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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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대우, 다른 점과 닮은 점

현대 “대부분 ‘알짜’ 부채비율도 양호” …황제 경영 계속·구조조정 지연 땐 ‘위기설’ 사실로

  • 입력2005-11-01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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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와 대우, 다른 점과 닮은 점
    “현대는 대우와 다르다.”

    현대가 오죽했으면 “대우와 다르다”는 말을 듣게 됐을까.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재벌개혁의 수장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까지 나서 현대를 ‘변호’하고 있으니 현대나 이장관 모두 딱하게도 됐다. 이장관은 지난해 9월 현대그룹 자금 악화설이 나돌았을 때도 “현대는 대우와 다르다”고 현대를 엄호했다.

    현대에 대한 변호는 음모설로까지 발전했다. 누군가 현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인 ‘4대 음모설’이 그것이다.

    “대우에 돈을 떼인 외국투자가와 조만간 한국 자동차시장에 진출할 외국 기업들이 경쟁자가 될 현대의 힘을 빼기 위해 현대에 비판적인 평가를 유포시켜 현대를 흔들고 있다. 금융계열사를 많이 거느린 경쟁그룹이 ‘형제의 난’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현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시장에서 자금줄을 죄었다. 그룹 대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힘겨루기가 이번 사태를 만들어냈다. 정부가 4·13총선 이후 흐트러지기 쉬운 민심을 수습하고 차제에 재벌개혁을 완결하기 위해 현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모두가 그럴듯하긴 하지만 확인하기는 힘든 내용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대가 제기하는 이런 음모론은 대우가 무너질 때 대우 내부에서 제기했던 음모설을 연상케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대가 과연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근거없는 루머나 음모 따위로 그토록 궁지에 몰린 것일까. 정말 대우와 현대는 다른가.

    현대마저 흔들리면 국가 경제가 뭐가 되겠느냐는 걱정 때문에 이헌재장관이나 이용근금감위원장도 일단 현대를 감싸 주고는 있지만 현대의 문제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현대 계열사의 주가가 상당수 액면가에 못미치는 ‘부도 주가’ 수준임을 감안할 때 시장도 알 만큼 안다.

    현대는 4대 재벌 가운데서도 대우와 가장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60, 70년대 ‘개발연대’ 시대를 이끌었던 창업 1세대가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형제의 난’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듯 현대의 지배 구조는 전혀 현대적(現代的)이지 않고, 오히려 봉건적이다. 현대의 체질은 아직도 ‘몸집 키우기’나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아날로그 경영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는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전회장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듯 현대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은 곧 법이라는 데 있다. 재벌개혁을 추진했던 금감위 관계자는 대우사태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5대 그룹이 다 같은 재벌이 아니다. 삼성그룹은 외견상으로 이건희회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를 둘러싼 경영자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LG그룹도 구본무회장이 그룹의 전권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심하게 말해 LG그룹은 그룹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권이 나뉘어 있다. 현대와 대우만이 한 사람에 의해 그룹이 좌지우지된다.”

    두 그룹의 특성은 5대 그룹 부채비율 200%맞추기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5대 그룹 채권단 관계자들의 전언.

    “사실 삼성과 SK, LG그룹은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채근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필요성을 더 잘 안다. 현대와 대우가 문제다. 여전히 ‘비싼 자산을 헐값에 팔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해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하는 것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두 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아’였던 셈이다. 실제로 현대 구조조정 본부 관계자도 “구조조정도 좋지만 어렵게 마련한 자산을 헐값에 팔면 국가적으로도 손해 아니냐”고 강변하곤 했다.

    이처럼 과거에 얽매인 경영구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그룹 모두 ‘시늉내기 구조조정’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우그룹이 워크아웃 전까지 빚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수십조원어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해 빚을 늘린 것처럼 현대그룹도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현대는 이 과정에서 14조원이 넘는 자금을 주식시장에서 조달해 갔다. 이 때문에 빚은 크게 줄이지 않은 채 자본금만 늘려 부채비율을 낮추는 숫자 놀이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작년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정부가 재벌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 재벌은 유상증자를 통해 부실을 감추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한국의 구조조정을 비판했다.

    물론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대우와는 다르다. 현대 계열사는 대부분 알짜기업이다. 경쟁그룹이나 외국투자가들이 욕심낼 만하다. 빚으로 또다른 빚을 얻어 잠시라도 빚을 내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외발자전거 타기 경영’을 해왔던 대우 김우중 전회장에 비하면 현대의 경영 스타일은 돌파력과 함께 우직함을 갖추고 있다.

    대우가 정부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낮추지 못한 반면, 현대는 어찌됐든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췄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사실 대규모 장치산업이 대부분인 현대그룹이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맞춘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도산한 기아자동차와 한남투신을 떠안은데다 빅딜과정에서 LG반도체까지 인수하고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에 돈을 쏟아 붓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에 투신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과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던 자금 악화설이 다시 가세, 현대 주가 폭락사태를 초래했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할 때 현대 사태는 다소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주주를 무시하는 ‘봉건왕조식 경영구조’가 지속되고 ‘형제의 난’에서 드러난 경영권 혼란, 이에 따른 전략 부재 상태, 소극적인 구조조정 등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최근엔 현대그룹 내부에서조차 현대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우 사태를 겪은 은행, 투신사의 심사역들이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대우에 돈을 뜯긴 해외투자가들도 독이 올라 있다”며 “현대가 이런 상황 변화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장관은 금감위원장시절 “태풍이 남태평양을 지나 제주 남단에 이르고 있다”며 “기업들이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올해부터 은행들이 시행할 미래상환 능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신용공여제도(FLC)와 채권시가평가제에 재벌들이 대비하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음을 간접 화법으로 예고한 것이다.

    예전엔 수익성이나 미래 사업성이 없어도 공장부지나 설비, 계열사의 지급보증만 있으면 은행돈을 마음대로 빌려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용공여제도가 시행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채권시가평가제도가 실시되면 재벌들은 은행뿐 아니라 투신사에서도 자금을 마음대로 빌려 쓰기 힘들게 된다. 투신사들이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의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사면 매일매일 채권의 시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평가가 예전에 비해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재벌 계열사라도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 없으면 자금을 끌어 쓸 수 없게 만드는 장치다.

    이 두 장치가 시행되면 특히 시장, 즉 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평가가 곧바로 그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에 반영된다. 따라서 주주나 투자자들을 무시하는 경영구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이번 위기는 시장의 평가가 미리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장은 현대가 제주 남단을 지나 본격 상륙한 이 태풍에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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