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르포 | 총선 승부처에 가다 ① 광주·전남

공천 경쟁만 요란, 민심은 냉랭

예비후보 난립한 국민의당, 광주·전남 경선서 파열음 예고

  • 광주광역시, 전남 순천·여수=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3-04 17: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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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한 뒤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는 광주토박이 J씨. 억양과 말투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나는 40대 초반의 J씨는 “20대 총선에서 광주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광주 민심을 알아보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시민들 삶에 얼마나 변화가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30여 분간 다과를 앞에 두고 정치와 총선 등 다양한 화제로 얘기를 나눈 끝에 그가 털어놓은 속내는 “뭐라고 혀도, 결국 안철수가 야권을 분열시킨 것 아닌가요?”로 요약됐다.
    “오랫동안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찍어온 선배 세대는 ‘야당을 망쳤다’며 친노(친노무현)나 문재인을 무척 싫어했어요.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박수를 쳤죠.”



    #광주 정치권이 달아오른 흔적

    J씨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안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 컸다고 했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광주 시민의 기대감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광주일보’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광주·전남지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유권자 10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총선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41.9%로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지지율 29.4%에 비해 12.5%p나 높게 나왔다. 여론조사와 관련된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당 창당을 전후해 광주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른 흔적은 총선 예비후보 등록 현황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3월 2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예비후보자 명부에 따르면 광주 8개 선거구에 47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명이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 특히 광주 남구와 북갑, 서갑에서는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5명이 등록, 자체 경쟁률이 5 대 1에 달한다.
    광주의 총선 예비후보들이 마치 선점 경쟁이라도 벌이듯 앞다퉈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뜨거운 열기를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광주 시민들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30대 후반의 여교사 K씨는 “TV와 뉴스에 정치, 선거 얘기가 자주 나와 총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뿐 어느 당이 좋은지, 어느 후보가 좋은지를 알아보려 할 만큼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는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K씨는 “여기저기 현수막이 나붙는 등 선거구 획정 문제로 동네가 조금 시끄러웠다”고 전했다. K씨가 거주하는 곳은 광주 남구 주월동. 주월동과 인접한 남구의 몇몇 동은 선거구 획정 전까지 광주 동구와 합쳐질지 모른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선관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월 28일 국회에 제출한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에 따르면 광주 남구 양림동과 방림1·2동, 사직동, 백운1·2동 등 6개 동은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광주 동구와 합쳐져 광주 동남을 선거구로 편입됐다. 지금까지 남구 국회의원을 뽑아왔던 일부 남구 주민은 이제 더 많은 동구 주민과 함께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이 같은 선거구 획정은 광주 의석을 8석으로 유지하는 대신, 달라진 인구 상·하한선에 맞추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그럼에도 일부 남구 주민은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선거구를 조정했다며 현수막을 내거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예비후보들에게도 이 같은 선거구 조정은 큰 혼란을 주고 있다. 국민의당 후보로 남구 출마를 준비해온 한 예비후보는 “사직동에 선거사무실을 냈는데, 선거구가 갑자기 조정돼 광주대 로터리(효덕동)에 새로 사무실을 얻어야 했다”며 “자기 지역구조차 지켜내지 못한 현역의원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국회의원은 8명. 이 가운데 6명이 국민의당 소속이다. 현역의원 비율로 보면 광주는 국민의당의 아성인 셈. 그러나 광주지역 여론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되레 국민의당에 비판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광주지역 한 언론사 간부 C씨는 “연말연초에 거셌던 국민의당 바람이 지금은 많이 잦아든 상태”라며 “(국민의당) 신당 바람도 20대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 정치인들 사이에서 거셌을 뿐 유권자들 사이에서 바람이 크게 일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C씨는 “광주에 지역구를 둔 현역의원이 대부분 더민주당을 탈당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민주당이 새로운 당처럼 비치는 측면도 있다”며 “총선 때 ‘바꿔’ 바람이 불면 오히려 국민의당 소속 현역의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C씨는 “예비후보가 많은 국민의당은 본선 같은 공천 경쟁이 불가피해 경선 등 공천을 거치면서 파열음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J씨는 “더민주당이 강기정 의원을 공천 배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광주 의원들이 제 살길을 찾겠다고 탈당할 때도 끝까지 당에 남아 의리를 지킨 사람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을 보면 김종인 대표가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에 몸담고 있는 광주 현역의원 가운데 천정배 의원이 5선이고, 김동철·박주선 의원이 3선, 장병완 의원은 재선이다. 광주 토박이인 J씨가 망설임 끝에 털어놓은,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아직은 갈등 중인 다음 얘기가 마치 광주 민심의 속내인 듯 다가왔다.
    “국민의당이 기대만큼 못하잖아요. 새로운 사람도 별로 없고. 서울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여그 광주에서는 지금은 안철수가 신당(국민의당) 창당한 것을 잘했다고 하는 사람보다 김종인 씨가 주도하는 더민주당이 달리 보인다는 사람이 더 많아졌어요. 총선까지 그런 여론이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새누리당 이정현, 호남 재선 파란불?

    광주 민심이 더민주당이냐, 국민의당이냐 하는 야권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가운데, 호남에서 유일하게 여당 의원을 배출한 전남 순천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재선 여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2월 29일 오후 순천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이정현(의원)만한 인물이 없다”며 이 의원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과 “재·보궐선거(재보선)와 총선은 다르다”며 “이번 총선에서는 야당 후보가 승산이 있다”는 쪽으로 갈렸다. 야당 후보 우세를 점치는 이들은 선거구 획정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특히 이 의원의 고향인 곡성군이 순천시에서 떨어져 나와 광양·구례 선거구로 편입된 것이 이 의원에게 악재로 작용하리라고 봤다. 그래서일까. 순천에 야권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보는 11명에 이른다. 더민주당에서는 김선일, 노관규, 고재경, 서갑원, 김광진 예비후보 등 5명이 등록했고 국민의당에서는 박상욱, 손훈모, 구희승, 정표수 예비후보 등 4명이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민주당 최용준 예비후보가 등록했으며, 무소속 정오균 예비후보도 등록을 마치고 총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순천역 대합실에서 만난 한 80대 노인은 “이 의원이 곡성 사람이라 곡성에서 표를 많이 얻었는데, 고향이 속한 선거구에 출마를 안 하고 순천에서 나오면 그때(7·30 재보선)만큼 표가 안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의원의 인물론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적잖았다. 자신을 58년생 개띠라고 소개한 한 택시기사는 승객들의 얘기라며 야권 예비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이정현 필승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더민주당 예비후보) 서갑원 씨는 친노 이미지가 걸림돌이고, 노관규 씨는 현 시장과 경쟁관계여서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김광진 씨는 아직 어리다고 보는 이가 많아요.”
    바로 옆에 있던 다른 택시기사가 거들었다.
    “그때(2014년 7·30 재보선)는 일대일로 싸워 이 의원이 당선했는데, 이번(20대 총선)에는 국민의당에서도 후보를 내 여당 후보 한 사람하고 야당 후보 두 사람이 싸우게 되면 이 의원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어요?”
    순천시 별량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이 의원이 참 열심히 일한다”며 “이 의원에 대한 주민 평가가 나쁘지 않다”고 귀띔했다. 다만 30, 40대 젊은 층에서는 이 의원에 대한 반감이 없지 않았다. 순천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김모 씨는 “(7·30) 재보선 때 이 의원이 약속한 대표적 공약이 ‘순천대 의대 유치’였는데, 결국 지키지 않았다”며 “자잘한 약속은 잘 지켰는지 몰라도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공약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믿고 다시 찍어주겠느냐”고 말했다. 순천 시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도 “이 의원이 대통령과 가까운 힘 있는 여당 의원이라서 뽑아준 사람이 많았는데, 달라진 것을 못 느끼겠다”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꼭 이 의원을 두고 나온 말 같다”고 말했다.
    야권분열로 순천 선거 구도는 이 의원에게 한층 유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몰표를 기대할 수 있던 고향 곡성군이 다른 선거구에 편입된 것은 불리한 요소다. 유불리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 의원이 4월 총선 결과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된다.

    #무주공산 여수에 부는 총선 바람

    4선을 기록한 김성곤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바람에 무주공산이 된 전남 여수갑 선거구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호남 정치지형을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와 같은 곳이다. 이 때문에 어느 지역 못지않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신정일 예비후보가, 더민주당에서는 송대수, 김점유, 강화수 예비후보가 뛰고 국민의당에서는 김경호, 김영규, 이용주, 이유미 예비후보가 소속 당 공천을 향해 뛰고 있다. 여러 후보가 난립한 여수갑 선거구는 아직 도드라진 후보가 없어 각 당 공천이 끝나봐야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여론이 높았다.
    교동 여수 수산시장에서 만난 김모 씨는 “여러 사람이 명함을 주고 인사를 다니는데, 아직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사람보다 당을 보고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는데, 대통령이 못 돼 아쉽다”며 더민주당 후보 지지 의사를 넌지시 피력했다.
    그러나 여수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부인 김미경 씨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총선 막바지 ‘안철수 바람이 다시 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잖다. 그 때문인지 여수갑에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한 후보자는 안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고 안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여수 사정에 밝은 한 지역 언론인은 “인지도가 높은 사람은 평판이 좋지 않고, 평판이 좋은 사람은 인지도가 낮다”며 “혼전 양상으로 각 당 공천이 진행 중이어서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공천 결과가 나와봐야 여수갑 판세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산시장과 여수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국민의당에 대한 호감이 좀 더 높은 편이었다. 진남관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더민주당이 잘했으면 국민의당이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며 “이제는 새로운 세력과 인물이 나서 정치판을 바꿨으면 한다”고 국민의당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여수갑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 난립으로 혼전 양상을 보이는 데 반해, 여수을은 3선을 기록한 주승용 의원이 인지도에서 다소 앞서 있다. 다만 높은 인지도에는 장기 집권에 대한 거부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율촌면에 산다는 한 시민은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하는 것도 좋지 않다”며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을 선거구에는 새누리당에서 심정우, 김성훈 예비후보가 뛰고 있고 더민주당에서는 백무현, 최무경 예비후보, 국민의당에서는 박종수, 이광진, 주승용 예비후보, 그리고 정의당 황필환 예비후보와 무소속 김상일 예비후보가 총선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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