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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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드 VS 파월 ‘워싱턴 빅 매치’

‘강경 대 온건’ 국방·외교 정책서 사사건건 대립… 최종 판정은 ‘부시의 몫’

  • < 이흥환/ 워싱턴 통신원 > hhlee0317@yahoo.co.kr

    입력2005-01-19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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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행정부에 입각한 장관들 가운데 출범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연 화제의 인물로 뽑히는 두 사람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다. 어느새 두 사람은 부시 행정부의 상징어가 되어 버린 ‘일방주의’ 논쟁의 양극단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미 언론도 언제부터인지 아무 스스럼 없이 럼스펠드 장관 이름 앞에 으레 ‘일방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파월 장관에게는 ‘온건한’ ‘협조적인’ ‘국제주의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준다.

    지난 8월 초 두 사람은 호주 캔버라의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파월 장관은 아시아 순방중 막 중국을 다녀온 길이었다. 파월 장관은 중국 방문 기간에 세 차례나 중국을 ‘친구’라고 불렀다. 중국을 ‘잠재적국’이라고 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럼스펠드 장관과는 아주 딴판이었기에 기자회견장에서 당연히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파월 장관이 중국을 부드럽게 대한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럼스펠드 장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콜린이 아직도 배우는 중인 몇 가지 사안만 빼놓고는 다 동의한다.” 회견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 어깨를 잡고 파안대소하면서 우의를 과시하긴 했지만, 럼스펠드의 이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

    럼스펠드가 누구인가? 한마디로 워싱턴 정치판의 ‘달인’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럼스펠드의 워싱턴 뒷방 정치기술을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뉴욕 타임스’ 8월5일자 일요판이 그를 평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먼저 의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4선 의원 출신이고, 포드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게다가 20년 동안 사기업을 이끈 풍부한 경험으로 비즈니스 관리에도 달통한 인물이고, 미사일확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무엇보다 국방장관을 두 번째 역임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선거공약 가운데 하나인 군 개혁의 지휘봉을 휘두르는 장본인이다.

    의회를 구슬러 국방예산을 잡아채 오는 법에서부터 방위산업체를 다루는 법, 언론을 대하는 법 등 워싱턴에서의 생존기술이라는 기술은 어느 것 하나 누구에게 뒤지는 법이 없다. 워싱턴의 생리에 그다지 낯설지 않고 합참의장 출신이긴 하지만, 정치판의 한복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파월 장관을 ‘아직도 배우는 사람’이라고 평할 만하다.

    워싱턴을 한손에 넣고 주무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럼스펠드와는 라이벌이었다. 그 키신저가 럼스펠드를 이렇게 평했다. “워싱턴의 특별난 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럼스펠드다. 풀타임 정치인이자 관료로서, 야망과 능력과 실속이 솔기 하나 없이 녹아 융합되어 있는 인물이다.”

    이 전설적인 럼스펠드가 취임 7개월 만에 가는 곳마다 벽에 부딪치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행정부 안에서는 물론이고 국방부에서조차 럼스펠드는 도전을 받는다. 과연 그의 타고난 관료로서의 생존술이 이 도전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워싱턴의 또 하나의 화제가 될 정도다.

    럼스펠드의 ‘일방통행’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사람이 바로 파월 장관이다. 럼스펠드의 계획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것도 파월이고, 럼스펠드보다 대중적인 기반이 튼튼한 사람도 파월이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미 국방과 외교 정책에서 드러난다. 때로는 드러나지 않게 부딪치고, 때로는 아예 드러내 놓고 맞서기도 한다. 미사일 방어에서도 두 사람은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파월은 미사일 방어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럼스펠드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보스니아 평화유지군의 규모 문제에서도, 럼스펠드는 감축을 주장하지만 파월은 평화군 감축에 반대한다. 시나이 반도의 미군도, 럼스펠드는 철수를 주장하지만 파월은 아니다. 파월은 또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의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럼스펠드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외친다. 중국을 ‘친구’로 봐야 하느냐, ‘잠재적국’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야말로 미국의 대 중국정책, 더 나아가 대 아시아 정책의 근본을 좌지우지하는 사안이다.

    두 사람은 모두 관료 신분이다. 행정부에서 누가 더 파워가 있느냐는 말할 것도 없이 직속 상관, 즉 대통령과의 친분이나 대통령의 신임 정도에 달려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체니 부통령과의 오랜 관계로 볼 때 럼스펠드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또 하나의 기준은 부시 행정부가 취하는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이다. 이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파월은 럼스펠드와의 힘 겨루기에서 밀린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다른 나라들과 서로 상의하며 다른 나라들을 감싸안는 방향으로 간다면, 즉 파월식의 전략이라면 파월이 우세하겠지만, 현재 부시 행정부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럼스펠드식, 곧 일방통행 전략이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은 시간이 갈수록 당략을 떠나 화합의 정치를 펴겠다는 취임 초기의 입장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공화당은 더욱 공화당끼리만 뭉치고,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결속을 다지고 있다. 파월과 럼스펠드로 대표되는 온건-포용 정책과 강경-일방 정책 중 부시 대통령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두 실세 장관이 아무리 힘 겨루기를 한다 해도 미 정치에서 최종 승부를 가려주는 것은 역시 대통령이다. 닉슨 1기 행정부 때 안보 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와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의 경우도 그랬다. 키신저는 외교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로저스와 맞섰다. 닉슨 대통령은 로저스 국무장관의 외교력이 못 미더웠고, 더구나 로저스 자신이 키신저와 맞설 투지가 별로 없었다. 닉슨의 동의하에 키신저는 로저스를 깔아뭉갰고, 로저스를 제쳐놓고 국무부 관료들과 뒷선을 대고 일했다. 닉슨과 키신저는 중요한 외교 현안 결정 때 아예 로저스 국무장관을 배제해 버렸다. 1972년 베트남 종전협상이나 닉슨의 중국 방문 결정과정에서 로저스의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결국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 말기에 국무장관이 되었고, 외교안보 정책의 전권을 휘둘렀다. 닉슨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테두리 안에서였음은 물론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군 개혁 작업이 도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럼스펠드식 독주가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토대인 것 또한 사실이다. 체니 부통령도 변화와 개혁의 어려움을 인정한다. 럼스펠드의 입장이 사면초가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체니 부통령은 럼스펠드를 “접시 몇 장을 깰 수는 있겠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은 하고 말 것이다”고 밀어준다.

    파월과 럼스펠드의 맞대결이 어떤 결말을 낼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관계,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 워싱턴 정치판의 생리, 과거의 사례 등을 기준으로 볼 때, 사면초가에 고립되어 있는 인물은 럼스펠드 장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파월 장관이 아니냐는 시각도 염두에 두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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