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벤처 대부’의 아름다운 퇴진

  • 입력2005-03-08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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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 대부’의 아름다운 퇴진
    국내 벤처 1세대 수장으로 꼽혀온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63)이 1월4일 기업활동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정 전 사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강남사옥에서 긴급이사회를 소집, “경영권 세습을 안하겠다는 평소의 공언과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키려 사퇴한다”고 밝힌 뒤 퇴진했다. 그는 이사진의 회장 추대도 고사했다. 이에 따라 미래산업의 ‘미래’는 부사장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장대훈 신임사장(53)의 몫으로 남았다.

    기자회견조차 생략된 ‘벤처 대부’의 조촐한 은퇴. 그러나 이날부터 미래산업 홈페이지엔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미래산업 주주들과 네티즌의 칭송이 줄을 이었다. ‘이 시대 최고 멋쟁이’ ‘역시 정문술 사장’ ‘CEO(최고경영자)의 모범을 보였다’ ‘대통령에 출마하면 찍겠다’…. 그의 퇴진에 이처럼 명예로운 찬사가 쏟아진 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투명 기업을 추구하겠다는 초심(初心)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83년 벤처정신 하나로 설립된 무명 중소기업이 메카트로닉스와 인터넷 관련 첨단산업 분야의 선도 주역으로 우뚝서기까지 미래산업이 마냥 탄탄대로를 걸은 것만은 아니었다. 1980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내 직책 중 ‘꽃’으로 불리던 기획조정실 조정과장을 끝으로 18년 공직생활을 강제해직으로 마감한 정 전 사장은 그의 말대로 ‘먹고 살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래산업 창업 직전 초기 사업에 실패한 그는 한때 집 근처 청계산 바위에 올라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던,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 역시 이번에도 아버지의 결정을 따랐다. 그것은 그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됐다.

    “내 사업의 동력은 일에 대한 호기심과 집중력, 그리고 발상의 파격이다.” 98년 11월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정 전 사장은 아무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분야에 ‘도전’해 성공했고, 회사는 발전을 거듭했다. 80년대 후반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검사장비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를 자체 개발해 사세를 키운 미래산업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첨단장비들을 개발, 단기간에 세계 경쟁력을 앞세운 정상의 벤처기업으로 자리잡았다. 97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우량 10대 기업 중 1위, 99년 11월 미국 나스닥 상장, 2000년 추정 매출액 1300억∼1400억원. 얼마 전만 해도 은행 지점장들이 몰려와 서로 사업자금을 저리로 대주겠다고 각축을 벌였던 회사. 그렇지만 경제위기와 벤처위기를 겪으면서 미래산업도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3월 34%대였던 외국인 주식 보유율이 2001년 1월4일 8.7%까지 떨어졌고 주가도 지난해 초에 비해 87%나 폭락했다. 정 전 사장이 “오히려 지금이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적기”라고 밝혔듯 그가 CEO 자리를 내놓은 것도 이런 ‘책임의 굴레’와 결코 무관하진 않은 듯싶다.

    그러나 어쨌든, 어쩌면 기업인으로서 당연한 수순을 밟았을 수 있는 그의 행적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건 막대한 부의 변칙증여가 판치는 국내 재계의 세습구조를 과감히 떨치고 ‘교과서적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희망’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은 ‘사임의 변’에서 “지금까지는 돈버는 일만 했다. 이젠 제대로 쓰는 일을 위해 일회적이거나 소모적 자선이 아닌 생산적 기부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또 한번 자신의 뜻을 대중 앞에 펼쳐보였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한다.’ CEO로서 이런 그의 경영철학은 지금껏 기업인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신탁’이 돼 왔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킨 뒤 스스로 ‘신전’을 버리고 또다른 미래를 일구려 훌훌 털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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