성남시가 여론 조작행위를 하는 등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의혹이 있다면서 김병량 성남시장(민주당)을 검찰에 고발했다. 분당지역 대다수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도 용도변경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시장이 상업지역에 고밀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분당 주민들의 재산권·생활권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권 실세 연루의혹까지 제기되자 분당의 여론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에 대해 김시장은 “여론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그는 지난해 말 자신을 고발한 시민단체 간부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성남시장 소환을 위한 시민운동본부’를 결성, 김시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러한 극단적 대립상황은 기초단체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사회통합적 행정기능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김시장의 행보가 부드러워졌다는 평도 있다. 그는 백궁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의 월급 압류를 중지하게 했다. 일화축구단 이전 논란과 관련해선 “축구 문제로 우려를 낳게 해 죄송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부드러운 행정’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최근 성남 구시가지 일대 고도제한규정 완화 조치가 발표됐다. 단번에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이 최고 50%까지 상승했다. 선거를 앞둔 선심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범시민대책위’는 “고도제한 완화를 정치권이 악용하지 말라”는 호소문을 내놓기도 했다. 성남 선관위는 김시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모 잡지가 동사무소 등 성남지역 관공서에 다량 비치된 경위(불법홍보 여부)를 조사중이다.

    현재까지는 민주당 시장후보로는 김병량 현 시장이 단독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사람이 넘쳐 고민이다. 전직 시장, 전직 국회의원 등 8명이 공천을 받기 위해 뛰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인 장영하 변호사의 이색 주장은 성남의 현실을 대변해 준다. “나는 호남 출신이다. 구시가지에서 서민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무료 법률상담을 해왔다. 그런 내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다면 성남시의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나라당 고홍길 의원측은 야권 분열에 대한 우려가 크다. “민주당과 1대 1 대결구도가 되면 한나라당이 유리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후보 중 경선에 불복해 누군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김시장이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대선에 나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고민을 보는 듯하다.

    “우리 동네는 여당, 저쪽 동네는 야당”
    전북도청 소재지 전주의 시장선거는 김완주 현 시장과 이창승 전 시장의 2파전 구도. 그런데 이 전 시장은 민주당 정동영 고문에 대한 실망감을 거리낌없이 표출하고 있다. 전주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정고문에게 전국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겨준 도시. 이곳의 유력 시장후보가 ‘대권주자’로 부상 중인 정의원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정의원은 같은 전주 지역구 장영달 의원과 함께 지난 1월28일 “전주시장 후보는 자유경선 방식으로 선출하되 선거인단은 당원과 시민으로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까지 입당한 당원 중 1000명이 직접 투표한 결과와, 전문 여론조사기관이 전주시민 1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를 대등하게 100%씩 합산해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식이다. 단, ‘선 추첨 후 입당’ 방식으로 선거법이 개정될 경우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도 직접 투표를 하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런 발표가 나오자 이 전 시장은 “선거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럴 경우 여론조사로 시장을 선출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다시피, 여론조사는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방식”이라며 반박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일반시민 참여에 대해 ‘선 입당 후 추첨’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데 전주시장 경선에선 왜 이를 도입하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이 전 시장은 “현직 시장을 공천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씨는 경선 불참을 선언해 전주시장 후보 경선은 현 시장의 단독추대 형식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은 “다수의 일반 국민을 입당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TV 토론 등으로 후보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데 이 전 시장이 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고문은 민주당 쇄신그룹의 리더로 정당 민주화와 선거개혁에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로 인해 그가 직접 주도한 전주시장 자유경선제는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선은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경선의 불공정성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우리 동네는 여당, 저쪽 동네는 야당”
    경남 창원시 용호동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는 K씨(44). 그는 지난 1월20일경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지금까지 기분이 찜찜하다.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는 한 20대 여성이 전화를 걸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창원시장으로) 지지할 것인가” 를 물었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하자 “쭛쭛쭛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계속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 것. K씨가 더욱 화난 것은 지역에서 신망받고 있는 특정 후보에 대해 “과거 공직생활 동안 무슨 무슨 일로 감찰을 받았다”는 등 인신공격성 얘기를 덧붙였고, 반대로 전화를 건 사람이 거론한 쭛쭛쭛 후보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경남도청 소재지 창원에선 자천 타천 거론되는 시장후보가 20여명에 이른다. 공민배 현 시장이 경남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너도나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

    그러나 “후보군 중 상당수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출마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인사는 설명한다. 후보군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다른 쪽에서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거품’이라는 것.

    출마를 노리는 후보들은 지역정서상 대부분 한나라당 공천을 원한다. 김종하 의원(국회부의장)과 이주영 의원 등 한나라당 두 현역 의원의 서울 국회사무실과 지구당 사무실은 공천 희망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공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방도 들린다. 두 의원은 찾아오는 출마 후보들이 부담스러운 듯 ‘덕담’으로 일관하지만 경선이라는 원칙 외에 정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치열한 공천경쟁은 벌써 경선 불복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물론 출마 후보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탈법·불법 선거로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혈연·학연에 기초한 연고주의가 지역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도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한 사람 건너면 얼굴을 알 정도이기 때문. ‘우리가 남이가’, ‘어느 군, 어느 면 출신이냐’는 소지역 패권주의에 기대는 분위기는 창원시내 곳곳에서 감지된다. 갑작스럽게 많아진 초·중·고 동창회, 동기회 및 특정 지역 향우회에 출마 예상자들은 비빌 틈만 있으면 헤집고 들어간다. 지난 1월31일 창원호텔 인근의 한 고기집에는 창원 인근의 한 고교 반창회가 열렸고 이 모임을 주최한 인사는 창원시장 출마를 노리는 인사였다. 이런 분위기는 창원시장 선거를 토박이 대 외지인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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