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2001.07.26

핵무기보다 무서운 ‘소형무기’

무장투쟁 사상자 90%가 권총·소총 등에 희생 … 1년에 50만 명, 하루에 1300명꼴 사망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5-01-11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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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무기보다 무서운 ‘소형무기’
    지금 유엔에서는 소형무기 불법거래를 막기 위한 특별회의가 열리고 있다. 7월9일부터 2주 동안 전 세계 146개국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중인 이 회의는 의미가 깊다. ‘죽음의 상인’이라 일컬어지는 무기업자들은 소총·기관총 등 개인화기들을 지구촌 분쟁지역으로 밀수출해 희생자를 양산해 왔다. 이번 국제회의는 소형무기를 규제하기 위해 처음으로 갖는 대규모 모임이다. 이를 위해 유엔과 여러 비정부기구들(NGOs)은 지난 2년 동안 여러 차례 예비모임을 통해 소형무기 거래 규제를 둘러싼 가닥을 잡아왔다. 이 모임은 무기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4년 전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자는 이른바 오타와협약을 통과시킨 캐나다 오타와회의와 같다. 그러나 세계 최대 무기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미국의 반대로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형무기가 지구촌 분쟁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거래 실태를 알아본다.

    희생자 다수는 ‘부녀자와 어린이’

    아프리카의 콩고와 시에라리온에서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과 스리랑카, 유럽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남미의 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지난 90년대 10년 동안 죽은 사람은 4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핵폭탄으로 죽은 게 아니다. 전투기 등 첨단 전자장비 무기로 죽은 것도 아니다. 자동소총과 수류탄, 그리고 박격포 등 재래식 무기의 희생자들이 전체의 90%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학 대학원연구소(Gradu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는 유엔의 소형무기 불법거래 규제회의와 때를 맞추어 최근 ‘2001년도 소형무기 실태조사’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소 관계자들은 유엔 회의장에서 이에 관한 브리핑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분쟁 탓에 날마다 1300명, 1년이면 50만 명이 죽고 있고, 그 가운데 다수가 부녀자와 어린이라고 밝혔다(상자 기사 참조).

    지난날 군축협상 테이블에서 ‘무기 규제’를 말할 때는 핵무기 또는 군사장비의 주요 품목인 비행기·탱크·대포의 보유량을 줄이는 것을 뜻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일단의 비정부기구들의 캠페인에 힘입어 무기 규제의 초점은 대인지뢰로 모아졌다. 대인지뢰는 해마다 숱한 희생자를 낳아온 작은 괴물이었다. 그러다 97년 말 오타와협약으로 이 문제를 타결한 뒤 소형무기 불법 거래에 초점이 모아졌다.

    ‘2001년도 소형무기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유통하는 소형무기는 적어도 5억5000만 개에 이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형무기는 전체 재래식 무기 거래액의 10%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 무장투쟁에서 일어나는 사상자의 90%는 바로 소형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소형무기는 대량 살상력을 지닌 핵무기보다 더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주범인 것이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소형무기’
    현재 지구상에서 거래하는 소형무기의 대부분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의 만성적인 분쟁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분쟁지역에서 총기 소지는 자위권으로 간주하고 총기는 다시 분쟁지역의 폭력문화를 조장하며 내전이 장기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각국별 실태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1000만 정, 시에라리온과 앙골라 700만 정, 중앙아프리카 200만 정의 소형무기들이 내전에 쓰인다는 추산이다. 문제는 이런 무기로 인한 주요 희생자가 군인이 아닌 일반시민이라는 점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죽음의 상인’들이 군침을 흘리는 곳이다. 80년대 말 동서냉전이 막을 내린 뒤부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무기 제조기술의 발달로 인해 쌓인 재고무기들을 처분할 수 있는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절대량으로는 아프리카가 최대시장은 아니지만,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적으로 허약한 국가들이 겪어온 내전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 소형무기는 많은 재난의 불씨였다.

    소형무기로는 소총·수류탄은 물론이고 어깨에 메고 쏘는 로켓 추진 총류탄 등이 흔하다. 이런 소형무기는 갈수록 값이 싸져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를테면 60년대 중반, 아프리카 케냐의 부족민들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쓴 구식소총 한 자루와 소 60마리를 맞바꾸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AK-47 한 자루는 소 15마리 값이었다. 총기의 성능은 훨씬 더 파괴적인 데 비해 값은 반에 반값으로 내려갔다. 이즈음은 소 4, 5마리면 살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선 값이 더 싸 우간다에선 닭 한 마리, 모잠비크와 앙골라에선 옥수수 한 포대 값이다. 현재 무기시장에서 500만 달러로 공격용 소총 2만 자루를 살 수 있다. 작은 나라에선 500만 달러만 들이면 군대를 무장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군들이 지닌 무기들은 허약한 정부군의 무기고를 습격해 빼앗은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얼굴 없는 무기 거래상들에게서 사들인 것들이다. 아프리카의 일부 반군들은 다이아몬드·석유·목재 등 천연자원들을 팔아 무기를 조달한다. 이를테면 비전투원인 시민의 손목을 마구 자르고 소년병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시에라리온의 혁명연합전선(RUF)의 재정적 원천은 다이아몬드다. RUF 반군들에게서 다이아몬드 원광석을 사들인 이웃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정권은 이 때문에 올 봄부터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다. 다이아몬드 밀거래로 RUF는 지난 91년 수백 명 규모에서 지금은 1만5000명이나 되는 규모로 세력을 키웠다.

    소형무기는 소년병과도 관련이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전 세계 30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이 고사리손에 소총을 쥔 채 어른들과 함께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AK-47을 비롯해 이즈음 생산하는 소총들은 가볍고 사용하기도 편해 간단한 훈련만으로 나이 어린 소년병들도 쉽게 쓸 수 있다. 정부군·반군 가릴 것 없이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들에서 소년병들을 실전에 투입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소형무기’
    전 세계 분쟁지역 전투원의 30∼40%가 소년병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4월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차 현지에 갔을 때 만난 소년병 가운데는 겨우 12세 난 꼬마도 있었다. 이들은 반군인 RUF가 납치해 간단한 총기조작법을 가르쳐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이렇듯 쓰기 쉬운 소형무기는 이렇다할 관리가 필요하지도 않다. 수명은 수십 년씩 간다. 이런 편리함과 내구성을 지닌 소형무기가 남기는 피해는 엄청나다. 연 50만 명의 희생자도 문제려니와,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인터 아메리칸 개발은행의 한 보고서는 중남미에서 소형무기로 인한 폭력 때문에 해마다 1400억∼1700억 달러의 손실이 생기는 것으로 추산했다.

    유엔회의에 즈음해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작은 무기들, 큰 문제점들’이란 제목의 글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발표했다. 이 기고문에서 아난 총장은 4년 전 대인지뢰 사용금지에 관한 국제협약이 낳은 성과를 상기시키면서, 지뢰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소형무기들의 사용을 철저히 규제하는 협약을 만들자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소형무기란 권총·소총·기관총·박격포·수류탄·대전차포·이동미사일발사기 등을 가리킨다. 오래 전부터 소형무기 규제 관련 국제회의를 열 것을 주창해 온 아난 총장은 99년 9월 유엔 안보리에서 “소형무기 거래를 통제하는 것이 다음 세기에 일어날 분쟁들을 미리 막는 열쇠다”고 주장해 왔다.

    최대 수출국 미국은 “규제 반대”

    대부분의 나라들은 소형무기 수출 규정을 강화하고 무기 거래와 관련된 정보를 나누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부시 정권의 태도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는 소형무기 불법 거래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함께 해왔고, 소형무기 불법 거래에 관한 미국법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아 엄격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지금 유엔의 총기 규제 움직임에 두손을 들고 반대하는 미국총기협회(NRA)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같은 태도는 NRA로 대표되는 미국의 무기산업체들이 공화당을 상대로 벌여온 강력한 로비의 결과다.

    미 국무부의 무기규제 및 국제안보 담당인 존 볼튼 차관은 “이 특별회의가 미국인의 총기소유권을 훼손한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무기류와 불법 거래 를 통해 분쟁을 격화시키는 무기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 언론들은 부시 행정부와 NRA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엔 특별회의의 목적은 미국의 소형무기 수출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무기들이 아프리카 같은 지구촌 분쟁지역으로 흘러들어 군벌들의 세력을 키우고 희생자를 양산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부시 행정부와 NRA가 내세우는 반대 논리는 묘하게도 ‘미국인의 총기소유권’이다. 이들은 “헌법에 규정한 총기소유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아프리카·아시아·남미의 여러 분쟁지역에 단골 고객들을 갖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도 유엔의 규제 움직임에 심기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난 총장은 현재 논의중인 소형무기 규제협약이 국가 주권을 훼손하거나 자위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며, 사악한 무기 거래상, 부패한 관리들, 마약범죄 조직원들, 테러리스트들을 겨냥한 것이라 설명한다. 90년대 ‘성장산업’이 된 무기 밀거래는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자유무역 확산을 낳은 이른바 세계화(globalism) 흐름과 때를 같이한다. 말하자면 세계화의 음지인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구소련 블록에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분쟁지역으로 이런 밀거래가 많이 이루어졌고, 무기밀매 대금은 국제금융의 음지에서 세금 포탈은 물론 돈세탁을 쉽게 해왔다. 이번 유엔 국제회의의 목표는 소형무기 거래의 국제적인 표준과 절차를 만들어 밀거래를 막으려는 것이다. 선적한 무기가 어디로 실려가 궁극적으로 누구의 손에 쥐어지는가를 엄격히 챙기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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