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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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고승호’ 마지막 주인 누가 될까

은괴 매장 여부·소유권 관심 증폭 … 해양법상으로는 한국 불리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5-01-19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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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선 ‘고승호’ 마지막 주인 누가 될까
    보물선’이 또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이번엔 서해 앞바다다. 지난 7월31일 관광이벤트사 골드쉽㈜은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남서쪽 2km 지점(해저 20m)에서 ‘청나라 보물선’ 고승(高昇)호로 추정되는 배에 대해 발굴작업을 벌여 뻘에 묻힌 선체 앞부분에서 은화 및 은괴 각 6점, 금ㆍ은수저 7점과 소총, 아편 파이프 등 각종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 ‘흥미진진한’ 뉴스는 즉각 언론을 탔다.

    고승호는 청ㆍ일전쟁 당시인 1894년 7월 서해상에서 일본 해군에 격침된 영국 국적의 보급선. 사료에 따르면 길이 72.6m, 무게 2134t인 고승호엔 침몰 당시 청나라 군인 936명이 탔고, 말발굽 형태의 은괴와 멕시코제 은화(당시 국제화폐) 등 모두 600t(시가 1100억 원)의 은이 실렸다고 전한다. 다량의 은이 실렸다는 부분은 1935년 2월24일자 동아일보의 고승호 관련기사에도 나와 있다.

    우연일까. 고승호 사례는 지난해 말 ‘보물선 인양’ 계획을 내놓은 동아건설의 주가를 한 달 만에 10배나 폭등케 한 ‘돈스코이’호를 빼다 박았다. 돈스코이호는 수십조 원대 금괴를 싣고 운항중 일본 해군의 공격으로 울릉도 근해에 침몰했다고 알려진 ‘러시아 보물선’. 지난 5월과 7월 고승호 관련보도 직후 골드쉽 지분을 40% 가진 코스닥등록업체 대아건설의 주가가 상한가를 친 점, 금괴가 은괴로 바뀌었을 뿐 발굴 기업이 침몰선박을 보물선으로 ‘확신’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은꼴이다. 공교롭게도 1883년 건조된 것도 똑같다.

    하지만 고승호엔 돈스코이호와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아직 침몰선박이 고승호란 확증은 없지만, 유물 일부가 실제 발견된 점. 때문에 향후 전개상황은 동아건설 파산으로 ‘해프닝’으로 끝난 돈스코이호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발굴된 일부 유물과 앞으로 발굴될 유물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한바탕 논란이 예견되기 때문. 논란의 향배는 크게 두 가지다.



    지난 1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하 인천해양청)에서 발굴승인을 얻은 골드쉽은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3차례 탐사작업을 벌였다. 이번에 발표한 유물은 3차 탐사의 결과물. 골드쉽은 그러나 이에 앞서 1ㆍ2차 탐사 때 발굴한 소총, 도자기 파편, 동전류 등 620여 점의 유물 중 상당수를 문화재로 인정받았다. 이는 인천해양청이 발굴승인을 내주기 전, 승인 후 발굴될 유물이 문화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문화재청에 의뢰키로 한 사전협의에 따른 것(조건부 승인). 문화재청은 7월26일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발굴유물을 고증, 고승호 침몰과 동시대의 것으로 ‘근대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했다. 예상되는 논란의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잠재해 있다. 만일 침몰선박이 고승호로 판명되면 유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

    문화재는 국유가 원칙. 그러나 발굴된 매장물이 문화재적 가치가 없을 경우 골드쉽은 ‘국유재산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매장물 추정가액 일부를 지급 받고 매장물을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다. 반면 매장물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는 문화재보호법 적용을 받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상액을 결정한다. 단 조건이 따른다. 보상을 받으려면 문화재 발견자가 ‘선의’여야 한다. 문화재의 존재 여부를 몰랐어야 하는 것.

    그렇다면 당초 유물보다 ‘은괴’를 염두에 둔 골드쉽을 ‘선의’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과연 은괴를 문화재라 할 수 있을까. 은괴를 문화재로 보기 어렵다는 데는 문화재청도 동의한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이런 미묘한 문제들로 인해, 골드쉽이 고승호와 은괴 발굴에 성공해도 문화재보호법을 적용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한다. 더욱이 유네스코가 94년부터 추진해온 ‘침몰 후 100년 이상 된 선박과 그 내부 화물을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수중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안을 올 가을 파리 총회에 상정할 게 확실시되어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골드쉽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골드쉽 홍준영 사장(46)은 “처음엔 은괴가 목표였다. 하지만 3차 발굴을 통해 고승호임을 100% 확신한 이상 매장물은 물론 고승호 자체의 인양으로 목표를 확대했다. 인양한 고승호를 테마관광지 조성에 활용할 것이다”고 공언했다.

    8월17일 현재 발굴작업은 중단된 상태. 물살이 빠르고 날씨가 고르지 못해 작업은 오는 9월 속개한다.

    문화재청은 3차 발굴 결과를 지켜본 후 침몰선박이 고승호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논란의 여지는 또 있다. 국제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이 논란은 좀더 거시적이다.

    일단의 해양법 전문가들은 설령 침몰선박을 고승호로 판명하고 실제 은괴를 다량 발견하더라도 고승호와 매장물 소유권을 골드쉽은 물론 한국측이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즉 패전국(청) 군함은 침몰수역에 관계없이 승전국(일본)이 항복을 받아 전리품으로 ‘선언’했으면 승전국, 그렇지 않으면 패전국 소유란 게 해양법의 기본원칙이란 것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 박춘호 재판관(71)은 “‘선언’ 여부는 청ㆍ일전쟁 후 맺은 시모노세키(下關)조약 등 관련기록을 검토해야겠지만, 이와 무관하게 교전당사국이 아닌 한국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중남미 연안엔 스페인 군함 등 600여 척의 침몰선박이 있지만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킨다는 것. 또 고승호는 영국 인도차이나 기선회사 소유의 수송선으로 당시 청(淸)에 임대한 상태였지만, 군인이 탑승했고 포를 장착한 이상 명백한 ‘군함’이란 게 해양법학자들의 주장이다.

    반면 골드쉽측은 “99년부터 영국·중국·일본에서 모은 사료들을 종합검토한 결과 고승호가 ‘무장’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순히 군자금 및 병력수송 역할을 한 배를 군함으로 모는 건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도 “일부 해양법학자의 주장은 서양의 개별 케이스들을 따른 것일 뿐, 아직 침몰선박 소유권에 관한 성문화된 국제법은 없다. 고승호 사례가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국가간 협상으로 매듭지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해양수산부·외교통상부·문화재청 등 관계기관간 ‘내부 교통정리’를 위한 의견조율이 하반기 중 이뤄질 전망이다.

    어쨌든 ‘보물선’의 ‘미래’는 상당히 ‘흥미로울’ 듯하다. 이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승호로 밝혀지면 실타래는 더 꼬인다. 소유권 문제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고승호에 내재된 이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다. 총체적 난제를 안은 이 ‘미지의 선박’은 유사 사례의 길잡이로서 국내 최초의 선례가 될 것이다.”

    ‘보물선’은 과연 욕망의 결정체일까. 골드쉽의 발굴시한은 2003년 1월. 골드쉽측은 은이 단순한 은괴가 아니라 은화 형태로 존재할 경우 가치가 무려 1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욕망의 결과가 ‘대박’으로 나타날지, 허망한 모험으로 끝날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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