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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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닮은 84명의 ‘환상 자치구’

30가구 ‘우리 식대로’ 삶 꾸려…경쟁 범죄 스트레스 없지만 ‘물고통’은 심각’

  • 입력2005-11-01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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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닮은 84명의 ‘환상 자치구’
    마라도는 9만여 평의 평평한 잔디광장이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골프장’ 같다. 동서의 길이가 고작 500m. 이 섬엔 축구장이 있는데 공을 힘껏 차면 절벽 아래 바다로 빠진다.

    주변 바다는 거칠기로 유명해 요즘도 배가 자주 끊긴다. 30가구 84명 주민들은 한반도 최남단 이 섬에서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산다. 3대째 이 섬에 사는 가정도 있고 육지에서 제 발로 들어온 이들도 있다. 이들은 왜 여의도공원(7만여 평)만한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려는 것일까. 84명이 엮어내고 있는 ‘마라도 커뮤니티’에선 한국의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삶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4월25일 오전 10시30분 제주 모슬포항에서 출발한 첫 배가 도착했다. 마라도 주민들의 하루는 연락선의 도착과 함께 시작된다. 주민 대다수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민박, 해산물 판매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들은 푸른 초원, 검은 바위, 흰 파도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한 남자가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어∼ 난데, 내가 마라도로 옮겼어.” 그러자 옆에 있던 신부가 “까르르” 웃는다. 이들은 1시간30분 후 왔던 배를 타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음 배가 올 때까지 섬엔 다시 적막이 찾아온다.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고권교사는 “마라도에서의 삶은 한 마디로 외부세계와의 단절과 연결이 반복되는 과정”이라고 정의내린다. 고교사의 조사에 따르면 마라도엔 하루평균 700명, 연간 2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남제주군에서의 민박 소득도 마라도가 1등이다. 주민 1인당 연간 소득은 2000만원 선. 마라도엔 ‘전세’가 없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자신의 집과 땅을 갖고 있다. 소득세도 전액 면제. 제주도까지 뱃삯도 무료다. 남자들은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을 받지 않는다. 마라도가 한국 최남단이기 때문에 바다 밖 세계에서 마라도에 안겨준 ‘선물들’이다.

    마라도엔 국토최남단 기념비와 기념석, 통일기원비 등 많은 상징물들이 있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2명밖에 없지만 폐교되지 않는다. 치안기관(마라경찰관출장소), 의료기관(마라도보건진료소), 행정기관(리사무소), 교통기관(화물차 6대와 등대, 선착장), 전화국, 발전시설, 사회단체(마라도해녀회), 책방, 다수의 식당, 청소부(3명), 쓰레기소각장(마라도에서도 분리수거를 한다)이 있다. ‘마라도 전역을 배달한다’는 ‘자장면 가게’도 있다.



    마라도기원정사, 마라도교회(신도 3명) 등 불교와 기독교 사원도 들어섰다. 4월25일 마라도 등대 주변에선 ‘뽀르찌웅꿀라’라는 천주교회의 건축공사가 한창이었다. 마라도의 가톨릭신자는 1명. 가톨릭신문은 3월26일자 1면 머릿기사를 이렇게 실었다. ‘국토최남단 마라도에 성전 건립.’

    마라도는 ‘소형의 국가’ 형태를 띠고 있는 셈이다. 마라도 주민 김도형씨는 “마라도에선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국토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이 모든 경제논리에 우선한다”고 말했다.

    4월9일 오후 10시 마라도에서 초고속인터넷설치작업을 하던 ㈜모두정보네트워크의 김기병과장은 숙소 앞 우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자체 발전하는 전기가 늘 부족해 밤이면 마라도는 암흑세상이 된다. 한 주민은 “육지에서처럼 전기를 쓰면 한 집에 전기료가 50만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마라도 주민들은 요즘 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하수가 안 나기 때문에 주민들은 섬 곳곳에 우물을 파놓거나 물탱크를 설치해 빗물을 받아 쓴다. 4월 들어 비가 10mm밖에 오지 않았다. 먹는샘물 값은 육지의 4배 정도. 마라도 내 ‘별장민박’ 주인은 최근 개설된 마라도 홈페이지에 이런 광고를 올렸다. “민박집 중 가장 큰 물탱크 확보.” 등대는 마라도 주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 물이 많아 유일하게 ‘세탁기’로 빨래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 물 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주민 김진석씨는 “마라도는 문명과는 일정 부분 단절된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단절은 불편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섬에 ‘공동체정신’과 ‘평화’를 불러왔다. 그것은 언어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마라도 사람들은 바닷가를 ‘바당밭’이라고 부른다. 수심이나 해조류에 따라 ‘덕’ ‘통’ 등 많은 변종이 있다. ‘ㄴ·리는 그정’, ‘목안할망통’, ‘물그러진그정여’, ‘작지끗’ 등 마라도엔 마라도만의 지명이 있다.

    4월23일 김순 아주머니의 아들이 모슬포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마라도 전 주민이 배를 타고 나가 하루종일 결혼을 축하해주고 함께 돌아왔다. 한 집에 경조사가 있으면 모든 마을 주민이 함께 움직인다. 책방을 하는 마라도주민 라양옥씨는 이를 ‘마라도의 동화력’으로 설명한다. “84명의 주민 중 이곳에서 출생한 주민은 20여명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제주도나 육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라도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주민들은 이웃을 친-인척으로 여기는 마라도 문화에 급속하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마을의 중요한 일은 이장 해녀회장 파출소장 등대장 교사가 중심이 돼 주민들 스스로 결정한다. 마라도 주민에겐 우린 우리 식대로 산다는 생각이 있다.”

    마라도의 대표적 속담으로 ‘마라도 모기광 용수 모긴 사돈헌다’는 말이 있다. ‘잇속 따지지 말고 적당히 맞춰서 사는 게 낫다’는 이곳 주민들의 생활관이 녹아 있다고 한다. 마라경찰관출장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마라도에선 사소한 시비나 폭행, 고소`-`고발도 없었다. 민박집들끼리 손님을 끄는 과정에서 분쟁이 나올 법도 한데 마라도에선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이원국소장은 “마라도는 ‘범죄’도 ‘경쟁’도 ‘스트레스’도 없는 사회”라고 말했다.

    서울 화곡동에 살다 1년 전 마라도로 이주해온 이상천씨는 자기 손으로 민박집을 지었다. 그는 “공기(工期)에 쫓길 일도 없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시인과 소설가들로부터 노트북을 들고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인터넷은 마라도의 자연과 동화돼 ‘창작’의 환경이 됐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마라도 언덕에 올라 두 팔을 펴면 이 섬의 동서남북 해안선이 모두 한 아름에 들어온다. ‘최남단 마라도’라는 책을 쓴 문소연씨는 이를 마라도에서의 삶과 연관지었다. “같은 자리에 서서 ‘해돋이’와 ‘해지기’를 본다. 여기서 떠서 바로 저기로 지는 해라니! 그 안에 뭉뚱그려진 하루라는 시간개념은 얼마나 매끄러운지…. 더 이상의 절제와 여백을 상상할 수 없는 곳. 산다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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