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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정’

촌스런 제목 뛰어넘은 ‘사랑의 헌시’

촌스런 제목 뛰어넘은 ‘사랑의 헌시’

촌스런 제목 뛰어넘은 ‘사랑의 헌시’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가요계에 한창 랩과 힙합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을 때, 청승맞은 가사와 멜로디의 이 느려터진 노래는(더구나 이 노래는 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예상 밖으로 엄청나게 히트했다.

유치하리만치 단순한 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잊은 줄 알았던 추억과 가슴 깊숙이 묻어둔 사랑의 향기를 맡은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따라 발맞춰 함께 변해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이렇듯 우리 인생에는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배창호감독의 신작 ‘정’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속도’나 ‘디지털’ 등 요즘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개념과는 많이 동떨어진 영화다. 인파에 휩쓸려 바쁘게 허겁지겁 달려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파래서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랄까. ‘우리 영화니까…’ 하는, 반쯤은 의무감으로 들어선 극장에서 만난 세상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정다워서 그 자체가 약간의 충격이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스타워즈’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보면서 놀라운 테크놀로지의 향연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충격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가 매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다 혼자 몸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여자의 기구한 인생살이….’ 한국판 ‘여자의 일생’이란 이 영화의 소재는 참으로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소설책으로, 드라마로,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접해왔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의도로 이렇게 케케묵은 이야기를 들고나온 걸까’ 하는 의구심은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 뭉클한 감동과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것은 소재의 ‘진부함’을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보편성’으로 바꿔놓은 감독의 힘이었고, 놀랍도록 생생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힘이었다.



주연을 맡은 김유미씨는 배창호감독의 부인이다. 배감독은 전작 ‘러브스토리’에서도 김씨를 주연으로 기용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아내에 대한 사랑의 헌시’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씨의 연기는 그 자체로 훌륭하게 영화를 살려낸다.

코엔 형제의 걸작 ‘파고’에서 조엘 감독이 부인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주인공으로 기용해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영화 ‘정’의 김유미씨도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 ‘꽤 괜찮은’ 배우임을 입증했다.

시사회에 참석한 젊은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뒤 요란하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도 오랜만에 보는 광경. 이 영화는 국내 개봉 전 이미 해외 영화제들에 초청돼 여러 상을 받았다.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영화 제목만 보고, ‘이런 영화가 재미있을 리가 있겠어’하고 외면해 버리는 관객이 없길 바란다.

‘정’은 어떤 영화?

한 폭 동양화에 담은 우리 전통문화


“우리의 민족정서를 ‘한’이라고 하지만, 나는 ‘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정이야말로 한국인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원형질처럼 우리 마음 속에 흐르는 본질적 정서를, 외적으로는 우리 전통 생활 문화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다.”(배창호)

191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세월을 담은 ‘정’을 찍기 위해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사라져가는 유형-무형의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우리 산하의 넉넉한 사계절과 연지 곤지를 찍어바른 신랑 신부가 맞절하는 초례청, 시골장터, 나루터 풍경은 우리 고유 문화와 민족 정서의 시각화에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두루 담은 스크린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다음은 영화의 줄거리.

‘순이’(김유미)는 열여섯에 시집을 가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신랑과 엄한 시어머니 사이에서 10년간 고생만 하다 유학간 신랑이 신여성을 데리고 오자 집을 나선다.

산골에서 혼자 살던 순이는 독장수 덕순(김명곤)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그마저도 잠시뿐. 덕순이 죽고 혼자 힘겨운 삶을 꾸려가던 순이는 우연히 찾아온 복녀(윤유선)의 아들을 제 피붙이처럼 키우며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육순이 넘은 순이, 그새 대학생으로 장성한 아들 돌이를 버스에 태워보내고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가에 고운 빛깔의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다.




주간동아 239호 (p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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