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9

2000.11.16

‘한일 해저터널’ 꿈의 프로젝트인가

양국 정상 언급 이후 관심 고조…기술적 문제 없지만 투자비 천문학적 수준

  • 입력2005-05-27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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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해저터널’ 꿈의 프로젝트인가
    “한국과 일본을 잇는 해저터널을 만들어 아셈(ASEM) 철도로 이름붙이자.”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가 10월20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오찬 석상에서 이런 제안을 한 이후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이에 앞서 9월22~24일 일본을 공식 실무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도 9월23일 밤 모리 총리 주최 만찬에서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생기면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유럽까지 연결된다. 미래의 꿈으로 생각해볼 문제”라며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제창했다고 ‘일본경제신문’이 보도했다.

    한일 해저터널을 뚫게 되면 가장 가까운 거리는 부산을 출발해 거제도를 경유, 일본의 쓰시마섬과 이키도를 거쳐 일본 남부지역 규슈에 이르는 구간. 전체 길이만도 대략 235km에 달한다. 현재 세계 최장이라는 일본 북부 해저터널 세이칸 터널(53.9km)이나 도버해협을 가로지르는 영불 해저터널(50km)보다 무려 네배나 길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예상돼 현재로선 ‘꿈같은’ 구상이다.

    한일 두 정상의 한일 해저터널 언급 역시 구체적인 검토를 거친 후 나온 것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관계자는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구체적인 검토 지시를 받은 바 없다”면서 “한일 해저터널이 뚫리면 좋겠지만 한두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장기적인 구상 수준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씨도 “모리 총리의 아셈회의 발언은 김대통령의 언급에 화답하는 차원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해저터널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김대통령이 가끔 한일 해저터널에 관심을 표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씨도 “9월 말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통령이 정식 의제는 아니지만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언급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전체 길이 235km ‘세계 최장’

    최근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곳은 국내 및 일본 학계. 한일 해저터널 ‘전도사’를 자처하는 강원도 원주 한라대 이창훈 총장은 “제3차 서울 아셈회의에서 확인된 것처럼 21세기 화두는 유럽 통합과 한반도 통일”이라면서 “세계화전략에서 지나친 미국화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은 유럽과의 협력 강화고, 이를 위해 홋카이도에서 유럽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도망 건설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올 봄 일본에서 열린 일본 물리탐사학회에 참석한 부산 부경대 지구물리학과 김희준 교수는 일본 학계의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 한일 해저터널 구상은 은퇴를 앞둔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나 논의된 ‘한가한’ 주제였으나 최근 들어 이 학회 부회장인 교토대 아시다 교수 등을 비롯한 현역 교수들을 중심으로 다시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는 것.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최근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일 두 정상의 언급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북 화해 분위기의 진전으로 9월18일 경의선 철도 복구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 그동안 끊겼던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한일 해저터널이 뚫리면 한반도를 거쳐 철도망을 통해 중국∼`러시아`∼`유럽과 지리적 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일본의 오랜 꿈이 실현된다.

    한국 입장에서도 한일 해저터널은 나쁠 것도 없다. 한라대 이창훈 총장은 “한일 해저터널이 개통돼 일본 한국이 유럽 대륙과 철도망으로 연결되면 한국은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한국민의 민족감정상 한일 해저터널을 여론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라는 것.

    러시아가 최근 들어 시베리아 횡단철도 활성화에 적극적인 점도 한일 해저터널 구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한일 해저터널은 한국과 일본을 잇는다기보다는 대륙과 일본을 연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중간의 남북철도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활성화되지 않고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러시아 당국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유라시아 철도망 구축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10월31일 민주당이 주최한 남북철도 연결기념 정책 세미나 ‘철의 실크로드, 그 정치-경제적 의의와 전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 텐 유리도 이 점을 강조했다. 올 7월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수행한 텐 유리는 현재 러시아 교통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푸틴의 측근.

    텐 유리는 이날 “러시아는 늦어도 2002년 초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광케이블을 부설해 화주가 인터넷을 통해 운송중인 화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할 예정인 데 반해 중국 횡단철도에서는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열심히 선전했다. 그는 또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중국 횡단철도보다 요금도 싸다”고 강조했다.

    유라시아 노선의 운행 가능성 및 수송 잠재력은 이미 98년 4월16∼25일 실시된 시범프로젝트를 통해 입증됐다. 당시 ‘동유럽-아시아 철도협력위원회’(OSJD)와 유엔아태경제협력위원회(ESCAP)가 공동 주관한 프로젝트에서 2500t의 화물을 적재한 컨테이너 열차가 나홋카에서 브레스트까지 1만500km 이상 되는 거리를 18일21시간에 걸쳐 주파했다. 이는 해운수송보다 15일이나 단축한 기록.

    한일 해저터널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긴 하지만 구상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1940년대 군국주의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 구상 실현을 위해 5개의 해저터널을 통해 일본 본토와 사할린, 극동 러시아, 만주, 한반도 등을 연결하는 순환철도망을 계획했다. 이 순환철도는 현해탄을 연결하는 철도뿐 아니라 하얼빈에서 울란 우데, 그리고 선양에서 톈진 및 중국 동안(東岸) 지역을 연결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이 구상은 일제의 대륙침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현돼서도 안 되는 구상이었고, 실제 일본의 패망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라시아 철도 네트워크 건설 차원에서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한일 해저터널 구상은 현실화할 수 있는가. “현재까지의 지질 조사 결과로는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부경대 김희준 교수)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중앙대 지역개발학과 허재완 교수도 “일본은 이미 세계 최장의 세이칸터널을 뚫은 것에서 보듯 세계 최고의 터널공사 기술을 가지고 있어 기술적인 애로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천문학적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그만한 자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인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등 기술 외적인 사항이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것.

    통일교 교주 문선명 목사가 8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통일과학자대회에서 제안한 국제평화고속도로 계획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자금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는 국제평화고속도로 1단계 사업으로 도쿄

    -서울-평양-베이징을 잇는 동아시아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세웠는데, 국제평화고속도로 시발점이 바로 한일 해저터널.

    통일교측은 문목사가 국제하이웨이 구상을 제안한 후 한국과 일본에 국제하이웨이연구회와 일-한터널연구회를 각각 설립, 해저터널 예상 노선에 관한 지질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측에서는 거제도 지역을, 그리고 일본측에서는 대한해협 중간 지점까지 지질조사를 마쳤으나 90년대 들어 통일교 내부의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현재는 ‘연구’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통일교측이 추산하는 한일 해저터널 총 공사비는 700억달러. 이 가운데 100억달러는 전기 통신 배수 배기 등을 담당할 서비스터널 공사비이고, 500억달러는 양쪽의 통로 터널 건설비다. 나머지 100억달러는 수송 장비 등을 위한 금액이다. 이중 200억달러는 한일 양국 정부(한국정부 50억달러, 일본정부 150억달러)가 부담하고, 200억달러는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조달하며, 나머지 200억달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조성한다는 게 통일교측의 복안이었다.

    통일교 추산 공사비 700억 달러

    공사비도 공사비지만 현재로선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씨는 “과거 일본이 대륙에 진출하면서 동북아뿐 아니라 일본의 불행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륙 진출을 의미하는 한일 해저터널은 일본내에서도 여론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동북아 경제 협력체 내지 공동체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아직은 한일 해저터널을 구상 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중앙대 허재완 교수는 “85년 영국 대처 총리가 영불 해저터널 건설에 대해 단안을 내린 것은 유럽 통합이 가시화돼 영국과 대륙 사이에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고 전제,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발전이 이뤄져 적어도 동북아의 경제 수준이 비슷해진 다음에야 한일 해저터널 구상은 구체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개발연구원 전일수 부원장은 “동북아 지역의 경우 외국인 투자 및 교역 확대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운송시스템 미비가 지적되는데, 동북아가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역내에 신뢰성 있고 효율적인 운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한일 해저터널도 언젠가는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 단계에서 한일 해저터널 구상은 아직은 ‘꿈’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한라대 이창훈 총장은 “나폴레옹 1세 시대 프랑스에서 영불 해저터널 구상이 처음 나왔을 때는 공상이라는 일부의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그 후 200여년 만에 완성됐다”면서 “한일 해저터널 구상도 적어도 21세기 안에는 구체화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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