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지리산 천왕봉이 무너져 내린다

잇따른 산사태로 10여곳 커다란 ‘상처’ …해발고도 높아 생태 복원 더욱 힘들어

  • 입력2006-01-25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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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왕봉이 무너져 내린다
    한반도의 등뼈이자 척추인 백두대간이 맺음하는 곳, 지리산 천왕봉. 그런데 최근 지리산이 원인 모를 산사태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지리산 산사태는 5년여 전부터 시작됐다. 98년 8월 집중호우로 인한 지리산 대참사 이후 산사태는 더욱 빈번해졌다. 현재 확인된 곳만 약 10개소. 동부 지리산의 정점인 세석평전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주 능선을 중심으로 수많은 계곡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능선 한가운데 등산로가 나있다. 주로 이 등산로 부근 주 능선에서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산사태가 시작된 곳은 대부분 주 능선 등산로에서 계곡 쪽으로 50∼200m 아래 지점. 피해상황은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치 큰 도로를 낼 때 녹지를 파헤치듯이 흙이 숲과 계곡을 쓸어내리며 골짜기를 향해 밀려와 있다. 주변에는 뿌리를 드러낸 거목과 바윗돌들이 뒤엉켜 있다.

    지리산의 산사태 지역은 해발고도가 1500m를 넘어 일단 산사태가 발생하면 식물이 다시 뿌리내리기 어렵다. 특히 지리산 주 능선 일대처럼 고도가 높은 곳의 생태계는 한 번 훼손되면 복원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너비 5∼20m에 길이 1∼5km에 달하는 이 지역이 산사태로 흙과 바위가 흘러내리면서 수목과 풀꽃들을 한순간에 휩쓸어가 버린다.

    현재 등산로와 가까운 일부 지역에서는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울창한 숲속에 가려져 있어 하늘에서 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지역은 발생지점도 확인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다.



    한국자원연구소 환경지질연구부장인 김원형박사는 지리산 산사태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대책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지리산 산사태의 피해규모는 길이 1km에서 5km가 넘는 곳도 있을 만큼 대규모다. 최초 발생지점을 보면 그리 넓지 않은데 흙이 급경사를 타고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도미노처럼 골짜기 숲을 갈아엎어 피해규모가 확대됐다. 사실 지금까지 지리산에서는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산지역의 산사태에 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확인된 것은 지리산 산사태가 지금까지 일어난 다른 지역의 산사태와 발생원인이나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500m 이상 지역의 산사태에 대해 연구가 거의 돼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원인규명에 어려움이 많다. 앞으로도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현재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등산객들의 눈에 쉽게 띄는 천왕봉 일대 피해지역만 복구하고 있다. 나머지 지역은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정책연구팀의 나공주과장은 “4월말에 우선 천왕봉부터 복구공사를 시작했다. 3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무너진 곳에 토목공사부터 하고 있다. 천왕봉 이외 지역에 대한 산사태 실태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산사태의 전반적인 상황과 원인 파악을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너져내린 곳에 기둥을 박고 돌과 흙을 채우는 토목공사로 복구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응급복구를 한 뒤에는 그 지역에 서식했던 식물들을 이식해 다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하는데 관리사무소측은 생태계 복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주 능선에는 해발 1500m를 전후해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구상나무군락, 주목군락, 가문비군락, 분비나무군락 등이 대규모의 숲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고산침엽수림은 남한에서도 가장 면적이 넓은 아고산대 생태계를 자랑한다. 이것의 가치는 남한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한라산이나 덕유산, 소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에도 구상나무군락과 주목군락 등이 있으나 지리산국립공원은 이 외에도 가문비나무군락, 분비나무군락 등이 모두 어우러져 숲을 이루기 때문에 연구가치로서도 최고다. 특히 백두산에 자생하는 가문비나무가 남한에서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오직 지리산 천왕봉뿐이다. 이는 백두대간이 자연생태계의 이동통로이자 연결고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고산침엽수림에는 야생동물도 만만치 않다. 야생동물 먹이사슬의 정점에 해당하는 반달곰을 비롯해 사향노루 수달 담비 등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이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다.

    산사태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자연현상으로 넘기기에는 발생 빈도와 피해면적이 너무 크다. 더욱이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은 국내 제일의 생태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한번 훼손되거나 원형이 변화되면 쉽게 복원하기 어렵다. 또한 서둘러 토목공사를 벌이기에 앞서 정밀진단과 조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신중한 생태계복원이 따라야 한다. 지금도 지리산 천왕봉은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구상, 가문비나무 등 피해 방치

    해발 1500m 일부에서만 서식, 보존가치 높아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일대는 남한 제일의 고산침엽수림을 자랑한다.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분비나무 등 가히 살아 있는 고산침엽수림의 전시장이다. 그러나 관리는 국내 제일이 아니다. 관리당국인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외면하는 가운데 대규모 군락이 점점 위협받고 있다.

    구상나무는 지난 99년 여름 장마와 태풍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서식 고도가 높아 태풍 때 강한 비바람에 쉽게 노출된다. 그래서 많은 구상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지거나 줄기가 부러지는 등 피해를 당했다. 등산로에서 확인된 것만 100여 그루가 된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개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은 반야봉 일대의 해발 1500~1700m 지역과 동부지리산 주 능선에서 많이 나타났다. 특히 선비샘-덕평봉-칠선봉-세석평전-촛대봉-천왕봉-중봉-하봉 일대의 해발 1500∼1900m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를 본 구상나무는 나이가 약 50년부터 200년까지였다. 이 중 약 3분의 1 가량은 뿌리가 뽑혀 사선으로 쓰러져 있는 상태로 수형을 바로세우고 뿌리 부분에 대한 복구작업을 시도할 경우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복구작업을 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환경단체에서 관리공단측에 이런 사실을 전달하고 복원대책을 촉구했으나 공단측은 예산상의 이유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겨울이 되기 전에, 피해를 본 구상나무에 대한 응급처치를 비롯해 복원대책을 세웠더라면 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공단측의 방치로 올 봄에 대부분의 구상나무는 회생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on)는 한국특산종으로 전세계에서 한국에만 서식한다. 학명에 나타난 것처럼 종명도 koreana라고 한국특산종임을 밝혀주고 있다. 그것도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 1500m의 일부 지역에만 서식한다. 국내의 그 어떤 나무보다 보존가치가 높은 종이 바로 구상나무다.

    이와 함께 지난 98년 11월부터 보존대책이 촉구된 가문비군락 역시 방치된 채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남한의 가문비군락은 지리산이 거의 유일하다. 덕유산과 계방산, 설악산에는 몇 그루만이 살고 있다. 그런데 관리공단은 전혀 보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랜 나이로 추정되는 500년생 가문비나무 밑동에 등산로가 나있어 고사될 위기에 놓여 있다. 가문비군락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대책이 시급하다. 백두산에서 자생한다는 종이 지리산에도 자생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일년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수백명의 인력이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가문비와 같은 희귀수목과 생태계를 보호할 예산과 인력은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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