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3

2000.07.20

이재용, 삼성 ‘오너’ 등극은 언제쯤…

‘인터넷 사업 총괄’ 계열사 지분 확보 ‘착착’ 분위기 무르익어…재벌 압박하는 정부, 여론이 변수

  • 입력2005-07-22 12: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재용, 삼성 ‘오너’ 등극은 언제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는 이회장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180도 바꿔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삼성 계열사들의 소유권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그룹의 운명과 이재용씨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이재용씨가 이건희 회장의 ‘대권’을 승계하기 위해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거나 소프트랜딩 시나리오가 삼성 내부에 마련되어 있다는 소문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최근 이재용씨의 승계와 관련한 신규 법인 설립 등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이건희 회장의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이후 빠른 속도로 가시화되고 있다. 때마침 “재용이가 정보통신(IT)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는 이건희 회장의 언급도 나왔다. 미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인 이재용씨가 귀국하기 전에 인터넷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삼성호(號)’가 선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재용씨가 하버드대에서 전자상거래와 관련한 주제의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최근 삼성의 인터넷 분야 신규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구조조정본부가 주축이 돼 지난 5월 출범시킨 e삼성은 이재용씨가 자본금 100억원 중 60%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 노릇을 하고 있는 회사이다. 말하자면 삼성 계열사에서 추진하는 각종 인터넷 사업에 대해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주회사의 역할을 한다. 이재용씨 몫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은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가 각각 20%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20%는 e삼성 임직원들 소유로 되어 있다. e삼성은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4개 주요 거점 국가에 현지 법인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 5월 공식 출범한 e삼성은 구조조정본부 산하의 인터넷 사업 태스크포스가 모태가 되어 탄생했다. 재무팀 신응환 이사가 이 태스크포스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e삼성 출범에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삼성의 주요 임직원 역시 모두 삼성전자 삼성SDS 등 삼성 계열사 출신들. 최근까지도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에서 e삼성으로 산발적으로 인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재용씨는 e삼성에서 아무 직위도 맡고 있지 않지만 지분 60%를 소유한 대주주로서의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용씨가 e삼성 출범 과정에서 구조조정본부를 통해 해외 법인 설립 과정 등에 대해서만큼은 각종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해외 현지 법인 설립은 e삼성이 아시아 시장을 1차 공략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사업 초기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다.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제휴 파트너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인터넷 비즈니스의 글로벌화를 꾀한다는 전략은 e삼성의 자회사격인 오픈타이드코리아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아시아 최대의 글로벌 웹 에이전시(Web Agency)를 표방하며 지난 6월 말 공식 출범한 오픈타이드코리아는 삼성SDS와 제일기획이 같은 비율로 출자했고, 이재용씨가 최대 주주로 있는 e삼성인터내셔널이 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삼성전자 미주 현지 법인들의 출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오픈타이드코리아 관계자의 설명. 오픈타이드코리아 역시 e삼성과 똑같이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4개국에 현지 법인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오픈타이드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영입된 김기종 대표이사는 삼성SDS 미주 법인의 영업총괄 이사 출신. 삼성SDS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e삼성프로젝트를 총괄한 신응환 이사가 영입했다. 임직원들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서 인터넷 사업을 벌이던 우수 인력들을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하는 형식으로 채워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에서 벤처로 빠져나갔던 직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오픈타이드코리아로 복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펼치는 글로벌 인터넷 사업의 중심은 오픈타이드코리아에서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이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 삼성의 승계자인 이재용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픈타이드코리아에는 미 예일대 현직 교수를 비롯해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경력 컨설턴트 등 내로라하는 우수 인력의 이력서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은 이재용씨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삼성의 인터넷 사업 분야를 총괄하는 CEO 자리를 만들어놓고 이재용씨가 귀국할 경우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른바 ‘이재용 소프트랜딩 시나리오’. 삼성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앞으로 수익 전망이 가장 밝은 인터넷 분야의 별도 법인을 만들어놓고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용씨를 그 자리에 앉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재용씨 손에 쥐어준다는 전략이다.

    추측 수준에 불과하던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 것은 지난 3월 삼성SDS에 소속되어 있던 유니텔 사업부가 파격적 조건으로 회사 분할 과정을 밟으면서였다. 분사에 따른 조건치고는 대단히 좋은 조건으로 유니텔을 삼성SDS에서 떼어내 독립법인화하자 삼성 주변에서는 이재용씨가 귀국과 동시에 유니텔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한국 재벌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나타나는 ‘힘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삼성그룹 내에서는 인터넷 분야의 주도권을 놓고 삼성물산과 유니텔 등이 상호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삼성 관계자는 “유니텔 분할을 계기로 삼성의 인터넷 사업이 그룹과 선을 그으면서 ‘재용씨 몫’으로 떨어져 나가리라는 것이 정설이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강도 높은 재벌 압박 작전을 펼치던 마당이었기 때문에 재벌의 대명사인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아직 재벌 이미지가 묻지 않은 재용씨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씨의 대권 승계 작업이 최근 잇따라 출범한 인터넷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삼성 계열사들을 통해서도 이재용씨의 지분 확보 전략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e삼성을 제외하고 이씨가 주주 자격으로 소유한 삼성 계열사 지분만 보더라도 삼성에버랜드 62.5%, 삼성SDS 32.8%, 삼성전자 0.9% 등에 이르고 있다. 삼성SDS 지분은 재용씨 등 4남매가 보유한 것으로 재용씨 몫만 따지면 17% 정도. 그리고 삼성에버랜드 주식은 이미 지난 96년 삼성에버랜드의 전신인 중앙개발 당시 사모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취득한 것이다.

    당시 이재용씨는 삼성전자에서 발행한 450억원대의 사모전환사채를 인수한 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며 다량의 지분을 확보했었다. 삼성SDS도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해 재용씨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줬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계열사 지분은 97년 이후 지금까지 참여연대와 삼성측이 한치의 물러섬 없이 전쟁을 벌이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참여연대측의 전환사채 발행무효소송은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음으로써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또한 오래 전부터 삼성그룹 소유의 막대한 부동산을 관리해와 그룹 내에서도 적자(嫡子)기업으로 꼽혀온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인 이재용씨는 이 회사를 통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는 20여개 삼성 계열사의 대주주 역할을 하며 삼성그룹 내에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생명에 20% 지분을 가진 대주주이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SDS에서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이건희 회장이 마음을 바꾸더라도 경영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재용씨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 어떤 자격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느냐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삼성의 인터넷 사업 총괄 자회사인 e삼성의 대표이사 자격을 맡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재용씨가 다른 재벌 2, 3세와는 달리 아직 직장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 신분이라는 점을 고려해 당장 대표이사를 맡지는 않고 계열사에서 일정한 ‘수련’ 기간을 거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시민단체들이 그동안의 편법상속과 편법증여에 대해 앞으로도 형사고발 등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도 재용씨가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 중 하나다. 재용씨의 소프트랜딩 시나리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적’요인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