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4

2000.05.18

“세살적 투구 습관 여든까지”

  • 입력2005-11-14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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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살적 투구 습관 여든까지”
    귤나무가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야구도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각 나라마다 특색이 다양하다.

    힘이 넘쳐나는 미국 메이저리그엔 정면승부를 미덕으로 여기는 특성이 있다. 일본야구에선 ‘쿠세’라는 말이 있다. 버릇이라는 이 말에서 보이듯 일본 프로야구는 상대를 파고들어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섬세함을 강조한다. 한국야구는 이 둘을 대충 버무려 놓은 것 같다. 그래서 파워와 섬세함 모두 충분치 않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LA다저스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서 두 자리 승수를 계속 거두고 있지만 미국에 진출한 나머지 선수들 중 확실하게 풀타임 메이저리거 도장을 찍은 선수는 아직 없다. 잠수함 투수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마찬가지다. 언더핸드스로로는 드물게 150km가 넘는 직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제구력이 불안해 위태위태하다. 게다가 주자가 있을 때 보크를 범하는 일이 잦아 승부를 어렵게 끌고 가기도 한다. 김병현의 보크는 한국 투수들의 고질적인 버릇이다. 왜 한국 투수들은 보크를 자주 할까. 타자의 파워를 파워로 받아치는 정면대결을 피하고 싶은 심리 때문은 아닐까.

    지난 4월에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를 살펴보자. 5월3일 부산고-속초상고의 4강 결정전. 1대3으로 뒤지던 속초상고가 8회말 2득점해 동점을 이뤘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속초상고 투수 조형식은 타자들의 도움으로 패전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으나, 결국 연장 12회에 위기를 맞았다. 1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공포’의 추신수. 추신수는 지난해 이 대회 MVP이자 메이저리그 진출 유혹을 받고 있는 투-타에 능한 초특급 선수다. 팬들로서는 흥미진진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시시했다.

    조형식이 초구를 던지려는 순간 전정현 주심이 마스크를 벗고 소리쳤다. ‘피처 보크!’ 투수가 투구 동작을 일으킨 뒤 동작을 멈춰 보크에 해당된다는 판단이었다. 3루 주자는 환호성도 못 지른 채 홈을 밟았고, 이날 경기는 부산고의 승리로 끝났다. 조형식은 경기 후 “긴장이 되니 옛날의 나쁜 투구 습관이 자연스레 나왔다”며 안타까워했다. 공교롭게 그의 상대 타자였던 추신수도 한때 주심의 보크 콜을 유도할 정도의 비슷한 투구 습관을 갖고 있었다.



    동대문구장의 유망주들을 지켜보러 내한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판단은 한결같았다. “한국 고교 투수들의 투구 동작에서 보크로 판단될 만한 것이 많다. 어려서 반칙투구를 잡아 주지 않으면 프로에 가서도 마찬가지 유혹을 받게 된다. 스포츠의 가치는 정정당당한 정면승부에 있다. 보크는 정면승부의 박진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일본에선 사정이 다르다. 일본프로야구는 더블키킹(투수가 와인드업 뒤축이 되는 다리의 반대쪽 발을 들었다가 허공에서 다시 한번 들어올리는 행위)까지도 정상적인 투구행위로 허용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파워와 섬세함 중 어느 쪽으로 진로를 잡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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