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문화예술단체 “기부금 폐지 … 웬 날벼락”

행자부, 준조세성 폐단 막으려 추진 … 법 개정 땐 각종 후원 원천봉쇄 “살길 막막”

  • 입력2005-02-24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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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단체 “기부금 폐지 … 웬 날벼락”
    문화정책에 조예가 있는 한 음악평론가는 문화예술단체가 기부금을 받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뜻이 담겨져 있음은 물론이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의 내용을 접한 공연장이나 공연기획사 관계자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마도 당신이 잘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준조세적 성격의 기부금품을 일소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문화예술계의 첫 반응은 충격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희극적이었다. 한마디로 되지도 않을 우스운 일을 왜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주범’은 개정안을 만든 행정자치부다. 그러나 뿌리를 캐면 최근 잇따라 문화예술계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기획예산처의 혐의가 드러난다.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이라는 피해자의 국선변호인쯤 되는 셈이다.

    “문화예술계 죽이기냐”

    지난 3월17일 입법예고된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렇다. △전문예술법인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고 △문예진흥기금이나 지방문예진흥기금 조성재원 가운데 기부자의 용도지정을 하지 못하며 △문예진흥기금으로는 지역축제행사 등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만 보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아리송해 한다. 쉽게 풀어보자. ‘전문예술법인’은 △예술의전당과 △정동극장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등 다섯 곳이다. 행자부 안대로 개정되면 이들은 아무런 기부금품도 받을 수 없다.



    한 예로 예술의전당은 한해 5억원 정도를 후원회로부터 지원받는다. 각계의 쟁쟁한 인사들로 구성된 후원회는 현재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회장을 맡고 있다.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3년 동안 해마다 10억원씩 모두 30억원을 예술의전당에 기부했다. 법이 개정되면 후원회를 해산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박회장 같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낸다고 해도 받을 수 없다. 예술의전당에는 보통사람이 참여하는 회원제도도 있다. 일반회원은 한해에 4만원, 골드회원은 10만원씩 내면 몇 가지 혜택을 준다. 반대급부가 없지 않지만 후원의 성격이 큰 만큼 역시 해체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다.

    개정안대로라면 전문예술단체들은 정상적 활동을 거의 할 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들은 특히 기획예산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동안 무리할 정도로 재정자립도를 높이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밥 더 얻어 오라면서, 한쪽에선 쪽박까지 깨는 정책이 한 부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예술계에 미치는 법 개정의 파장은 예술의전당 등 전문예술법인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행자부는 문제가 불거지자 다른 문화예술단체들이 받는 자발적 기부금까지 금지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그러나 문화부 법무담당관실이 검토한 내용은 행자부의 주장과는 다르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 제2조 제1호에 명시된 기부금품의 개념은 모집행위에 의한 출연금품뿐 아니라 자발적인 출연금품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이 개정되면 우리나라의 모든 공연단체 및 공연장이 외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해석이다.

    문예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기부자가 용도를 지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대목도 부처간 정책 협조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아마도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 같지만, 문화예술에 기부금을 내는 개인이나 기업에 세금을 감면하는 혜택을 주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기업이 문화예술단체에 연간 순이익의 5% 범위에서 기부금을 내면 손비로 처리하여 법인세를 감면해준다. 그런데 지원하고 싶은 문화예술단체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문예진흥기금에 지원할 곳을 정하여 기탁해야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이른바 지정기탁인데, 이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공연단체 관계자들은 “직접 기부를 막는 것으로 모자라, 문예진흥기금을 통하여 기부받는 길까지 봉쇄하겠다는 것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사람을 살리는 연구가 아니라 죽이는 방법이어서 그렇지, 공부를 많이 하기는 하는 모양”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려온다.

    또 문예진흥기금으로 지역축제에 경비를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방문예진흥기금도 지정기탁을 막도록 한 것은 기획예산처의 아이디어라기보다 행자부의 ‘끼워팔기’라는 인상이 짙다. 지방행정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행자부 쪽에서 보면 “축제가 웬수”라는 지역업체들의 민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와 232개 기초자치단체가 벌이는 문화예술축제는 1000개를 넘는다. 보통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건 행사는 자치단체장의 업적홍보 수단이게 마련이고, 예산범위를 벗어나기 일쑤다. 자연히 지역업체들에 반강제적인 기부요구가 뒤따르고, 인-허가권을 가진 자치단체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문화예술단체 “기부금 폐지 … 웬 날벼락”
    개정안은 이런 부작용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가 문제라면 축제를 손보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문제라면 단체장들을 손보면 되지 않느냐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항변한다. 물론 행자부도 고민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제어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애꿎은 문화예술계를 잡아,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더욱 드라마틱한 것은 올해가 ‘지역문화의 해’라는 것이다. 지난 3월27일부터 29일까지 강원도 원주-고성-강릉에서는 ‘지역문화 현장탐방 및 대화’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지역축제는 관계자들의 자아비판 속에 심도 있게 논의됐다. 문화예술 당사자들이 지역축제의 문제를 본질에서부터 풀어가겠다고 노력하는 판에 개정안은 찬물을 끼얹은 꼴이 아닐 수 없다.

    행자부가 입법예고한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문화부는 “행자부 안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행자부 실무자와 접촉해보니 문화예술계가 반발하는 이유도 상당히 이해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문화부는 그동안 이 ‘엄청난’ 법안을 앞에 놓고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예술의전당이나 국립예술단체들이 ‘사약’을 앞에 놓고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그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문화부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게다가 부처의 장래를 결정할 예산 및 직제를 각각 쥐고 흔드는 기획예산처 및 행자부와 맞대결을 벌여봐야 득 될 것 없다는 판단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대리전’만으로도 충분히 법안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문제는 4월6일로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이 법안의 ‘원상복구’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문화부 담당국장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사안은 모두 회복시킬 것”이라고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여러 부처가 개입되면 힘 겨루기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문화부가 “뒷북만 치고 있다”는 비판 속에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동안, 여론의 비판을 받긴 했지만 부처간 싸움에는 여전히 강자인 기획예산처와 행자부가 개정안에 체면치레성 ‘흔적’만 남겨놓아도, 문화예술계가 견뎌야 할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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