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9

2001.06.21

부시 장고(長考)의 끝 ‘대화 재개’

북`-`미 대화 최대 쟁점은 재래식 무기… ‘시작’은 클린턴이 머문 ‘그 자리’?

  • < 김 당 기자 >dangk@donga.com

    입력2005-02-03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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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장고(長考)의 끝 ‘대화 재개’
    4개월간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대화 재개’였다. 지난 6월7일 이례적으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대북정책에 대한 성명의 골자는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이라고 공언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이어받은 것이다. 성명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중단된 북한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 이는 북한이 원하는 바다. 둘째, 대화의 의제는 △지난 94년 제네바합의에 따른 북한 핵동결 이행의 개선 △북한 미사일 개발사업에 대한 검증 및 미사일 수출 금지 △북한 재래식 무기 감축문제 등이며 이를 포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 여기에 ‘가시’가 박혀 있다. 셋째, 북한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미국도 북한을 돕겠다는 것. ‘당근’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의 혼란 속에서 중단된 북-미 대화는 조만간 시작된다.

    우선 대화의 첫번째 의제인 핵 활동 관련 제네바합의 이행 개선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성명이 제네바합의 자체의 ‘개선’(improvement)이 아니라 그 ‘이행의 개선’(improved implementation)을 명시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행의 개선’이 갖는 의미는 북한이 제네바합의 규정에 따라 경수로의 핵심 부품 인도 이전에 ‘과거 핵 활동’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논란에 휩싸였던 제네바합의의 개정이나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의 화력발전소 대체 문제 등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당초 2003년까지인 경수로 건설이 2008년에나 1호기를 완공할 예정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측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의 보상을 미측에 꾸준히 요구해 온 반면 미측은 핵 사찰에 초점을 맞춰왔고, 부시 대통령이 이를 더욱 강조했다. 북측이 우선 송전방식으로 한국에 요청한 50만 kW 전력 지원건도 풀어야 할 과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 50만 kW 송전 지원이 북-미 회담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재개할 북`-`미 대화에서 가장 쟁점이 될 의제는 재래식 무기 감축건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재래식 군비(軍備) 통제문제를 제기할 경우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재래식 무기협상의 전제요건으로 내걸어 왔다. 북한으로서는 북-미 관계 개선으로 체제보장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 감축은 무장해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그동안 재래식 군비 통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불가침조약으로 남북이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여왔고, 미국은 핵과 미사일에 전념하고 한국은 재래식 전력문제를 주도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또 정부는 최근 미국측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이뤄질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까지 전달했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논란의 소지가 큰 이 의제를 성명에 담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는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주한미군 3만7000명의 안전과 직결되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압력’이지 결국은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낙관적 시각도 없지 않다. 이런 기대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성과에 기대고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핵심의제가 될 수밖에 없고, 거기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직결된 김위원장의 ‘획기적 조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깔려 있다.

    또 다른 의제인 미사일 개발사업에 대한 검증 규제건은 한국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순전히 북-미 간에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규제를 실시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미사일 개발문제를 훨씬 더 강력하게 다룰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북한의 미사일 수출금지를 의제로 명시하는 점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성명에서 △미사일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 간 협상 결과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협상에 나설 주체의 레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사일 협상의 전개상황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부시 장고(長考)의 끝 ‘대화 재개’
    그러나 오히려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협상이 쉬운 분야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14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측의 합의 이행을 검증하는 조항만 포함한다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미사일 협상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바 있다. 클린턴의 방북조건과 연계되던 미사일 협상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이미 타결 직전까지 갔다. 이런 사실은 클린턴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주무르던 두 여걸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웬디 셔먼 전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특히 셔먼 전 조정관은 ‘클린턴 대북협상 릴레이팀’의 마지막 주자로 클린턴의 방북까지 거의 성사될 뻔한 북한과의 미사일 줄다리기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렇다면 클린턴 대통령 임기중에 타결이 임박하던 북`-`미 미사일회담은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있었고, 현재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먼저 일본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 있는 1000km 사거리의 노동미사일을 개발·시험·배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올브라이트와의 회담에서 미국이 제3국에서의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를 보장하면, 사거리 300마일(480km) 이상의 미사일 생산·시험·배치를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이는 노동미사일의 생산·시험·배치 금지를 요구한 미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또 북한은 미사일 부품과 기술은 물론 미사일 수출도 중단한다고 했다. 김위원장은 그 대가로 당초 해마다 10억 달러를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철회하고 대신 10억 달러에 상당하는 식량과 석탄·생필품 등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협상의 최종 장애물을 제거하고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1월 초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전문가회담을 열었다. 그렇지만 전문가회담 참석자들은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대표단은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북한측에 양국 정상회담에서 서명하고 공개할 ‘미사일 기본협정 초안’과 함께 양측의 준수사항을 명시한 ‘비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이는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에서 김위원장이 제안한 내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또 미국은 북한이 이미 생산 보유한 미사일의 폐기도 요청했다. 결국 양측은 북한이 이미 생산한 미사일을 폐기할 것인지, 현금 대신 어떤 형태의 지원을 북한에 제공할 것인지 등에 대해 막판까지 타협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측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이전에 결정권을 쥔 김위원장과의 회담이 한번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웬디 셔먼 조정관과 국가안보회의·국무부·국방부 관리들로 이루어진 마지막 협상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셔먼 조정관은 김위원장이 미국의 제안에 응할 경우 클린턴의 방북 날짜를 결정할 권한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11월중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행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12월 중순 올브라이트 장관의 아프리카 순방을 수행할 때도 갑자기 평양 방문이 결정될 것에 대비해 겨울옷 가방을 따로 준비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의 재검표 혼란이 길어지면서 당시 샌디 버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반대했다. 잠재적인 ‘헌법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클린턴 정부 인사들은 미 대선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부시 외교안보팀과 이 문제를 협의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경우 부시의 대선 승리 주장에 정당성을 더할 것을 우려해 이를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셔먼 조정관의 ‘준비된 방북’은 무산되었고 이에 따라 또 한번 한반도의 역사를 바꿀 북-미 정상회담도 날아가 버렸다. 미국의 국내 사정 때문에 한반도의 역사가 바뀐 셈이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지난 3월22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이 제안한 내용은 실로 예전과는 크게 다른 ‘획기적인’(unprecedented) 것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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