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2016.07.06

정치

‘문재인 회의론’發 대권경쟁 활활

뜨거운 경쟁은 더민주의 국민 눈길 끌 호재…계파 패권주의 논쟁 일면 독이 될 수도

  • 유창선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yucs1@daum.net

    입력2016-07-04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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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쟁이 조기에 불붙는 모습이다. 당초 문재인 대세론 속에서 싱거운 게임이 되리라 예상됐지만, 총선이 끝나자 경쟁에 나서겠다는 주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당권 도전 가능성이 거론되던 김부겸 의원은 최근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남은 것은 정권교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라며 “지금부터 그 역할을 진지하게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당권이 아닌 대권 도전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더 적극적인 표현으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나는 특정 후보의 대체재나 보완재가 아니다”라며 문재인 전 대표의 부침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경쟁에 나설 뜻을 밝혔다. 출마 선언 시기에 대해서도 “나서야 할 때가 된다면 너무 늦지도, 성급하지도 않게 결론 내리겠다”며 구체적으로 “연말쯤이면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정도면 그의 출마 역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대권 도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전도 유력하게 점쳐진다. 박 시장은 아직까지 ‘대권보다 시정이 먼저’라는 원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5월 광주에서 했던 강연을 통해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며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역사를 위해 서울시장 이상의 다른 책임을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친 이 말 역시 대권 도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정치에 복귀하며 역시 대권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의 정치 복귀 선언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가을 전에는 구체적인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 전 고문이 정치를 재개할 경우 더민주행을 택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더민주의 대선후보 경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 외에는 다른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문재인 유일 대안론’까지 등장할 지경이던 더민주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지는 모습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더민주의 이 같은 변화는 사실 의아한 측면도 있다. 당내 상황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대선주자로서 문 전 대표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부동의 선두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경쟁자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지지율 격차도 최근 들어 더 벌려놓은 상태다.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당내 세력 기반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렇다고 다른 주자들의 지지율이 특별히 상승한 것도 아니다. 더민주 내에서 문 전 대표를 상대로 경쟁에 나서겠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겠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더구나 이 같은 더민주 내 움직임은 다른 정당들과 비교할 때 빠른 감이 있다. 새누리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계 간 당권경쟁이 가시화하고 있을 뿐, 대선후보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도 대선주자로서 안 전 대표의 위상이 워낙 공고해서인지 대권경쟁에 뛰어들 인물을 거명하는 일 자체가 시기상조다. 다른 당들 역시 아직 대선후보 경쟁에 눈 돌릴 겨를이 없는 분위기다.



    문재인 가능성에 대한 상반된 전망

    유독 더민주의 대권경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는 그 전략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20대 총선에서 몸집을 불린 더민주는 이제 내년 대선을 바라보며 간다. 일단 문 전 대표가 더민주 대선후보가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문 전 대표 쪽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이들은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 이반도 확산됐으니,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준비를 잘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도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는 어려울 테고, 3자 구도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준비 부족에 아쉬움을 토로했던, 그러니까 준비를 잘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문 전 대표의 사고를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대선후보가 됐을 때 과연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시선은 더민주 내부에서도 만만치 않다. 문 전 대표가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확장성의 한계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비교적 선명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다. 적극적이고 안정적인 열성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반대로 문재인이라면 고개를 돌리는 비토층도 많다. ‘친노(친노무현)는 없다’는 논리적 설명은 아직도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정서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대선가도가 문 전 대표의 단독 레이스로 전개되는 것은 더민주 처지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문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이 강화되고 본선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테다. 그래서 어떻게든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복수의 주자가 경쟁을 펼치는 역동적인 판을 만들어야 더민주가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는 확장성 문제로 부심하는 문 전 대표부터 가장 절실히 원하는 구도일 수 있다.

    더민주 내 대권경쟁이 생각보다 빨리 불붙은 데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큰 구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들어 대권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당내 인물을 잇달아 만났다. 김부겸 의원, 박원순 시장, 안희정 지사 등을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후보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더민주 내에서 대선주자 간 경쟁의 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총선 전부터 김 대표는 더민주 대선후보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을 거듭해왔다. 문재인 대세론이 지배하던 더민주에서는 이 같은 말조차 뉴스거리다. 어떻게든 다자간 경쟁구도를 만들어 후보를 선출해야 경쟁력이 생기고 대선에서도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다자간 경쟁구도로 가려는 더민주 내 최근 기류는 김 대표의 이 같은 지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김 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그리는 후보에 대한 생각까지 드러내고 있다. 김 대표는 얼마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처럼 돼 있는 자신의 가치와 부합하는 인물이 대선후보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중이 깔려 있다. 결국 자신과 노선을 공유하며 손잡을 수 있는 인물에 힘을 싣고자 하는 바람을 내비친 셈이다. 아직까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특정 인물을 염두에 뒀다기보다, 여러 주자가 경쟁하는 속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인물을 대선후보로 내세우면 된다는 생각이 큰 듯하다.

    다만 그런 대선후보가 문 전 대표가 아니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분위기다. “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선에서 당선하는 게 중요하다”는 김 대표의 말은 그냥 의례적으로 받아들일 얘기가 아니다. 이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에 몸을 실은 김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를 넘어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중도적 성격의 당으로 더민주를 개조하려는 시도를 했다. 논란을 무릅쓰고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장면은 그 같은 변화를 보이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당 안팎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김 대표 특유의 독선적 리더십은 여론의 악화를 초래하며 그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4·13 총선은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측 사이 불신의 상처를 낳고 끝났다. 김 대표는 더민주를 원내 제1당으로 만든 주역이었지만, 당내 주류 세력의 비토 속에서 더는 대표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측은 내년 대선까지 가는 길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를 해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초 문 전 대표가 내민 손을 잡고 더민주에 들어온 김 대표이지만 이제 더는 그의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다. 이제는 반대로 문 전 대표를 넘어설 다른 대안을 찾아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문 전 대표 경쟁 세력의 한 축이 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


    혜성 같은 후보는 가능할까

    그래서 김 대표가 말한 것이 ‘혜성 같은 후보’다. 그는 현 지지율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내년 초쯤 혜성 같은 후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말이다”라고도 했다. 여기서 갑자기 나타나는 ‘혜성’이 문 전 대표일 리는 없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부상을 김 대표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더민주에서 혜성 같은 후보가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문재인 대세론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과 동일하다. 문재인 대세론의 근거 가운데 하나는 지난 대선에서 48% 득표율을 기록했던 강력한 대선주자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어쨌든 야권주자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계속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더민주 내에서 이 두 근거를 따라올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근거도 사실 매우 취약한 고리를 지니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선 이른바 ‘안철수 효과’에 힘입어 그 정도 득표율이 가능했지만, 그 같은 연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 환경에서 문 전 대표의 득표율이 더 상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선이 1년 반이나 남은 시점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세론이 유지될지 여부를 가름할 결정적 변수는 본선 경쟁력에 대한 평가의 향방이다. 상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이든 새누리당 후보와의 대결구도에서 어느 정도 지지율을 보이는지가 추세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본선 경쟁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안 전 대표와 연대 없이 가는 3자 구도 대결이 예상되는데, 이 새로운 3자 구도에서 선두에 나설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만약 문 전 대표가 더민주 대선후보까지는 무난히 된다 해도, 결국 본선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회의적 평가를 받는다면 그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이 김 대표가 말하는 ‘혜성’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례로 든 것처럼 야당사에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인제 후보가 선출되리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국민경선이라는 새로운 룰을 통해 뚜껑을 열었을 때 노풍이 불어닥쳤고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지금도 그런 가능성이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 문 전 대표 외 주자들이 과연 일정 정도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김부겸 의원의 경우 아직은 당내 세력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김부겸식 정치’가 무엇인지를 이제 막 보여주려 하고 있다. 대구에서 야당사의 기적을 이뤘다고 대권행 열차를 바로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정치를 보여주고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갖고 있지만 더민주 내 세력 기반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서울시장으로서의 신망에도 문 전 대표를 상대로 경쟁을 펼치기엔 당내 우군이 너무 없다. 무기는 대중적 지지를 등에 업고 경쟁의 장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는데, 그만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안희정 지사는 충청권에서의 영향력에도 아직까지는 전국 차원의 대중적 지지가 미약한 편이다. 특히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대권 행보에서 강점이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문 전 대표에 필적할 만한 ‘혜성’이 나타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임에 분명하다.



    조기 대권경쟁은 양날의 칼

    그래서 막상 경쟁의 판이 벌어졌는데 싱거운 게임으로 끝나버린다면, 문 전 대표를 위한 ‘연출된 경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소지도 있다. 그리고 경쟁에 뛰어든 주자들에게도 정치적 상처가 남게 된다. 서로 봐주지 않는 정면승부를 벌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계파 패권주의 논란은 경쟁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상처를 주고받는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지 모른다. 계파의 힘이 아니라, 민심을 우선시하고 본선 경쟁력을 가리는 후보 경선이 돼야 의미 있는 경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올해 하반기, 그리고 내년이 구조조정을 비롯한 민생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시기라는 점이다. 민생문제가 국가적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민주가 가장 먼저 대권경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다시 계파 간 갈등이 분출된다면 흥행 효과가 상쇄되고 오히려 상처가 될 위험도 크다. 그래서 더민주에게 대권경쟁 조기 점화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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