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2000.05.11

박세직과 정몽준, 궁합이 안맞는다구?

예산 편성·후원은행 선정 등 곳곳서 파워게임…대회준비 ‘숨은 암초’

  • 입력2005-11-01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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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직과 정몽준, 궁합이 안맞는다구?
    98년 8월 올림픽회관에서 `2002년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조직위가 마련한 첫 세미나인데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한국 체육계가 힘을 모아보자는 자리였던 만큼, 첫날 박세직 조직위원장(67),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49), 김운용 대한체육회 회장(69) 등 체육계 주요 인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축사를 맡은 민관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은 단상에 오르자 이 세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아 높이 치켜들게 한 뒤 “대한민국 스포츠는 이 세 사람이 손을 잡으면 된다”는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체육계 인사는 “민명예회장의 말씀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세 사람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마지못해 손을 잡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민명예회장의 말을 뒤집어보면 “지금까지 이 세 사람이 손을 잡지 않아 한국 스포츠가 잘 안됐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체육계 원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세 사람의 손을 잡게 할 만큼 관계가 악화됐다는 것인가.

    정몽준회장과 박세직위원장의 알력은 이미 체육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 월드컵 개최 준비로 자주 국제 무대에 나서야 하는 두 사람이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공동 개최국 일본과의 회의석상에서도 좀처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을 노출해 국제적으로도 불화설이 정설로 돼 있다.

    지난해 3월 박위원장이 일본의 개최도시 방문에 앞서 한국 주재 일본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요미우리 신문기자가 “항간에는 정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잠시 얼굴이 굳어진 박위원장은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잘 협조해 나가고 있다”며 노련하게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99년 12월7일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 예선 조추첨 행사에 참석한 두 사람은 누가 상석에 앉는지를 놓고 자존심 경쟁을 벌여 소문대로 불편한 관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올 4월17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 마련된 ‘한-일 우정 걷기대회’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띤 채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행사 직전까지 누구 이름이 먼저 소개되는지, 누가 먼저 인사말을 하는지 등 의전 문제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이 행사에서 FIFA부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이자 2002년 월드컵조직위 부위원장이 조직위원장보다 의전상 우선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두 사람의 갈등은 2년 전 월드컵 조직위원회 이동찬위원장(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퇴진하고, 박세직씨가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후임자를 물색하면서 자민련 박세직의원과 국민회의 한광옥씨를 유력한 후보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한광옥씨가 위원장 자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다, 외국어가 능숙하고 88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른 경험을 들어 김종필 당시 총리가 박의원을 적극 추천하면서 조직위원장 자리는 자연스럽게 자민련 몫이 됐다.

    그러나 축구협회로 대표되는 축구계에서는 박의원에 대한 반감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이 위원장을 해야 한다거나, 굳이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의 의중을 곧바로 헤아릴 수 있는 최측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든 박의원의 취임을 막으려는 분위기였다.

    이처럼 박위원장 체제 출범단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축구협회와 조직위는 그 뒤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협화음을 연출했다.

    사실 이동찬위원장이 조직위를 이끌 때는 축구협회와 조직위는 별 탈 없이 굴러갔다. 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재계 원로인 이위원장이 아들 같은 정회장을 다독거리며 호흡을 맞췄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박위원장 체제가 된 뒤 두 수장간에 충돌이 잦아진 것을 놓고 “너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즉, 하늘에 두 태양이 뜨려고 경쟁하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정회장은 93년 대한축구협회장을 시작으로 94년 FIFA부회장, 같은 해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을 아우르면서 한국 축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96년 불가능할 것만 같던 월드컵대회를 유치시키면서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고히 했고, 단순한 축구인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만큼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됐다. 다만 지나치게 승부욕이 강해 다른 사람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박위원장의 정계-체육계 명함도 정회장 못지 않게 화려하다. 하나회 출신으로 전두환 전대통령과 함께 정계에 진출한 박위원장은 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한 박위원장이 월드컵 스타 자리를 그렇게 만만히 정회장에게 양보할 리 없었다. 더욱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경쟁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렇듯 FIFA부회장으로서 월드컵 유치 공로를 앞세워 조직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정회장과, 조직위를 이끄는 수장이면서 한국 체육계 원로로서 대한축구협회장인 정회장을 거느리고 싶어하는 박위원장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두 수장의 싸움이 단순한 자존심 경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축구협회와 조직위간에 알게 모르게 퍼진 주도권 싸움이 대회준비 업무에 차질을 빚을 정도가 됐다.

    지난해 말 월드컵조직위원회 총회에서는 예산안을 놓고 두 사람이 격돌했다. 박위원장이 최종 확정하기에 앞서 의례적으로 “사업계회과 예산안에 대해 이의가 없느냐”고 묻자 수석부위원장인 정회장이 “있다”고 대답해 회의장은 아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회장은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어떻게 예산안을 확정하느냐”며 버텼고 결국 회의가 한 달 뒤로 연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또 축구협회에서 조직위로 2명의 실무자를 파견하는 일조차 괜한 오해와 잡음으로, 월드컵 경기 일정을 짜야 하는 조직위 경기부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사람을 파견하려 해도 조직위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주장이고, 조직위는 사람을 보내달라는데 축구협회가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업무를 할 수 없다고 불평을 토로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연초부터 전개된 2002년 월드컵 공식 후원은행 선정 과정 또한 본의 아니게 양 조직의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됐다. 공식 후원은행이 되면 월드컵 입장료 입금과 1억 달러(약 1200억원)에 달하는 FIFA 지원금을 예치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광고 효과를 누리게 된다. 당연히 주요 시중은행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중 서울은행은 한국의 월드컵 유치가 불투명한 상태였던 94년부터 월드컵유치위원회 후원은행을 자청했고 98년에는 대한축구협회 후원은행이 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작전을 펼쳐왔다. 지금까지 서울은행이 낸 축구발전기금만 해도 56억원. 또 축구사랑 캠페인, 월드컵 소식지 발간, 티켓발매 전산시스템 구축 등 ‘월드컵 공식 후원은행’으로 선정되기 위해 6년간 공을 들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조직위가 후원금 약정 액수만을 기준으로 은행을 선정하겠다고 하면서 서울은행의 짝사랑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제 지난 3월 조직위는 주택-서울-외환-조흥은행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그 가운데 가장 적은 액수를 써낸 서울은행을 탈락시키고 나머지 3개 은행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올렸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축구협회도 당황했다. 조직위측에 그동안 축구발전에 기여한 서울은행의 입장을 참작해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어도 결정을 번복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정회장이 “후원은행으로 선정되려면 축구팀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귀띔해 서울은행은 1월 중 부랴부랴 해체된 축구팀을 재창단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낙방하는 바람에 정회장의 입장까지 난처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어 월드컵 본선 조추첨 장소를 놓고 조직위와 축구협회가 벌인 기(氣) 싸움은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으로 보아 축구협회의 판정승이 유력하다.

    애초 조직위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결정지으려던 것을 축구협회가 돌연 제주도 서귀포 경기장을 밀고 나오면서 두 조직 사이에 난기류가 흘렀다(자세한 내용은 ‘주간동아’ 231호 4월27일자 참조).

    결국 조직위는 순위를 정하지 않고 두 안 모두를 FIFA에 제출하기로 결정했지만 불쾌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안이 FIFA로 올라가면 정몽준 FIFA부회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고 서귀포로 결정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 축구계에서 이번 사안만큼은 축구협회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조직위를 제치고 정회장이 서귀포를 발표한 것은 모양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조율 없이 두 안을 나란히 FIFA에 올림으로써 두 조직의 알력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셈이 됐다.

    조직위와 축구협회의 불협화음이 자꾸 문제가 되자 양측은 봉합 차원에서 4월 초 친선축구경기를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조차 두 사람은 시선을 피했다. 박위원장은 멀찌감치 앉아 구경만 하다 돌아갔고 정회장은 전후반 내내 축구실력을 자랑하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결과는 2대 1로 축구협회 승리. 화합 차원의 축구경기였지만 정회장의 승부욕은 이 자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후문이다.

    지칠 줄 모르는 두 사람의 파워게임은 어디에서 끝이 날까. 두 사람의 ‘한판 승부’를 관전해 온 이들은 지금 상태를 종료 휘슬을 불기 전 루스타임에 비유한다. 박세직위원장은 16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아 의원직을 잃게 됐고, 또 소속당인 자민련의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약화되면서 더 이상 그를 받쳐줄 후광이 사라졌다. 반면 정회장은 국회의원 4선 고지를 넘었고 FIFA 회장 자리와 대통령의 꿈을 꾸고 있다. 따라서 뻔한 결과를 기다리며 주심의 휘슬 소리만 기다리고 있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회장은 이 경기를 마치자마자 새로운 경기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2년 전 민관식명예회장이 함께 손을 들어주었던 또다른 한 사람, 김운용 대한체육회 회장이 있다. 김회장은 81년 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섰고 86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6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 한국 스포츠계의 황제가 둘이 될 수 없다면 다음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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