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인권·민주주의·통일… 아직 멀고도 험한 과제

노벨상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끊임없는 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 입력2005-06-2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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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민주주의·통일… 아직 멀고도 험한 과제
    □ 단신 1

    10월14일 영국 BBC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불교신자인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해달라며 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거부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권위’에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어는 “오랜 불교 전통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이 평화상 수상자로서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오는 11월16일 방한할 예정이나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정부로부터 입국 연기 요청을 받고 있다.

    □ 단신 2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되던 시각,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으로 행진을 벌이던 전교조 교사들이 전원 연행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성명서를 통해 “13일 오후 5시40분부터 6시20분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공교육 파탄정책 철회 △연금법 개악 기도 중단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마친 후 청와대 정문까지 행진했던 전교조투쟁선봉대 400여명이 경찰에 의해 전원 연행됐다”며 “연행 과정에서 전교조 경기지부 교권국장 이선용 교사(41)가 경찰의 방패에 눈 옆이 찢어져 한국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날이지만 정당하고 절박한 요구 전달을 위해 대통령을 만나자는 교사들을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연행해간 현 정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느냐”고 성토했다.

    □ 단신 3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지난 10월11일 ‘북맑스’ 출판사 대표 김희준씨가 이문동 자택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이라는 이적표현물을 출판했다는 혐의로 형사들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집필한 앨릭스 캘리니코스는 영국 요크대 정치학 교수로 이미 올해 초 우리나라를 방문해 대학에서 강의도 한 바 있다”며 “서구에서는 당연시하는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한겨울”이라고 비난했다.

    위의 세 가지 사례는 우연히도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시기에 벌어졌다. 평화상 수상의 이유가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공적’ 때문임을 상기하면 유감스러운 일들이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물론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를 제외한 일들은 일일이 김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김대통령이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료들의 오랜 습성인 ‘알아서 기기’ 차원에서 벌어진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은 분명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김대통령이 이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지고 그 절박성도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사유 중 ‘가장 오래된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도 인권 신장에 대한 기여일 것이다.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기 이전에도 김대통령은 인권 신장에 대한 기여만으로도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게다가 김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이전에 이미 여러 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울의 봄’ 직후인 81년 수상한 오스트리아 브르노-크라이스키 인권상부터 98년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그리고 지난달 수상이 확정된 노르웨이의 라프토 인권상까지 모두 10여개에 이른다. 그만큼 김대통령은 인권 분야에 관한 한 ‘준비된 수상자’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노벨위원회는 김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이유에서 동티모르와 미얀마 등 동아시아 지역의 인권 향상에 대한 김대통령의 기여를 언급했다.

    그러나 시각을 국내 인권 상황으로 돌리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릴 일만은 아니다. 국내 인권 분야의 제도적 개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인권단체들이 노벨상 수상 이후 인권 분야의 가장 큰 과제로 꼽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문제. 김대통령의 집권 공약사항이기도 한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문제는 이를 국가기구로 하자는 인권단체의 안과 특수법인화해야 한다는 법무부 안이 팽팽하게 맞선 채 아직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는 비정부조직으로서 별도법인 형태의 인권위원회 구성안을 담은 인권법을 정기국회에 제출해놓고 있지만 이에 반대해온 인권단체들은 국가기구안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 등 정부기구의 인권 침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이들 부처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별도의 국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가장 첨예한 인권 분야 이슈 중 하나다.

    인권단체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21세기 인권국가로 가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관계자는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권기구 논란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김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평화상에 걸맞은 역할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양심수 석방이나 교도행정 개선 등 개별적 인권 신장 노력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김대중 정부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업적에 손색없는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교정책 전반에서도 인권 존중의 자세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 이주영 팀장은 “동티모르 파병이나 미얀마 민주화 지원 등 개별적 성과는 있었지만 이같은 인권외교가 외교정책 전반으로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적인 인권운동가 왕단(王丹)의 입국을 정부가 거부한 최근의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국제사회의 인권 수준을 앞장서서 끌어갈 수 있는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또 IMF 사태 이후 속출하고 있는 실업자군을 비롯해 사회적 취약 계층의 인권 문제에도 보다 적극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인권 신장의 혜택이 국민 전체에 골고루 나뉘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가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대표성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돼버렸다. 의회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급속한 국제 정세의 변화에도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의회정치가 이렇듯 위기를 맞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커다란 것은 정치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당정치가 ‘올바른 진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당정치에서 하의상달의 민주적인 리더십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 조성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정치지도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정치개혁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당만큼은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형태로 두길 원하는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군대식 조직을 원하고 있는 것. 김대통령도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에서 지난 전당대회 기간 당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잇따랐지만 결국 당 쇄신작업과 당직 개편이 유보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김대통령도 국내 정치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개혁은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첫번째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도 정치개혁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국회 의석수 삭감이 유일한 개혁이라면 개혁이다. 총선에서의 대폭 물갈이는 정치권의 자정 노력보다는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에 따른 결과였다.

    물론 소수 정권의 한계가 정치개혁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은 김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정말로 정치개혁의 실천의지를 갖고 있다면 자금세탁방지법이나 부패방지법 등의 제정이 아직도 정치권 논란 사항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권을 획기적으로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중앙선관위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계속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실에 이르면 김대통령 역시 정치개혁의 공염불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불행하게도 김대통령에게는 정치개혁을 추진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정치권은 이번 정기국회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차기 대선 정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물론 노벨평화상 수상에 따른 억지력이 당분간 발휘되겠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을 것이다. 만약 김대통령이 내년 초까지 정치개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김대중 정부에서도 정치개혁은 실패한 것이 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남북관계는 그동안의 ‘관계 개선’ 단계에서 ‘평화정착’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을 대내외적으로 마련했다. 노벨상 수상이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없는 구속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 역시 한층 높아진 위상으로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의 주도력을 강화해가며 남북간 화해 및 교류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발전시키는데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야말로 평화통일을 위한 기본 토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대통령의 재임시 통일정책은 남북평화협정 체결로 그 대미를 장식할 가능성이 크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안에 2+2(남북한+미국 중국) 방식의 남북평화협정체결을 마무리짓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2 방식의 남북평화협정은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가 남북한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휴전 협정의 당사자를 모두 포함시킴으로써 법리적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그러나 남북평화협정까지는 아직 많은 고비와 단계가 남아 있다. ‘한반도 종전(終戰)선언’은 그 첫 단계의 고비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남북 기본합의서의 남북상호 불가침 조항을 재확인하며, 나아가서는 동맹국들에 의한 개전(開戰)도 반대하는 것이다. 약간의 변화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를 북한과 미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북한의 ‘북-미 평화협정 체결론’을 포기시키고, 남북평화협정 체결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이야말로 남북간 평화 무드의 공고화나 교류 확대를 위한 획기적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내년 초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이 달성되면 2단계로 군비통제 및 군비 축소, 유엔사 지위 변경 등의 과제가 잇따르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남북한 군 당국자간 핫라인을 설치하고, 군 고위인사의 교류를 정례화하며,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제한적으로 군비를 축소하는 조처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유엔사의 정전협정 감시 기능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로 이관하거나 주한미군사령관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처럼 1차와 2차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남북평화협정 체결은 가능하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비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또한 이를 위해 남-남이 얼마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국정치의 상수인 ‘남-남 갈등’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남북의 자주적 평화협정 체결로 나가는 길이 지극히 험난할 것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김대통령이 10월14일 민주당 간부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받으면 끝이지만, 노벨상은 받는 게 시작 같은 느낌이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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