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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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 북한

초고속 세력 확장 김원홍 北 ‘넘버2’ 되나

정보·무력·명분 거머쥔 보위부, 5월 당대회서 조직지도부와 한판 승부?

  • 이승열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객원연구원, 황일도 기자

    입력2016-04-04 08: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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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연이은 고위 간부의 숙청. 그러나 이 가운데는 숙청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라진 인물도 적잖다. 이 때문에 평양 주민 사이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가 고위 간부들 주택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도청을 두려워한 일부 간부는 집에서조차 말조심하는 것은 물론, 자녀들을 친척집 등 다른 거처에 머물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 한 소식통은 “2013년 12월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가 보위부의 도청 문제를 비판하고 나서자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잘못한 게 없다면 도청이 왜 두려운가’라고 두둔한 바 있다”고 전했다.

    #2 최근 중국을 방문한 한 평양 시민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까지는 인민보안부(우리의 경찰에 해당)가 담당하던 일반 경제사범까지 보위부가 단속하고 있다”며 “인민보안부는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만 취급하는 ‘이빨 빠진 고양이 신세’가 됐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동산 등을 담보로 하는 사채 장사 단속 문제다. 눈치 빠른 주민은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보위부원을 먼저 찾아가 뇌물을 바치는가 하면, 30대 젊은 보위부원 앞에서 50대 인민보안부 간부가 쩔쩔맬 정도로 보위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 중국으로 출장 나온 간부급 공무원들이 젊은 보위부원에게 높임말을 쓰는 모습도 자주 관찰됐다. 일반 주민들 역시 김정은 다음의 2인자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대신 김원홍 보위부장을 꼽고 있다는 것이다.

    #3 북한 최대 발전소로 꼽히는 북창화력연합기업소. 평양시 일부와 자강도 군수공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이 발전소의 설비 교체를 둘러싸고 최근 북한의 주요 권력집단은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공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외화 수입과 예산이 ‘떡고물’이었음은 불문가지. 6월 말부터 10만kW 용량의 화력터빈 20기를 모두 교체하는 이 공사를 맡고자 전력공업성이 있는 내각과 청년동맹, 인민군 총정치국, 인민보안부 등이 나섰지만 김정은 제1비서가 낙점한 최종승자는 바로 보위부였다. 이로써 다른 권력엘리트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김원홍 보위부장의 막강한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한다.



    어제의 은인을 제거하고

    2015년 말 이후 최근까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북한 사정에 정통한 매체들이 전한 일련의 소식은, 평양에서 ‘떠오르는 실세’로 불리는 김원홍 부장과 그가 이끄는 보위부의 위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한국 감사원과 국가정보원 국내파트를 합친 것과 유사한 기능을 담당해온 이 조직은 이전에도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 가운데 하나였지만, 최근 들어 세력이 급속도로 확장돼 견제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특히 5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권력체계가 요동치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김원홍 부장과 보위부야말로 앞으로 평양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바로미터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1945년 황북 출생인 김원홍은 김일성종합군사대를 졸업한 것 외에는 달리 알려진 개인정보가 없다. 쉽게 말해 이전에는 평양 이너서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2013년 12월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곳이 그가 이끌던 보위부 특별재판소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북한 연구자들이 김원홍 이름 석 자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김정은 집권 5년, 북한의 주요 실세들이 숙청과 복권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변동 없이 자리를 유지한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의 김원홍을 가능케 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장성택이었다는 사실. 그의 승진가도는 장성택의 전성기와 고스란히 맞물린다. 1998년 7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정되면서 권력 내부에 첫발을 디딘 것, 2003년 인민군 상장으로 승진해 군 보위사령관에 임명된 것 모두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장성택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원홍이 다시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한 2009년과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으로 영전한 시점 역시 2004년 숙청됐던 장성택이 2007년 당 행정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후 일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시기 김원홍은 장성택이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전략적으로 활용하던 인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특히 2012년 미국과의 2·29합의가 군부의 ‘돌발행동’으로 무산된 이후 이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마음먹은 장성택은 2012년 4월 11일 4차 당대표자 대회와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원홍을 국가안전보위부장, 당 정치국 위원,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도록 지원한 바 있다.

    이를 가능케 한 힘은 김원홍이 가진 ‘숙청의 칼날’에서 나온다. 주요 인물 가운데 누가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제거할지 등을 김정은 제1비서에게 보고하는 당사자가 바로 보위부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상은 2012년 7월 당 정치국 회의에서 숙청된 당시 군부의 최고지도자 이영호 총참모장. 북한 무역권의 70%에 달하던 군부의 독점권한을 빼앗길 원하던 장성택은 김원홍의 칼을 빌려 숙청에 성공한다. 이영호가 제거된 뒤 그간 군부가 관리해오던 무역회사 대부분은 이후 장성택이 이끌던 당 행정부로 이관됐다.

    이후 문제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장성택 권력이었다. 경제권마저 접수한 장성택의 행보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다른 권력엘리트 전원에게 경계 대상으로 떠오른다. 이에 결합한 게 그간 장성택에게 밀려 쪼그라들었던 당 조직지도부 세력. 이들이 힘을 모아 ‘장성택 제거’를 모의한 것이 2013년 11월 이른바 ‘삼지연회의’였고, 그 칼날 노릇을 한 것은 다시 김원홍이었다. 최룡해-조직지도부-김원홍으로 이어지는 평양 권력의 핵심 고리는, 그가 어제의 은인 장성택에 대한 사형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2013년 12월 12일 완성됐다는 뜻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김원홍의 세력연합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군부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숙청을 이어나간다. 어제의 연합군은 이내 분화했고,

    빨치산 세력의 상징적 인물인 최룡해 역시 이들의 상시적 견제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듯 연이은 숙청과 처형 퍼레이드는 조직지도부가 기획해 보위부가 실행하는 구조에 가깝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권력구도는 합종연횡을 통해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식으로 만들어졌고, 그 와중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조직지도부와 보위부가 2016년 현재 평양 권력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판이 머지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서두에서 본 보위부와 김원홍의 위세에 대한 주요 소식은, 다음 차례가 다름 아닌 김원홍 자신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한배를 타고 움직여온 조직지도부와 보위부가 반목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야말로 가장 눈여겨볼 대목. 물론 김원홍이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보위부는 평양 내에서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조직이라는 점이 그 근거다. 북한 체제는 쿠데타 같은 돌발상황을 방지하고자 수도와 인근에서 총칼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을 극도로 제약해놓았다. 외부 군사공격에 맞설 평양방어사령부를 보병 대신 기계화 부대로 재편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군부든, 조직지도부든 김원홍을 제거하려 시도하다 발각되는 순간 곧바로 무력을 동원한 반격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욱이 보위부는 문자 그대로 김정은 체제를 보위하는 절대적 권위를 자랑한다. 체제 안전에 관한 모든 정보는 이곳으로 모이고, 어떤 불법이나 월권 역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명분을 한 손에 쥔 김원홍을 제거하려면 김정은 제1비서의 ‘결심’을 받아야 하지만, 정보와 무력의 길목을 장악한 그의 비행(非行)을 김 제1비서에게 보고하거나 설득할 방법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이영호도, 장성택도, 현영철도 누리지 못하던 무소불위 권력이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최룡해 비서, 조직지도부 주요 구성원까지 모두 보위부의 도청 공포에 시달리고, 보위부의 위세는 이제 권력층뿐 아니라 일반 주민의 경제활동에도 미치고 있다는 서두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그 함의가 명확해진다. 이는 역설적으로 5월로 예정된 7차 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황병서와 조연준으로 대표되는 조직지도부 출신 권력엘리트들은 이 자리에서 노동당 중심의 영도체계, 정확히 말해 조직지도부가 이끄는 당 중심의 권력체계를 완성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김정일이 이끌던 ‘선군(先軍)시대’에 비대해진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당 우위의 국가 시스템을 정립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조직지도부 세력은 김원홍에게 집중된 현 권력을 과연 어떻게 재편하려 시도할까. 또 사실상 2인자로 군림하는 김원홍과 조직지도부는 이에 대응해 어떻게 움직이려 할까.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5월 당대회에 숨은 가장 은밀한 방정식이 아닐 수 없다. 그 권력투쟁의 결과에 따라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미래 역시 달라질 것이다. 결판이 머지않았다.  

    | 이승열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객원연구원 summer20@naver.com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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