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情 많고 인물 많은 막강 '고흥 향우회’

현역의원 4명 등 유명인사 대거 배출…‘깨어 있는’ 자세 몸에 밴 생활환경이 원동력

  • 입력2005-06-29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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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情 많고 인물 많은 막강 '고흥 향우회’
    ”차렷, 경례!”

    “고흥!”

    시드니올림픽 폐막식이 성대히 개최된 10월1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선 또다른 ‘작은 올림픽’이 열렸다. ‘올림픽’의 정식 명칭은 재경 고흥군민 체육대회. 주종목은 배구와 릴레이, 윷놀이, 그리고 훌라후프. ‘주최국’(?)은 재경 고흥군향우회였다.

    “매년 한번 개최합니다. 올해가 21회째죠. 규모 있는 행사를 일관성 있게 열고 있는 저력은 향우회 차원에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대회장을 맡은 진영화씨(향우회 수석부회장)의 자찬대로 이날 행사에서 보인 고흥향우회의 관록과 ‘파격’은 만만치 않았다.

    개회식부터 고흥군내 16개 읍면의 재경 향우회 선수단이 제각기 다른 유니폼을 맞춰입고 이색적인 제스처로 입장해 소규모 체전을 방불케 했고 KBS TV ‘드림팀’으로 친숙한 고흥 출신 탤런트 박남현이 성화 봉송주자로 나선 것도 이채로웠다.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을 비롯한 내빈들은 물론 1만7000여명의 참석자들은 이날 한마음으로 향수를 달랬다.



    김일 장세동 장용호씨도 이곳 출신

    재경 고흥군향우회의 전체 회원은 23만여명(가족 포함). 행락시즌임을 감안할 때 체육대회는 상당한 결집력을 과시한 셈이다. 운동장 외곽에 걸린 ‘대한민국 1등 군민’이란 플래카드를 ‘그들만의 수사(修辭)’로 예사롭게 넘기기 힘든 ‘고흥의 힘’은 어디서 연유할까. 뭔가 색다른 이유나 배경이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전남 고흥은 남도땅의 고만고만한 조그만 군이다. 소록도 등 170여개의 유`-`무인도를 거느리고 있고 이충무공의 첫 부임지인 발포진이 있으며 특산품으로 유자가 유명하다는 정도 외엔 우리 역사에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곳이다.

    그러나 흔히 고흥을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고흥에서 ‘인물’이 많이 나온다는 말부터 꺼낸다. 인구 11만여명에 불과한 조그만 군이지만 누구나 ‘알만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다.

    우선 면면을 살펴보자. 고흥 얘기를 꺼내면 호사가들은 ‘장사의 고장’이란 수식어를 말머리에 올리곤 한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60, 70년대를 풍미하며 ‘박치기’ 하나로 링을 제패한 프로레슬러 김일이 고흥군 금산면 출신이다.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유제두도 두원면이 고향이다.

    ‘추억의 인물’만이 아니다. 이번 시드니올림픽 남자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장용호(24) 선수도 고흥사람이다. 삼성화재 배구팀의 신진식 선수, 한전 코치로 새 마라톤 인생을 열고 있는 김재룡씨도 이곳 출신.

    정계도 만만찮다. 16대 국회의원 273명(전국구 포함)중 박상천, 송영길(인천 계양), 이상수(서울 중랑갑), 장성민(서울 금천) 의원 등 민주당 의원 4명이 모두 고흥 출신. 단일 군 출신으론 가장 많은 수다.

    이미 작고했지만 대중당 당수로 1967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했던 월파 서민호와 공화당 시절 정치인으로 건설부 장관을 지낸 신형식씨도 고흥이 고향이다. 세간에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는 5공 정권의 실력자 장세동씨(64)가 고흥 출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 또한 흔치 않다.

    경제계에선 몰락한 ‘율산그룹’의 부활을 꿈꾸는 신선호(53) 센트럴시티 회장과 신윤식 하나로통신 대표를 꼽을 수 있다.

    문화예술계에선 한국화가 천경자씨(76)가 대표적이다. 가사전달이 확실하며 끊고 맺음이 분명한 동초제의 창시자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 동초 김연수(작고)도 고흥 금산면 출신. 지난해 자신의 작품 5000점(시가 200억원 상당)을 고려대에 기증한 서예가 송정희씨(55)의 고향도 고흥이다.

    이 밖에도 최문휴(65·봉래면) 국회도서관장, 경원대와 호남대 총장을 지낸 이대순씨(67·점암면)도 ‘고흥맨’이다.

    고흥이 적잖은 인물을 배출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고흥사람들은 이른바 ‘고흥 인물론’을 어떻게 해석할까.

    “고흥엔 철로가 없다. 육로로 외지에서 찾아갈 때는 텃세 심하기로 유명한 벌교를 지나야만 한다. 특유의 강한 결집력이 생긴 건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예로부터 씨름이 유명해 ‘고흥 가서 힘자랑 말라’는 얘기도 있다. 김일도 씨름선수 출신 아닌가.” 남도의 풍류문화를 되짚어본 저서 ‘태산풍류와 섬진강’의 저자인 송수권(60·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고흥군 두원면 출신) 시인은 “외부와의 교류가 뜸해 유난히 향토색이 짙고 자생력이 강한 것이 고흥사람의 특성”이라 말한다. 강한 ‘촌놈’기질도 타지로 나간 고흥 출신들의 ‘수구초심’을 북돋웠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풍수지리학계에서도 고흥은 관심의 대상이다. 처가가 고흥인 최창조씨(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고흥은 반도국가의 남단에 위치한 또 하나의 반도다. 말하자면 반도 중의 반도인 셈이다. 이런 지리적 환경은 고흥사람들에게 쉽게 기회를 접하게 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반도적 특성을 키워줬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언제나 돌발상황에 대비해 ‘깨어 있는’ 자세가 오래 몸에 밴 생활환경이 ‘인물 탄생’의 토양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로 유별난 고흥 특유의 기질을 한꺼번에 따져보기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일반론만으로 근접한 분석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흥은 남도에서도 가장 인심이 후하고 외지인들에게 호의적인 곳이다. 지자제 실시 이전 외지에서 발령받아 온 공무원들은 처음엔 오지라고 낙담하다 나중엔 순후한 인심에 반해 유임운동까지 펼 정도였다.” 박상천 의원의 이 말은 외지인에 대한 포용력과 함께 고흥사람들에게 출향인사와 고흥 지역민을 서로 연결하는 끈끈한 고리가 유난히 강고함을 시사한다.

    고흥향우회의 강한 결집력도 결국 유별난 공동체의식과 떼놓고 생각할 순 없을 듯하다. ‘1등 고흥건설’이란 21세기 비전을 내건 고흥군이 비전 달성의 방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과 협동’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고흥군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옛 속담처럼 고흥을 ‘언덕’ 삼은 아날로그형 애향심은 개인주의가 판치는 21세기에도 내내 유효할까. 지명 그대로 드높게 흥하고픈 꿈을 대물림하려는 고흥(高興)의 미래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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