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7

2000.01.13

“박순용총장은 노태우 스타일”

우유부단에 방향성 없어 우왕좌왕…김기수는 YS, 김태정은 전두환 닮아

  • 입력2006-06-09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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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용총장은 노태우 스타일”
    흔히 9자가 들어가는 해는 운수가 사납다고 한다. 9자가 셋이나 들어간 1999년은 검찰 역사상 가장 힘들고 지루한 해였다. 99년 벽두 이종기변호사의 수임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그러다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이 일어나고, 평검사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눈물을 훔치며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검찰을 향한 국민의 ‘모둠매’는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버벅’대던 검찰은,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옷로비사건과 현직 대검 공안부장이 관계한 파업유도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결정타’를 맞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두 사건은 ‘찰거머리’ 처럼 달라붙어 1년 내내 ‘검찰의 피’를 빨아먹었다. 이로 인해 검찰은 정말로 ‘치욕스럽게도’ 특별검사 제도가 생기는 현실을 맞이하였고, 그러고도 모자라 제 손으로 전직 검찰총장을 구속하는 사태를 연출하고 말았다.

    “박주선도 이종왕도 모두 잃었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 ‘정치권의 하녀’라는 소리를 들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허무하게 무너진 적은 없었다. 왜 검찰은 세기말을 보내며 ‘그로기’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일까? 이 문제를 검찰총장의 리더십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많은 사람은 청와대와 검찰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엄연한 별개 조직이다. 검사와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지만, 검찰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온다.



    97년 임기 말의 김영삼 정권은 한보사건으로 인해 몹시 흔들렸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역시 “권력을 보위하기 위해 사건 실체를 파헤치지 않는다”는 국민적인 비판에 직면해 휘청거렸다. 그러자 김기수 당시 검찰총장은 최병국중수부장을 심재륜검사장으로 바꾸고 수사팀 전원을 교체했다.

    국민은 심재륜 신임 중수부장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가 과연 ‘몸통’으로 지목되는 ‘소산’ 김현철을 구속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김기수 당시 검찰총장은 김영삼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였기 때문이다. 심중수부장은 이러한 김총장을 향해 소산 구속을 외쳤고, 김총장은 “No”라고 대답했다. 매번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들어가 “구속”을 주장한 심중수부장을 향해 김총장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대꾸한 것은 실랑이를 벌인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소산을 구속함으로써 검찰은 ‘국민으로부터의 배척’이라는 나락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소산 구속은 과연 심중수부장의 단독 플레이였을까? 소식통에 따르면 김전총장은 사석에서, 소산 구속은 ‘자신의 의지였다’고 말한다고 한다. 당시 대검 부장으로 있었던 한 인사도 “김현철 구속에는 심중수부장뿐만 아니라 김기수총장도 관여했다”고 말했다. 김전총장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끌었을 뿐 이미 소산 구속을 결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전총장이 ‘자기 의지’ 를 발휘했다는 대목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박순용 현 검찰총장의 자세다. 청와대 사직통팀 근무자들은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을 ‘박비’라고 부른다. 이종왕 대검중수부수사기획관이 박비 구속을 주장하며 사표를 던졌을 때, 박순용총장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박총장은 검사장 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다뤘는데, 강신욱 서울고검장 등이 강력하게 구속을 주장해 박비를 구속하게 되었다.

    박비 구속이 과연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많은 법조인들은 “물증도 없이 최광식 사직팀장의 진술만을 근거로 박주선비서관을 구속한 것은 무리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해야 하는데 박비서관 구속은 여론에 밀린 것이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박총장은 이미 인천지검 특수부의 임창열경기지사 수사 때와 서울지검 특수부의 이익치 현대증권회장 수사 때도 검사장 회의를 거쳐 구속 여부를 결정했었다.

    박총장의 이러한 태도는 민주적인 것 같지만, 적잖은 검사들은 “바로 이점 때문에 수사 검사들이 녹아난다”고 지적한다. 박주선씨는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하고 사법연수원도 수석 졸업한 사시 16회의 선두주자였다.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 이종왕기획관은 17회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검사장 출신의 한 인사는 “박총장이 검사장 회의를 열어 이기획관의 판단이 옳은지를 따지려 하니, 이기획관은 사표로 맞서게 되었다. 회의 결과 박비서관 구속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이기획관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다음이었다. 총장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장차 검찰의 동량(棟梁)이 돼야 할 박주선과 이종왕 모두 검찰을 떠나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현직 부장검사도 박총장의 우유부단함을 신랄히 비판했다. “형사소송법은 수사의 신속성을 위해서 검사에게 구속 권한을 주고 있다. 그래서 검사는 ‘단독관청’으로 불리는 것이다. 물론 지휘 라인에 있는 상급자가 수사검사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급자가 매번 지휘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취지를 위반한 것이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검찰은 상명하복의 수직적 기관인데, 왜 법원처럼 횡적으로 참모의 의견을 구하고, 또 회의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느냐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면 수사보안이 지켜지지 않아 수사 검사들만 죽어난다.”

    최근 특별검사 팀에 참여했던 한 인사도 “결과가 좋든 나쁘든 대검 수뇌부가 회의를 통해 지휘권을 행사하면, 결국 수뇌부의 의사에 따르는 ‘예스맨’ 검사들만 검찰에 남게 된다. 예스맨이 판치는 검찰은 필연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배척받고, 그 반작용으로 특검제가 도입될 수밖에 없다. 특검에 대한 국민 선호도가 올라갈수록, 검찰은 더욱 나락에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박총장은 세칭 TK로 불리는 경북고 출신이다. 현재 대검에는 박총장을 포함해 9명의 검사장이 있는데, 이중 4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박총장은 호남세에 둘러싸여 있어,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검사장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박총장과 비교되는 것이 김태정전총장이다.

    호남 출신의 김태정전총장은 PK정권에서 검찰 총수가 되었다. 김태정 전총장도 재임 중 DJ 비자금 수사와 대전 법조비리, 심재륜 파동, 평검사들의 연판장 사건 등 숱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김전총장은 수사 검사 출신답게 과단성 있게 대처했다. DJ 비자금 수사는 못한다고 밝혔고, 심재륜 파동 등에 대해 서는 대국민 사과로 대응했다. 호남 출신이라는 한계에 개의치 않은 것이다. 특검팀에 참여해 수사과정에서 김전총장을 대면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전총장은 아주 의욕적인 사람이다. 심재륜 파동 등 악재가 일어나자, 그는 악재를 만회할 만한 새 일을 기획했다. IMF 상황이니 파업을 줄이기 위해 공안대책협의회를 만들었고, 민생치안 확립을 위해 자녀안심하고학교보내기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공안대책협의회를 이끈 진형구 대검공안부장이 파업 유도 실언을 하고, 뜻하지 않게 부인이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서울지검 기자실을 찾아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눈물을 흘린 것은, 이러한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 데 대한 회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잘못된 방향으로 과욕을 부렸지만,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그래도 검사답게 일을 해보려고 한 사람이다.”

    이처럼 김전총장은 방향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그에 반대한 평검사들도 연판장을 돌리며 자기 의사를 개진할 수 있었다. 이 인사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데, 김전총장은 평검사들에게 검찰 개혁을 외칠 수 있는 언덕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언덕조차 없다. 전직 검찰총장을 구속할 정도로 검찰이 망신창이가 됐는데도 누구 하나 검찰 개혁을 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검이 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를 지속하는 한 개혁의지를 가진 검사들조차도 말을 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김기수-김태정-박순용 세 총장을 각각 김영삼-전두환-노태우형으로 비유한다. 우직한 스타일의 김기수전총장은 수사 검사로서는 전혀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에 올라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길을 걸었다. 그 바람에 정권 교체기에 자신도 지키고 검찰도 지켜냈다.

    김태정전총장은 전전대통령처럼 배짱이 넘쳐서 탈일 정도로 과단성이 있는 사람이다. 설렁설렁 대하는 것 같아도 사람을 정확히 볼 줄 안다. 입심도 좋아서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관철시킨다. 이러한 김전총장과 대비되는 사람이 바로 박순용총장이다.

    깔끔한 성품의 박총장은 김전총장과는 언제나 보완관계에 있었다. 고향도 정반대이다 보니 김전총장으로서는 언제나 박총장이 최선의 파트너였다. 이런 이유로 김전총장은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하면서 박총장을 신임 총장으로 적극 천거했다고 한다. 마치 전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물러나면서 그와 오랫동안 보완 관계에 있었던 노태우전대통령을 후계자로 민 것과 같은 구도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은 전전대통령에게만 약했던 것이 아니다. 국민여론은 물론이고 김전대통령에게마저도 약해, 전전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보냈다. 법조계에서는 김태정전총장을 구속했음에도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배척받게 된 것은 박순용총장이 노전대통령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검찰은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밖으로는 폭력과 절도 같은 단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권을 달라는 경찰의 요구와, 공직자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사정권을 달라는 반부패특위의 주장에 직면해 있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공정한 인사체제 확립과 구조적인 거악(巨惡) 척결을 위한 인지(認知)수사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러한 난제는 검찰총장이 리더십을 갖고 정확한 방향으로 검찰을 끌고 나갈 때에만 하나씩 풀려나갈 수 있다. 박총장은 과연 이 일을 하는데 적임자일까.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직 검찰총장을 구속하고 특검까지 생기게 됐으므로 박총장은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하루빨리 리더십을 회복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검찰이 될 수 있도록 개혁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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