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2000.03.02

공천반란군, ‘딴나라당’ 띄운다?

反DJP-反昌 내세우며 영남신당 모색…YS 가세 땐 파괴력 클 듯

  • 입력2006-01-31 15: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공천반란군, ‘딴나라당’ 띄운다?
    ‘2·18 대학살’로 불리는 한나라당의 ‘4·13총선’ 공천파동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회창총재와 비주류간의 단순한 당내 갈등의 차원을 넘어 비주류의 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총선구도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당초 한나라당 공천이 발표된 2월18일만 해도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불만인 계파보스나 중진들은 ‘예기치 않은 사태’에 황당해할 뿐이었다. 이날 김윤환고문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공천탈락 소식을 접한 뒤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는 “내가 이회창을 총재 만들고 대통령후보 만들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나”라며 인간적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구하느니 정치를 안하고 말지”라고 강조했지만 당장 뚜렷한 대책은 없는 듯 “2, 3일 뒤에 입장을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이기택고문도 북아현동 자택에서 ‘비보’를 들었다. 그의 입에서는 줄곧 이총재에 대한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벌써부터 ‘지역구(부산 연제)냐 비례대표냐’의 논란이 있었던 터라 언뜻 김고문에 비해 충격은 덜한 듯했다.

    잘하면 이총재 진영의 의도대로 ‘구정치인들의 개인적 불행’에 그칠 수도 있는 일로 보였다. 하지만 ‘대학살’의 희생자들이 너무 많았고 이들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세가 규합되면서 이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붙었다.



    자신들의 세를 확인한 이들은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결속을 주도한 것은 이기택고문. 그는 2월19일 하룻동안 공천에 강한 불만을 토로한 조순명예총재 및 공천탈락자인 김윤환고문, 신상우의원 등과 개별 회동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월20일 비주류 4인 회동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고, 첫 모임에서 바로 “신당 창당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낙천인사들 및 이에 동조하는 유력인사들을 모아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신당 창당에는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신당 창당엔 최소한 한달이 걸릴텐데…”라고 말했다. 창당자금 마련도 수월치 않으리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김윤환고문은 “신당 창당은 정상적으로 해도 2주면 된다. 많은 연구를 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실 그는 지난해부터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신당창당 도상연습을 많이 해온 것으로 알려져 허언(虛言)만은 아닐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비주류 4인의 돈문제 해결비책은 낙천의원들의 규합. 2월21일 한나라당 낙천의원 모임을 계기로 낙천의원들을 본격 규합, 국회 교섭단체(20명 이상)를 구성하면 총선을 앞두고 오는 3월15일 지급되는 1·4분기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또 시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총선후보등록(3월28일)까지 한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 빠듯하긴 하지만 창당준비위 발족과 법정지구당(23개) 창당을 서두르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 더욱이 이미 20여개의 지구당을 창당한 김용환의원의 한국신당과 하나가 될 경우 일거에 시간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4인간의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것도 걸림돌. 김고문과 신의원은 “빨리 하자”는 쪽이나 이고문과 조명예총재는 창당에 동의하면서도 공천 전면 재검토를 관철시키기 위한 당내투쟁도 병행하자는 입장.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현재로선 신당창당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이총재가 이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

    이들이 추진할 신당은 영남권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주류 4인에서 강원출신인 조명예총재를 빼면 나머지 3인 모두가 영남권 인사다. 여기에다 공천탈락자나 불만자 중 이들의 깃발 아래 모일 가능성이 있는 의원과 위원장 대부분도 영남권 인사들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주류 4인은 신당이 전국정당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기택고문은 “신당은 전국정당으로 유력인사가 많이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당이라는 지역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가능하면 이수성전총리와 정호용전의원, 김용환의원과 허화평전의원의 한국신당, 장기표씨의 청렴정치국민연합, 박찬종전의원 등 모든 세력을 망라해 보겠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신당이 출현하면 이는 영남권 선거는 물론 전체 총선구도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여야 3당 구도가 ‘일여다야’(一與多野) 체제로 바뀔 공산이 매우 큰 것. 특히 신당은 차기대권까지 겨냥해 영남후보론을 내걸고 ‘반DJ 비이회창’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신당이 뜬다면 총선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정가에서는 그 첫째 변수로 YS의 향배를 꼽고 있다. 신당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주력이 PK인사들인데다 이들 중 상당수가 YS의 영향권 내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깃발을 든 이고문과 신의원은 물론 “독재자 이회창씨와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며 공천을 거부한 김광일 전청와대비서실장, 김정수전의원, 문정수전부산시장 등이 신당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YS의 지시가 있으면 강삼재 박종웅의원 등도 신당으로 말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여기에다 부산에서 재기를 노리는 박찬종전의원도 YS의 지원을 절실히 바라고 있어 합류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PK선거는 한나라당 대 신당의 혈투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를 읽고 있는 신의원은 YS의 지원문제에 대해 “아직 언급은 없지만 신당이 탄생한다면 그분(YS)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18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상도동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YS는 당장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총재와 선을 긋고 신당 지원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보다 크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PK지역의 이고문과 신의원에 비해 TK의 김윤환고문은 속이 더 타는 입장이다. 자신의 계보원들이 대부분 공천을 받은 상태여서 당장 함께할 인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수성전총리와 한나라당 강재섭의원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김고문과 손을 잡을 경우 TK지역에서 신당의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고문측은 “이전총리와 정호용전의원과의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도 그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TK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강재섭의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그 자신도 측근들의 낙천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지만 신당의 얼굴마담보다는 지금의 위치에서 총선을 치른 뒤 대사를 도모하겠다는 뜻이 강한 것.

    수도권의 경우는 어떨까. 상대적으로 신당바람을 덜 탈 것 같다. 김덕룡부총재는 측근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현재까지는 당내투쟁을 더 강조하고 있다.

    겉으론 “나를 따르라” 속으론 “속탄다 속타”

    탈당 막을 묘책 없어 고민… 전화공세 등 공천탈락자 달래기 진땀


    ‘2·18 공천’ 후유증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데다 텃밭인 영남에서 신당이 태동할 조짐마저 보이면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 진영은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다.

    물론 이총재 진영은 겉으론 단호함을 보이고 있다. 이총재는 측근을 통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부 조정할 부분이 있으면 조정하되 개혁을 위한 아픔으로 이해하고 새 정치를 향한 대도를 계속 걷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개혁공천’에 앞장섰던 이부영원내총무는 “추호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맹형규총재비서실장도 “(낙천인사들이) 신당에 따라가거나 하는 그런 일은 별로 없을 것이며 충격과 흥분의 시간이 지나면 수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몹시 긴장한 표정 속에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 게 아니냐는 자성론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수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총재를 필두로 이총재 진영의 모든 인사들이 나서 공천탈락자와 불만자들의 동향을 긴급점검하는 등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총재는 공천발표 다음날부터 강창성부총재를 비롯한 부총재단과 고문단을 잇따라 만났다. 강재섭의원도 만나 자중을 당부했다는 후문. 공천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도 걸었다.

    당초 공천에서 탈락시켰던 이세기의원을 서울 성동갑에 재공천하고 과거 DJ의 청년조직인 연청 간부 출신인 이상렬씨(부산 서)의 공천 취소 방침을 정한 것도 ‘유화 제스처’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물러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탈당사태를 막을 묘책도 없는 게 이총재 진영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현재로선 공천파동이 어느 선에서 진화될지 점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회창식 공천실험의 성공 여부는 총선에서 결정적으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의 공천후유증도 만만치 않은 문제지만 총선에서 패한다면 ‘개혁공천’의 명분도 잃고 당 내부에서부터 붕괴조짐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 낙천그룹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해야지!”

    이강래씨 탈당 뒤 출사표… 김홍명 강운태 박태영 등 10여명도 장고중


    새천년민주당이 16대 총선 공천자를 발표한 2월17일 밤.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북 남원에 공천을 신청했던 그는 현역인 조찬형의원에게 밀려 울분을 씹어삼키고 있던 상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해도 너무한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아도 되는 것이냐. 일부 실세가 공천을 가지고 완전히 장난을 쳤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야 변할리 없지만 실세가 개입된 잘못된 공천에 대해서는 가만있을 수 없지 않느냐.”

    역시 호남지역 공천에서 밀린 한 인사의 지지자가 이전수석에게 격한 감정을 토해냈던 것. 그는 “역시 공천에서 탈락한 박태영전의원 등과 무소속 연대를 결성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자,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것이 아니고 공천을 농단한 실세에게 항의한다는 점을 분명히하면 된다. 철저히 인물론으로 승부를 걸자. 그러면 유권자들도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며 무소속 출마를 권유했다.

    여론조사에서 앞섰기에 공천을 자신했던 이전수석 또한 터지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가 누군가. 이른바 ‘신실세’로 불리며 정권 초기 승승장구했던 김대중대통령의 핵심측근이 아닌가.

    고심하던 그는 20일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원칙과 기준을 무시한 공천에 승복할 수 없다”며 “조찬형의원의 부인과 핵심실세들의 관계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라고 공격했다. 이전수석의 무소속 출마는 민주당의 공천발표 뒤 호남지역에 일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민주당 공천신청자 중 현재까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거나 검토중인 사람은 김홍명 전조선대총장(광주 동구), 강운태 전내무장관-송갑석 전 전대협의장(광주 남구), 이영일의원(광주 동구), 박태영 전산업자원부장관(담양-장성-곡성), 이정일 전남일보회장(해남-진도), 장현 호남대교수-노인수변호사(함평-영광), 이재근전의원-나상기 나주발전연구원장(나주) 등이다. 또 서울 서대문갑 공천에서 탈락한 김상현의원도 광주 동구나 북구에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무소속 바람’이 호남을 강타하고 있다. 영남쪽과 다른 점은 신당 창당이나 총재에 대한 반대보다는 총재에 대한 충성과 인물론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