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사이버 강의’로 공부하기 힘드네

기본 인프라 ‘걸음마’ 단계… 학생은 ‘내용부실’ 교수는 ‘시간부족’

  • 입력2005-02-23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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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강의’로 공부하기 힘드네
    연세대 3학년에 재학중인 이현종씨(24). 그는 이번 학기에 ‘사이버 강의’로 진행되는 전공과목 두 강좌를 수강 신청했다. 평소 인터넷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온라인 상에서 교수와 학생, 또는 학생간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사이버 강의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 그러나 그가 가졌던 기대는 몇 번의 접속 실패를 겪으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매주 보고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 강의의 마감일은 금요일이나 토요일이죠. 이날은 ‘사이버 강의실’에 접속하는 것조차 힘들어요.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이버 강의를 담당하는 서버 용량이 얼마나 작으면 이런 일이 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학교의 사이버 강의 담당 서버는 3월13일부터 접속이 끊어지는 일이 나타나더니 15일에는 완전히 다운돼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씨는 “물론 기술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는 않죠. 하지만 접속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기본인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채 사이버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고 주장했다.

    각 대학들이 정보화 지식기반사회 구축을 표방하며 앞다퉈 진행하고 있는 사이버 강의. 대학에서의 사이버 강의는 일반적인 ‘사이버 대학’과 다르게 100% 온라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주일에 3시간 수업이 있다면 강의실 수업이 2시간, 사이버 강의가 1시간으로 구성되는 식이다. 또 강의실 수업은 시간 그대로 진행하고 사이버 강의가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강의실 수업과 사이버 강의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교수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는 있지만 양자 모두 어느 한쪽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또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 면에서도 부실한 점이 많아 사이버 강의 자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연세대의 경우 이번 학기에 개설된 사이버 강의 수는 150개며 800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사이버 강의를 담당하는 서버는 단 하나. 이 학교 사이버교육센터의 박주연 연구원(30)은 “98년 2학기에 사이버 강의 네 강좌가 개설됐어요. 150개의 강좌가 진행되는 지금까지도 당시에 쓰던 서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강의의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학교측의 지원이 거의 없는 셈이죠”라며 며칠 전 있었던 서버다운은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연세대의 사이버 강의는 그나마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각 강좌에 웹 전문 조교가 1명씩 지원되고 사이버교육센터에서도 웹상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문제들을 전담해 해결해주기 때문. 다른 학교들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열악하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이인호 교수(43·중어중문학)는 지난해 사이버 대학 ‘최고의 교수’로 뽑히기도 한 사이버 교육통. 5년 전부터 PC통신을 통해 강의해온 그는 이른바 사이버 강의의 원조다. 하지만 그도 대학에서 사이버 강의를 제대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우리학교 교수들은 매주 적어도 세 과목, 9시간을 강의해야 합니다. 여기에 사이버 강의를 한 과목이라도 맡게 되면 오프라인 강의 5과목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요. 솔직히 일반 강의는 수업시간만 끝나면 자유롭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사이버 강의의 경우, 학생들 질문에 일일이 답해야 하고 토론방에서 이루어지는 정기 토론에 참여해야 합니다. 즉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확실한 피드백을 줘야 하죠. 또 수업 자료나 참고 문헌을 찾아 웹에 올리는 일 모두 교수의 몫입니다.”

    그는 학교 당국이 사이버 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일반 강의시간을 줄여주고 웹 전문 조교를 지원해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윤인진 교수(38·사회학과)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순전히 교수가 봉사하는 차원에서 사이버 강의를 병행하는 것입니다. 홈페이지 서버도 제 개인 컴퓨터죠”라며 콘텐츠 개발 및 연구 지원, 조교 제공과 같은 학교측의 지원이 없음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려대 수업지원팀의 한 관계자도 “이번 학기는 사이버 강의에 대한 학교의 공식 지원이 없습니다. 아마 다음 학기에 사이버 강의로 진행되는 대규모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조교나 연구비 지원 등이 이뤄질 예정입니다”라며 학교측 입장을 밝혔다. 34개 강좌가 열려 750여 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는 서울대 사이버 강의에도 웹 전문 조교 제공이나 연구비 지원과 같은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사이버 강의’로 공부하기 힘드네
    그렇다면 사이버 강의에 대한 학교측의 미비한 지원을 아쉬워하는 교수나 이를 수강하는 학생의 태도엔 전혀 문제가 없을까.

    연세대 3학년에 재학중인 김모씨(21·여)는 “사이버 강의를 듣고 있는데 생각보다 부실해서 실망했습니다. ‘강의록’만 떡하니 올려놓았을 뿐이죠. 질문에 대한 답변도 빨리 올라오지 않고 정기토론에도 소수만 참여합니다. 실시간, 동영상 강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마다 사이버 강의의 수준 차가 크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4학년 이모씨(23·여)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지난해 사이버 강의를 두 과목 신청해 듣다가 다 철회했어요. 피드백이 거의 없었고 업데이트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요. 특히 몇 번 들어오고 몇 번 글을 올렸는지, 몇 시간 동안 사이버 강의실에 있었는지 등이 성적 평가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게 느껴졌어요”라며 사이버 강의 수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였다.

    학생들의 태도도 미적지근하기는 마찬가지. 접속 및 글을 올린 횟수가 성적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직 점수만을 노리고 강의에 접속해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고려대 4학년 정모씨(21)는 “토론방 분위기는 ‘정신 없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어요. 참여자들도 많은데다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해 토론이 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죠”라고 말했다. 이인호 교수도 “강의와 관계없는 인터넷 유머 따위를 올려 게시판에 자기 이름 수만 늘리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일일이 읽어볼 여유도 없고 참 난감합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강의실 수업의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한 사이버 강의는 웹에 올려진 강의실 자체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된다는 강점도 있다. 이 때문에 교수와 학생들 모두 사이버 강의의 기본취지 및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 사이버 강의 자체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뤄지고 있는 사이버 강의의 문제점이 제대로 시정되지 않는다면 미처 날기도 전에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이 되지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 지금 대학가의 사이버 교육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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