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4

2001.10.04

유럽 “불평등 세계화는 이제 그만”

제3세계 발전에 사용 ‘토빈稅’ 공식 논의 … 미국과 다른 ‘인간적 모델’ 찾기 시도

  • < 민유기 / 파리 통신원 > YKMIN@aol.com

    입력2004-12-28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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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불평등 세계화는 이제 그만”
    자본주의의 탄생지 유럽은 과연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는 달리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반세계화 운동 진영이 꾸준히 요구해 온 토빈세 도입을 둘러싸고 유럽연합 차원의 공식적 논의가 시작되면서 미국식 세계화에 반대해 온 세계인의 관심이 유럽으로 모아지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논의되는 토빈세란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의 30여 년 전 이론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국제적 금융거래에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해 단기간의 자본 투자와 일시적 회수로 금융질서를 교란시켜 온 투기성 금융자본의 횡포를 막고, 걷은 세금을 세계화로 인해 더욱 고통받는 제3세계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1998년 파리에서 지식인들이 주도해 결성한 반세계화 단체 아탁(ATTAC)이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주장해 왔고, 지난 1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세계 시민단체들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한 제1회 세계 사회포럼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금껏 반세계화 진영의 구호에 머물러 있던 토빈세 문제는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 의해 올 가을 프랑스 정치권 및 유럽연합의 본격적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유럽 “불평등 세계화는 이제 그만”
    조스팽은 한국의 연두 기자회견과 같은 8월 말 TV 기자회견에서 토빈세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며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논의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95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사회당 후보로 대선공약에 토빈세를 포함시켰지만, 97년 하원 선거에서 좌파 승리 이후 지금껏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한번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이미 후보들간 실질적 선거운동이 시작된 시점에서 토빈세를 다시 들고나온 것은 이를 쟁점화함으로써 사회당 정부에 참여하면서 사안에 따라 좀더 급진적 정책을 요구해 온 녹색당이나 공산당, 그리고 꾸준히 세를 확대하는 극좌파 등을 대선 결선투표에서 사회당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프랑스 공산당과 녹색당은 그동안 토빈세 도입에 적극적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9월 초 시라크 대통령은 베를린을 방문한 자리에서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공동으로 세계화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토빈세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한 양국간 고위급 전문가 모임을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양국 총리는 두 나라가 공동으로 유럽연합의 차기 재무경제장관 회의 의제로 토빈세를 상정한다고 발표했다. 시라크 등 유럽의 우파 정치인까지 나서서 세계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데는 99년 12월 미국 시애틀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나 지난 7월 이탈리아 제노바 G8 회의 당시 폭력적 반세계화 시위가 재발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반세계화 진영이 요구하는 더 인간적인 세계화를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총리가 주재하는 프랑스 각료회의는 9월 중순 모든 금융거래에 0.05%의 세금을 부과해 제3세계 발전을 돕도록 하는 토빈세 관련 법률 계획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경부 장관 로랑 파비우스는 토빈세 자체는 좋은 생각이지만 그 규모가 지나치게 작을 때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많을 때는 금융거래를 위축시키며, 한 나라만 이를 실시할 때 국제 금융자본의 철수로 인한 경제침체가 일어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유럽의 주요 인사들도 토빈세에 회의적이거나 파비우스처럼 그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은행 총재 장 클로드 트리세, 독일 연방은행 총재 에른스트 벨테크 등은 토빈세가 이상주의적 아이디어일 뿐이라며 반대하고 있고, 독일 재무장관 한스 에이첼과 현 IMF 총재인 독일 출신 호르스트 쾰러 등은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화할 규칙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토빈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슈뢰더 이전 독일 사민당의 총재였고 독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라퐁텐은 오래 전부터 토빈세에 찬성의사를 표시했고 얼마 전 아탁에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벨기에 재무장관 디디에 레인더는 토빈세 효과에 반신반의하지만 이 문제를 사장시키지 말고 유럽 차원에서 깊이있게 논의해 토빈세 자체가 아니더라도 미국식 세계화의 맹점을 치유할 방안을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 “불평등 세계화는 이제 그만”
    영국에서는 지난 4월 147명의 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토빈세에 대한 개인 차원의 찬성 입장을 표명했으나 이후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영국 정부도 토빈세가 뉴욕에 이어 국제 금융계의 중심인 런던 금융가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토빈세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는 토빈은 9월 초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작 유럽에서 논의되는 토빈세는 자신의 주장을 잘못 파악한 결과이며 아탁을 비롯한 반세계화 운동단체들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였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의 영향을 받은 그는 70년대 자신이 주장한 국제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는 세계은행이 관리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화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지 제3세계 발전에 사용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럽에서 자신의 생각이 확대 발전해 논의되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지만 그 스스로는 자유무역의 신봉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에서 거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한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세계은행이나 IMF가 오히려 더 세력을 넓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그간 반세계화 진영에서만 제기한 토빈세 문제는 유럽 차원에서 눈앞에 다가온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되었다. 유럽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강요하는 세계화의 비인간적 모습에 반감을 나타내며 좀더 인간적인 새로운 세계화의 모델을 찾는 노력을 막 시작했다. 토빈세든 다른 어떤 방안이든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유럽의 사회적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환경, 인권, 사회적 그리고 지역적 불평등이 최소화된 발전모델이 세계화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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