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2002.01.10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

  • 입력2004-11-03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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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
    1. 뉴라운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농산물 시장 개방입니다. 쌀 시장과 관련해서 지금까지의 정책기조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증산정책이 생산성 향상보다 식부면적의 확대를 가져와서 쌀값 폭락을 가져왔기 때문에 개방이 아니더라도 전면 수정이 이뤄져야 할 시점입니다.

    개방의 정도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예컨대 미국이 철강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려는 것은 미 국내 정치의 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최대한으로 막아낸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필요한 내부 개혁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쌀의 증산정책은 포기돼야 합니다. 농산물의 경우 국산이 압도적으로 선호된다는 점을 더욱 살려 내기 위해 철저하게 품질 위주의 농산물이 생산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땅의 크기라든가 비옥도 면에서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할 수 없는 농지의 경우 유기농이라든가 자연농법에 의해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생산량은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죠. 현재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직불제도 이런 유기농 또는 자연농화와 연관해서 적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곳은 휴경보상제에 의해서 생산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단 우리가 농지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군대를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량안보와 환경보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 즉 공공재를 생산하는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선 농민들에게 이렇게 정책기조가 바뀐다는 점을 명확히 알리고 나머지 국민에게는 농업의 유지가 나머지 국민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점을 역설해서 소득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2. 재벌개혁 중에서 소위 출자총액제한제를 부활했다가 다시 완화하는 것은 개혁의 후퇴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재벌이 상호출자로서 얽혀서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고, 비합리적인 지배구조의 개선을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부분을 열어버리면 개혁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보지급보증을 해소해서 어느 한 기업의 부실이 전체의 부실로 번지는 것을 막자는 독립경영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 그 부분을 풀어준다고 별 투자의 효과도 생기지도 않습니다.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지배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봐도 건전한 금융질서를 해칠 수 있습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확대해서 기업경영을 견제하도록 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입니다. 사외이사제도도 마찬가지죠. 다만 이런 제도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겠습니다.

    3. 금융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재벌들은 여전히 문어발식 투자를 하고 있으며 출자액의 40%를 손실을 보는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또 다시 재벌의 문어발식 과잉투자로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소유지분을 확대하는 건 아주 위험합니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는 어떠한 자본주의라도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재벌이 은행을 지배하게 되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이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벌 총수가 계열 은행에 돈을 빌려 주라고 지시하는데 그걸 거부할 은행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재경부는 금융감독을 강화하면 그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금융감독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들의 부실 징후를 발견한 게 불과, 일 터지기 석달 전입니다. 아이를 호랑이 우리에 넣어 놓고 잘 감시하면 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위헌이라는 비판도 말이 안됩니다. 헌법은 정부가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는 곧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나는 우리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겁니다.

    만일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제한하는 것이 위헌이라면 미국의 반독점법은 모두 위헌이 될 겁니다.

    4. 민영화 얘기가 나오는 건 기본적으로 공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영화는 시장경쟁을 도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쟁에 의해서 효율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거죠. 그렇지만 민영화, 즉 소유구조를 바꾸는 것 외에도 효율화 방법은 많이 있고, 또 공공재, 예컨대 네트워크 산업(철도,가스,전기)을 민영화할 때는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철도민영화는 반대하지만 한국중공업, 포철 민영화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철도는 여러 면에서 공공성이 강한 사업입니다. 민영화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산골까지 운행되는 기차를 생각해 봅시다. 수도권 지방과 비교해 볼 때 당연히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민영 철도회사라면 산골로 가는 노선을 폐지할 수 있겠죠.

    또 철도산업이 독점된다면 마음대로 운임을 올릴 수도 있겠죠. 실제로 영국에서 브리티쉬 레일을 민영화했지만 근 20년 만에 결국 파산해서 다시 국유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네트워크산업에 모두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민영화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과잉능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낭비니까요. 그렇지만 공공재라면 여유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투기는 실전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지만 비싼 돈을 들여서 사들여야 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거죠. 미국에서도 가장 잘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전력 파동이 난 것은 민영화가 가지는 이런 문제점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민영화로 인해서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는 민영화에 대해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철도는 민영화가 아니라 경영혁신이 더 필요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고 전문 인력만 배치해도 바로 경영 성과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도 경영진과 노동자들이 머리를 맞대서 좋은 경영혁신방안을 가지고 온다면 정부가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외자유치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인력 네트워크, 정보 네트워크를 잘 발달시켜서 고급 기술을 가진 자본이 머물러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외자유치를 두려워말아야 할 것입니다.

    5.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감소분인 1조5천억원의 대부분이 대기업들의 세금감소분이어서 결국 한나라당의 법인세율 인하는 ‘대기업 세금깍아주기‘에 불과합니다. 또한 줄어든 만큼 개인소득세를 높이거나 다른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중산층과 서민의 세부담 증가를 초래하게 됩니다.

    한나라당의 법인세율 인하 강행처리는 한나라당이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저는 법인세 인하에 반대합니다.

    6. 노동의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의 하나입니다. 문제는 ‘일감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 증대도 병행해야 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노동의 유연화에 의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는 정리해고 등을 통해 탈락한 사람들을 ‘사회적 안전망‘으로 구제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경제의 흐름에 대한 ‘예측과 교육‘을 통해서 항상적 ‘노동 이동‘으로 탈락자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스웨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우리가 더 과학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기업이나 노동자 양쪽 모두 호황기에 노동자가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부는 ‘이동의 적기‘를 정확히 예측해서 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갈등조정과 타협을 이끌어내는 협약체로서 여전히 유효하고 그 역할이 더욱 증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사정위원회의 운영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노사정위원회를 주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갈등의 조정에 미숙하다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도 그렇고 의약분업 문제도 그렇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갈등의 적극적인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이 쌓이면 사회 각 부분이 부드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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